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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美術史學 KCI 등재 동양미술사학 Dongyang Misulsahak(Journal of Asian Ar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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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21권 (2025년 9월) 1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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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북위 용문석굴 고양동의 미륵명 조상기와 교각미륵 삼존도상을 대상으로, 5세 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에 이르는 미륵신앙 수용 양상과 도상 전개 과정을 규명하고자 하였 다. 기존 연구가 개별 조상기의 연대 고증이나 도상의 중국화 양상에 국한된 반면, 본 논문 은 조상기와 도상의 상관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발원 주체ㆍ신앙 동기ㆍ도상 변화를 유 기적으로 연계시켜 검토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연구 방법으로는 고양동 및 용문석굴 전역에 걸쳐 북조 시기 ‘미륵’ 존명을 명시한 조상기 를 조사하여 발원자의 출가 여부와 신분 계층별 특징을 분석하였고, 이에 대응하는 미륵도상 과 비교ㆍ검토하였다. 또한 교각보살상 하부의 지천(地天) 표현, 보살협시 도상의 변용, 괴 수 도상의 출현 등 세부 도상학적 요소를 교차 분석하여, 경전적 근거와 지역적 특징까지 포 괄적으로 논의하였다. 그 결과, 고양동의 미륵신앙은 황실ㆍ귀족 중심에서 읍의(邑義)와 같은 민간 공동체 중심 으로 이행하며 대중화되었고, 출가ㆍ재가를 막론한 보편적 발원 행위를 통해 미륵신앙과 유 교적 효사상이 결합된 신앙 형태를 보여주었다. 도상적으로는 운강석굴의 도솔천 설법도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보살입상 협시나 지천 도상의 도입 등을 통해 낙양 지역 특유의 도상 체 계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고양동의 미륵도상이 단순히 운강석굴의 영향을 받은 수동적 결과 물이 아니라, 낙양을 거점으로 서안과도 긴밀히 연결되며 미륵도상에 있어서 독자적인 도상 을 형성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를 통해 북위 후기에 조성된 미륵신앙의 계 층별 수용 양상과 낙양 지역 미륵도상의 전개에 있어서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 아 니라, 향후 동아시아 불교미술 전반에서 미륵도상의 지역적 전개를 비교ㆍ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학술적 토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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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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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탑신이 8각 석주(石柱)형인 승탑들이 있어 이를 학계에서는 경당형 승탑이 라 부른다. 이 유형은 1221년 원진국사 승형 탑 건립에서 시작되어 1235년 수선사 2세인 진각국사 혜심 탑으로 이어지고 이후 그의 계승자들에 의해 조선 초까지 조성된다. 두 승탑 은 다라니경당형 탑신 이외에는 모습이 조금 다르다. 전자는 탑신과 길게 구성된 상륜부 이 외에는 대체로 전통적인 8각원당형이다. 수선사 계열은 기단부가 낮은 중대석에 앙, 복련판 이 장식된 수미좌 형태이며 상륜부는 수미좌와 보주로만 이루어졌다. 탑신 남면에는 탑 이름 을 새겨 묘비적 성격도 있다. 이런 모습은 중국, 한국의 경당이나 중국의 경당형 묘탑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오히려 사찰본 화엄경 「십지품」 중, 제 5지인 ‘난승지’ 변상도와 화엄경 「입법계품」 회화 중, ‘휴사우바이’ 장면 속 다라니경당이나 보당을 더 닮아 있다. 당말 오대 이후 중국과 고려의 불교는 삼론, 천태, 선, 화엄, 능엄 신앙이 크게 융합된 선ㆍ교 혼융 양상을 보인다. 특히 화엄경과 문인 사대부들의 거사불교는 선종이 도입되는 신라 말부터 오대, 북송 선종계와 지식층의 영향을 받은 고려 10~13세기의 주요한 흐름이었다. 다라니경당은 당 초기인 680년에 불정존승다라니경이 번역된 이후 크게 신앙되면서 많은 다라니경당이 조성되고 보당도 출현한다. 쑤저우 서광사(瑞光寺)탑에서는 1013년에 조성된 〈진주사리보당(眞珠舍利寶幢)〉이 출토되었는데 사리와 함께 봉안된 자료들에 의하 면 이것은 다라니신앙을 지닌 선종사원에서 화엄경의 세계를 형상화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을 고려할 때 승형과 혜심의 승탑은 화엄경 회화 속에 반영된 다라니 경당, 보당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결론은 앞으로 논증이 더 필요하겠지만 역사 서술이 작은 시각자료를 매개로 기 존의 연구와 자료들이 새롭게 연결되고 재해석되면서 당시 역사를 구체화시킬 수 있음을 보 여 준다. 이는 시각자료가 역사 이해의 진전을 위한 학제적 연구의 주요 요소이며 그 활용을 위한 관련 학계의 관심과 논의가 필요함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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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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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과 용어에는 지칭하는 본래의 뜻과 함께 그 의미가 축적되어가는 과정에서 내포된 사 회적 인식과 문화, 경험 그 모든 것들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본 논문의 연구 대상이었던 상감(相嵌, 商嵌)도 그러하다. 일상 속의 풍경이나 물건 등이 서로 끼워진 것, 끼워있는 것 을 지칭하다가 점차 이와 유사한 원리로 시문하는 공예의 감입법의 명칭으로까지 그 범위가 확산된 것을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중국 명ㆍ청대 문헌을 중심으로, 오늘날 우리가 ‘상감’(象嵌, 相嵌, 商嵌)이라 부르는 금속 감입 기법과 동일한 명칭이 당대에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문헌에서 주로 등장하는 相嵌과 商嵌의 용례를 추출하여 분석을 진행하였다. ‘서로 상’(相)을 쓰는 相嵌은 금속 공예의 감입법을 포함한 끼우기ㆍ결합 행위 전반을 아 우르는 포괄적인 기법명이었다. 반면 商嵌은 하ㆍ상ㆍ주 시대 동기에 나타나는 감입 기법에 뿌리를 둔 명칭으로, 이후 이를 계승한 고동기에도 사용되며 점차 전통성을 내포한 용어로 자리 잡았다. 상감 시문에 사용한 재료는 주로 금과 은이었으며, 실이나 문양 형태의 장식재를 기물 표면에 끼워 넣는 원리는 한국의 입사기법과도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상감이라는 용어가 중국 문헌에 등장하기는 하나 실제로는 ‘감’(嵌), ‘착’(錯), ‘양감’(鑲 嵌) 등이 금속공예 감입 기법을 지칭하는 용어로 보다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고려와 조선에 서는 ‘입사(入絲)’와 같은 고유의 기술 명칭이 형성되어 사회 전반에 통용되고 있었으며 ‘상 감’은 중국에서 사용하는 기법명으로 인식되어 소수의 문헌에서만 제한적으로 확인된다. 결국 ‘상감’이라는 용어는 동일한 금속 감입법을 가리키면서도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배 경에 따라 서로 다른 한자 조합과 명명 원리를 통해 고유의 정체성을 반영하였다. 본 논문은 이러한 차이를 기호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공예 용어로서 ‘상감’의 개념 축적과 전개 양상 을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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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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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근대 박물관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기(1887~1954) 베트남 내에서 프랑스의 아시아 연구를 수행한 기관인 프랑스국립극동연구원(EFEO: École française d'Extrême- Orient, 이하 극동연구원)의 활동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베트남 근대 박물관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라는 시대적 상황과 설립 주체인 극동연구원의 특성상 프랑스 본국의 정치적 판단 과 문화유산 정책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베트남 내에서의 초창기 박물관의 형성과 특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극동연구원에 의해 설립된 베트남의 근대 박물관들은 기본적으로 인도차이나 각지의 유 물을 수집, 보존, 연구, 전시하며 연구 성과를 꾸준히 발표했다는 점에서 문화유산 보존 및 연구기관으로서의 특성을 지녔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인도차이나 지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 여 장기적으로 식민 지배를 뒷받침하고, 대내외적으로 프랑스의 지배력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인 목적 또한 존재했다. 한편 해당 박물관들은 유물 수집 과정에서부터 체계적인 법령의 제 정을 통해 유물에 공공성의 특성을 부여하고,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아시아인들에게도 개방하 여 근대적 박물관의 중요한 특성인 ‘공공성’ 또한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본 연구는 초창기 베트남 근대 박물관의 형성 과정과, 그 과정에서 극동연구원이 수행한 역할을 통해 그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기 박물관을 통한 베트남 학술 연구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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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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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야 테페 무덤군은 1세기경 조로아스터교 사원 자리에 4호묘의 30대 남성묘와 5기의 여성묘로 구성되었다. 이 글에서는 피장자들을 타림분지에서 서천하여 박트리아 지역을 정복 한 인도유럽계 유목민족인 월지인들로 판단하였다. 그리고 피장자들의 장신구와 매장 방식으 로 보아 왕족의 가족묘로 보고, 사후결혼의 시각으로 해석하였다. 4호묘 남성은 관식과 장신구를 통해 왕족으로 보았고, 염소(산양)와 수목 장식이 있는 관 식은 태양과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5기의 여성 피장자들은 모두 나나 여신과 관계된 장신구를 착용하였고, 특히 6호묘는 가장 위계가 높은 존재로 추정하였다. 나나 여신 은 대지ㆍ풍요ㆍ왕권 부여의 여신으로, 메소포타미아 기원을 가진 여신이다. 박트리아에는 이미 키벨레와 같은 지모신 신앙이 존재했고, 틸리아 테페 무덤에서는 사자 위에 올라탄 여 성상, 뒤집힌 초승달형 별(금성)이 나나의 표식으로 나타났다. 나나 여신은 쿠샨 왕 카니쉬 카의 라바탁 비문에서 왕권을 부여하는 신으로 등장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이민족인 월지족이 여러 종족이 융합된 쿠샨사회를 이끌기 위해 나나 신앙을 택하여 통치자의 권위를 확립한 양상을 조명하였다. 1세기 틸리아 테페에서 찾아지는 사자와 태양이 뜨기 전에 태양 빛을 반사하는 뒤집어진 초승달형 별인 금성의 도상은 이후 카니 쉬카와 그의 아들 후비슈카가 발행한 나나의 명문이 있는 금화에서 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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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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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중국 송금 시기 북방지역 무덤에서 빈번하게 출토되는 자기 베개의 매장 맥락 속에서의 쓰임과 그 문화적 함의를 고찰한 것이다. 송금 시기 자주요 계열 북방 민요의 번영 을 대표하는 자침은 부장 맥락과는 별개로 독립된 예술품으로 많이 연구되었다. 그러나 기타 부장품이 많지 않은 무덤에서도 자침이 출토되는 점과 자침이 유골 머리 바로 위에 위치한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자기 베개는 단순한 부장품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사후세계 에 대한 믿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 논문은 허베이성 징싱현 스좡촌에서 발굴 된 송금시기 무덤군에 자침이 부장된 맥락을 토대로, 같은 시기 유행한 당대 전기 소설 침중 기에 반영된 중세 중국인의 꿈, 삶, 죽음에 대한 사유를 분석하여 자침이 피장자의 사후세 계로의 전환을 보조하는 상징적인 도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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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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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청대 건륭 시기의 대표적 유물 조합인 ‘다보격(多寶格)’의 자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다보격은 건륭 시기에 가장 중요한 예술품 조합 형식으로, 단순히 건륭의 독 특한 미적 취향을 생생하게 반영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정치적, 문화적 함의를 내포한다. 본 연구에서는 동시기의 유물 조합인 ‘백십건(百什件)’과 ‘다보격’ 간의 차이를 탐구하고, 다 보격을 구성하는 자기의 비중이 크고 다양한 점을 규명하였다. 따라서 다보격 내에 구성되는 자기의 조합과 맥락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나아가 그 이면에 담긴 건륭의 정치적 의도와 사상적 측면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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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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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conducts a study on the porcelain of the “Duobaoge”(多寶格), a representative combination of artifacts from the Qianlong period in the Qing Dynasty. The Duobaoge is the most significant form of artifact combination during the Qianlong’s period era, vividly reflecting Qianlong's unique aesthetic sensibilities while also containing rich political and cultural connotations. This research explores the differences between the artifact combination “BaiShijian” (百十件) and the “Duobaoge” from the same period, clarifying the considerable and diverse significance of the porcelain that constitutes the Duobaoge. Therefore, it comprehensively examines the combinations and contexts of porcelain within the Duobaoge, further analyzing the political intentions and ideological aspects underlying the Qianlong’s 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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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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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명기(明器)라는 물적 자료를 통해 중앙에서 확립된 새로운 의례가 지방으로 전 파 및 수용되는 과정을 탐색하고, 조선시대 의례기물이 민간에 유통되었던 방법에 대한 고찰 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명기가 본격적으로 확인되는 16~17세기에 초점을 맞춰 분묘 유적을 중심으로 출토된 명기를 비교하고, 당시 문헌 기록 및 기타 유적 출토품과의 대조를 통해 종합적인 검토를 시도하였다. 명기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기물(器物)을 구분하고자 했던 유가 사상에 의해 정립된 개념 으로, 유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던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상례 제도의 절 차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실생활에 사용되는 기물과는 구별되는 작은 크기의 기 물들이 분묘에 부장되었다. 명기 출토 양상은 전반적으로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 사이에 경기도 일대를 중심 으로 출토되기 시작하다가 충청도를 거쳐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로 명기 부장 문화가 확산 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재질이나 구성에 있어서도 중앙과 가까운 곳일수록 예서를 준용 하려는 모습이 보이며, 멀어질수록 상대적으로 구성 및 조합에서 예서에서 확인되지 않는 기 형들이 확인되고, 퇴화 정도도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매납되었던 명기는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유통되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첫 번째는 시전행랑과 같은 시장 유통망을 통한 방식이며, 두 번째는 관청에 소속된 관장(官匠)을 통해 명기를 마련하는 방식, 세 번째는 민간의 사장(私匠)을 통해 개별적으로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명기 유통 방식에 대한 이해는 조선시대 민간에서 소비되었던 도 자기류 및 장례용 기물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생산되고 유통되었는지 유추할 수 있는 단서 를 제공하며, 당시 물질문화와 소비 구조를 이해하는 기초 자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의 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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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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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유람 문화의 한 형태인 뱃놀이는 풍류를 넘어 행위의 폐단으로 기록될 만큼 성 행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흐름 속에서 뱃놀이를 기록하고자 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나타나며 선유(船遊)와 관련된 문학작품이 다수 생성되었고, 동시에 선유도(船遊圖)라 명명할 수 있 는 뱃놀이 그림이 활발하게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본 연구는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다루어졌 던 선유도라는 화제가 제작되기 시작한 배경을 분석한 후,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조선 후 기 선유도의 제작 배경과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선유도 제작은 17세기 문인 계층 사이에 공유된 문화적 흐름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중국에서 유입된 선유 문학 가운데 소식의 「전ㆍ후적벽부」와 주희의 「무이 도가」가 조선 후기 선유문화를 기록하고 시각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선상 유희를 즐기 는 문인의 전형적 표상으로 정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낙동강을 따라 전개된 선유는 영남의 지역적ㆍ시대적 특수성을 반영하며, 낙동강 유 역 선유도를 제작할 수 있게 한 동인이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선유도를 향유하는 문인들의 감상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낙동강 상류에 도산서당이 건립된 이후, 낙동강은 퇴계 이황의 도학이 흐르는 곳으로 인식되었으며, 선유는 그 도맥을 계승하는 상징적 실천으로 행 해졌다. 이에 따라 선유의 행위가 시각적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물로서 선유 도가 제작되었다. 이와 같은 제작 배경은 선유도가 감상화의 성격을 넘어 세전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당대의 사상과 실천을 기록하고 전승하려는 기록화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남을 보여준다. 이처럼 조선 후기 선유문화의 흥성과 향유 양상을 중국 문학의 유입을 통해 조망한 뒤, 그 공통된 특징을 바탕으로 낙동강 유역의 선유문화와 선유 도가 지닌 차별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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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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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일제강점 후반에 접어들어 금속기 대용 도자의 개발과 연구가 본격화된 시기적 상황을 살펴보고 실제 실용화되어 가는 전 과정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일제는 1937년에 발발한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금속기 헌납운동을 범국가적으로 시행하였다. 군수 물자 조달을 위한 방책이었던 금속기의 국가 헌납이 가속화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용 도자기 개발은 필연적이었다. 당시 이 대용품을 주도적으로 개발한 연구기관은 중앙시험소였 다. 시험소 요업부에서는 대용품 개발에 필요한 원료의 재조사를 비롯하여 투입될 연구진들 을 적극 지원하였다. 특히 이 기관은 이미 관련 개발에 돌입했던 일본의 성과를 수용하는 한 편으로 식민지 조선에 부합할 만한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요업활동에 동 원할 수 있는 노동력이 부족했고 원자재의 물량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했다. 가령 대용품 생산에 필요한 도토는 일본으로의 유출 심화로 인해 매우 부족한 실정이었다. 즉 그 어느 때 보다도 군수품 생산이 절실하게 요구되었지만 금속기 헌납에 비례할 만큼 도자 대용품 생산 은 활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도자 대용품 개발이 시작되면서 금속기를 대체할 수 있는 신물질을 발견하고, 이를 대중화하려던 시도는 근대 요업에서 매우 혁신적인 성과였다. 또한 도자기와 금속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유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도자대용품은 조선의 원료를 활용하고 일본의 기술력으로 완성되었지만, 도기질(陶器質) 활용에 대한 시각이 새롭게 발현된 점에서는 국가적 상황을 막론하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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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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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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