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명기(明器)라는 물적 자료를 통해 중앙에서 확립된 새로운 의례가 지방으로 전 파 및 수용되는 과정을 탐색하고, 조선시대 의례기물이 민간에 유통되었던 방법에 대한 고찰 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명기가 본격적으로 확인되는 16~17세기에 초점을 맞춰 분묘 유적을 중심으로 출토된 명기를 비교하고, 당시 문헌 기록 및 기타 유적 출토품과의 대조를 통해 종합적인 검토를 시도하였다. 명기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기물(器物)을 구분하고자 했던 유가 사상에 의해 정립된 개념 으로, 유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던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상례 제도의 절 차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실생활에 사용되는 기물과는 구별되는 작은 크기의 기 물들이 분묘에 부장되었다. 명기 출토 양상은 전반적으로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 사이에 경기도 일대를 중심 으로 출토되기 시작하다가 충청도를 거쳐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로 명기 부장 문화가 확산 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재질이나 구성에 있어서도 중앙과 가까운 곳일수록 예서를 준용 하려는 모습이 보이며, 멀어질수록 상대적으로 구성 및 조합에서 예서에서 확인되지 않는 기 형들이 확인되고, 퇴화 정도도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매납되었던 명기는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유통되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첫 번째는 시전행랑과 같은 시장 유통망을 통한 방식이며, 두 번째는 관청에 소속된 관장(官匠)을 통해 명기를 마련하는 방식, 세 번째는 민간의 사장(私匠)을 통해 개별적으로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명기 유통 방식에 대한 이해는 조선시대 민간에서 소비되었던 도 자기류 및 장례용 기물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생산되고 유통되었는지 유추할 수 있는 단서 를 제공하며, 당시 물질문화와 소비 구조를 이해하는 기초 자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의 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