송은 과거를 통해 많은 인재를 선발하였다. 과거 선발 인원의 확대는 많은 과거 준비생을 탄생시켰고 이들은 새로운 사대부 계층을 형성해 송대 사회의 주역이 되었 다. 송 황실은 士大夫들의 宴會나 畜妓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취하였고 이는 사대부 와 歌妓의 만남을 촉진시켰다. 만남에는 歌妓의 노래와 연주가 있었고 여기에 맞춘 塡詞의 풍조를 탄생시켰다. 이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사의 창작도 급속도로 늘어났 다. 숭문정책으로 과거급제자가 급격히 늘어났는데 늘어난 진사급제자 숫자만큼 같 은 시기 사 작품의 숫자도 비례하여 증가한다. 송사의 대표작가 30명을 분석해보면 사가 흥성한 북송시기 사인이 17명이다. 그 중 진사출신이 13명으로 76프로를 차지 한다. 인구에 회자되는宋詞三百首를 분석해 보아도 북송시기 진사출신 詞人이 60 프로에 달한다. 즉 송사는 숭문정책으로 인한 사대부계층의 확대와 그에 따른 도시 문화, 음악문화, 歌妓문화가 어우러져 흥성했음을 알 수 있다.
본고는 韓·中 고전문학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송사를 제기하거나 또한 송사를 당하는 역할로 등장하는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성이 송사를 제기하거나 당하는 경우, 효녀, 열부, 현모양처인 경우에는 물질적 보상, 사회적 칭송을 받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송사를 통한 법의 엄정성보다 법의 윤리의식이 우위에 있었던 고대 韓·中 봉건사 회의 일면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선한 의도와 행실에도 불구하고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끝나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송사라는 법적인 절차가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통로이긴 하나 남존여비의 봉건사회에서 여성에게 그 기회가 완전히 보장될 수 없고, 또 다른 가부장적 기준으로 여성을 이중으로 평가했던 당시 사회의 한계점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또한 일부 여성들은 원혼(冤魂)이 되어서까지 재심(再審)을 통하여 그녀들의 억울함을 사회에 공개적으로 호소하고, 해결 받고자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의 명예회복 및 내적 존엄성까지도 회복하고, 공개적인 법집행을 통한 처벌로 사회질서 확립과 사회정의 실현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