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東洋美術史學 KCI 등재 동양미술사학 Dongyang Misulsahak(Journal of Asian Art History

권호리스트/논문검색
이 간행물 논문 검색

권호

제9권 (2019년 9월) 9

1.
2019.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Сүүлийн жилүү Монгол орны хадны зургийг судлах тал дээр багагү амж илтолж олон тооны хадны зургийг шинээр илрүү судалж он цагийн хамаар лыг шийдэж байгаа билээ. Гэвч цөөн тооны хадны зургийг эс тооцвол Хүү ү холбогдох хадны зургуудыг нарийвчлан тогтоож чадаагү байна. Дээр дурдсан бү ү Хүүгийн ү зургуудыг эртний нүү “амьтны загварт” ур лагийн зарим нэг элементүү өөөө хадгалж ү боловч илүү бодит байдал руу ойртсон энгийн загварчилсан, хялбарчилсан гэж хэлж болохоор байна. Энэ ү хадны зургууд нь нэг талаасаа амьтны загварт урлагтай холбоотой байх боловч нөөө талаас харвал эртний тү хадны зургийн ү суурь болсон гэж ү болох юм. Иймээс зарим зургуудыг хүү юмуу түэгийн ү зураг хэмээн нари йн тодорхойлоход бэрхшээлтэй байдгийг тэмдэглэе. Энэ бү ү хүү нар тэнгэр, газар, өө дээдсээ шү болж өө амьдрал ахуй, мал сү тэдэнд даатган мал аж ахуйтай холбоотой шүтлэг зонхилох болсон гэж ү. Түү мал сү өө хөөө хирээр ан агнуур аж ахуйн хавсрага шинж чанартай бо лж ирсэн, өө дээдэстээ адуу малаар тахилга өө болсон, өө гэсэн оромж сууцта й болсноор ө гэрийн тахилга үү зэрэг учир шалтгаануудын улмаас хаданд зураг дү урлах нь аажмаар багассан хэмээн ү байна. Хэдий тийм боловч ту хайн ү хадны зураг цөө тоотой Хадны зураг судлалын өөө тү тодорхой мэд эгдэжбуй цөө тооны зургаас өө бусад зургийг тө түүү ү болон тү ү зургаас ялгах боломж одоогоор хангалтгү байна. зурагдаж байсныг хүү нарт газар, тэнгэр, нар сар болон гал голомт, өө дээдсийг шү цогц ойлголт нэгэнт би й болсны зэрэгцээ тотемизм, анимизм, маги зэрэг нэн эртний шү бишрэли йн гол элементүү хувирсан хэлбэрээр зэрэгцэн оршсоор байсантай холбон т айлбарлаж болмоор байна.
5,400원
2.
2019.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근 고고학의 성과에 기반하여 몽골에서 흉노시대의 암각화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암 각화 연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편년에 대한 문제이다. 최근 연구자들이 홉드 아이막(Khovd aimag) 야만 오스(Yamaan us) 계곡의 하난 하드(Khanan khad)에 있는 두 대의 수레마차 (布帳馬車), 돈드고비 아이막(Dundgov’ aimag) 델 올(Deel uul)의 수레마차 그림, 그리고 중국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의 몬 올(Mon’ uul)의 암각화와 러시아 연방의 예니세이(고를로스, Gorlos) 강의 중류에 위치한 아르고 올(Argo uul)의 암각화, 보야르(Boyar) 의 암각화 등을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로 비정함에 따라 흉노 암각화에 대한 기준 작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흉노 암각화의 특징은 동물을 반대 방향 또는 서로를 바라보게 하여 쌍으로 그린 양식인 데, 비가 제 때 내려 가뭄을 피하고 풍요로운 수확을 얻기를 바라는 농경민들의 바람을 상징한 것으로 연구된다. 또한 고대 신화와 영웅 서사시에서 말이나 사슴은 구원자와 조력자의 보호자나 조력자로 등장하는 것을 참고할 때 물을 숭배하는 신화학의 반영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흉노시대의 암각화가 주로 몽골에서만 분포되는 것은 동물과 자연 현상을 숭배하는 방식에서 하늘과 땅, 조상들의 영혼에 제사를 지내는 형태로 점차 변화한 것과 관련이 있다. 더 나아가가 문자가 사용되면서 바위에 그림을 그려 제사를 지내던 관습이 점차 소멸한 것으로 본다.
5,500원
3.
2019.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Хүннүчүүдийн хувьд хүлэг морьд амин чухал ач холбогдолтой байсан х эмээн үзэж болно. Адуу тэдний уналгын гол хэрэгсэл байж хол ойрд яваха д хэрэглэхээс гадна аян дайнд хамгийн чухал зэвсэг нь болж байжээ. Тэдн ий цэрэг бүгд морин цэрэг байсан тул шилжилт хөдөлгөөн хурдан байснаа р өмнөд хөршийн болхи хөдөлгөөнт явган армиас хол илүү байсан юм. НТӨ 318 онд Хятадын Жао ванлигийн Ү лин ван армидаа шинэчлэл хийхийн ту лд “ху хувцас өмсч, морь унаж сурах” зарлиг буулгаж байсанньХүннүгийнар миөмнөдхөршөөсдавуубайсныгхаруулахнэгбаримтбилээ.Ерньхятадуудынолонз уунытуршидхойдхөршнүүдэлчдээсайжтүгшижбайснынэгчухалшалтгаанньнү үдэлчидморьтцэрэгтэйбайсантайхолбоотойгэжүзэхэдбуруудахгүйболовуу. Хан улсын У-ди хаан Хүннүг дарахад шандас сайтай хүлэг морь чухал ач холбогдолтой болохыг ойлгоод Фергана (Да вань)-д байх цусан хөлст хүлэ г морьдтой болохыг шөнө нь зүүдлэж, өдөр нь бодож байсан тухай сурвалж ид тэмдэглэсэн байдаг Булшнаас илэрсэн олдворт тулгуурлан үзэхэд Хүннүгийн тэргийг ерөнхи йд нь 4 дугуйтай болон 2 дугуйтай тэрэг хэмээн хуваан авч үзэх боломж той аж. Гэхдээ 4 дугуйтай тэрэгний олдвор нь 2017 онд Чихэртийн зооги йн дурсгалт газраас илэрсэн 2 тэрэгний үлдэгдлээс өөр байхгүй ба 2 дугу йт тэрэг нь малтлага судалгаа хийсэн дийлэнх язгууртны булшнаас илэрс эн байна. 2 дугуйт тэргийг шүхэрт ба мухлагт хэмээн хэлбэрээр нь 2 хува аж үздэг ажээ. Язгууртны булшнаас илэрсэн тэрэгнүүдийг Хятадын Хан улс аас бэлгэнд ирсэн хэмээн үзэх хандлагатай ч сүүлийн үеийн малтлагын за рим хэрэглэгдэхүүнд тулгуурлан зарим тэргийг дотооддоо хийсэн хэмээн т аамаглах боломж бий болж байна. Гэвч энэ нь одоогоор таамаглал төдий б өгөөд цаашид нарийвчилсан судалгаа хийх шаардлагатай сэдэв юм.
6,600원
4.
2019.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흉노인들에게 말은․원거리용 주요 이동수단이자, 전쟁에서는 핵심적인 무기로 활용되어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말의 중요도에 따라 몽골의 흉노 무덤의 발굴 출토품에서 상당 수 비중을 馬具가 차지한다. 마구는 일반계층 소형 무덤과 소위 귀족계층 무덤이라 불리는 대형 무덤에서 모두 출토되며, 마차의 경우 주로 대형 무덤에서만 출토되는 특징이 있다. 무덤에서 온전히 출토된 마차들은 주로 의례 ․ 행사용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마차들로 노 용 올 20호묘, 골 모드 20호묘, 골 모드-Ⅱ 1호묘, 도르릭 나르스 1․2호묘에서 발견되었다. 二輪 바퀴 및 방형의 수레에 사람이 타거나 짐을 싣는 부분인 車箱과 그 위에 햇빛가리 개인 車蓋가 씌운 것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흉노는 피장자와 더불어 마차를 매납하는 풍습이 존재한 것을 알 수 있다. 했 던 것으로 관찰되며, 마차는 대부분 귀족계층 무덤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흉노 사회의 중 상위계층에서 매우 유행했던 풍습인 것으로 이해된다. 한 기의 무덤에 한 대의 마차가 부장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골 모드 1호묘에서는 마차 두 대의 흔적이, 골 모드-Ⅱ1호묘에서는 온전한 한 대의 마차와 10여 대 분량의 청동, 철제 마차 부속이 발견된 바 있다. 골 모드-Ⅱ 1호묘 출토 마차 부품 중 일각수를 닮은 신화적 동물은 무덤 주인을 대변하거나 씨족적 상징의 표현물으로 본다. 이를 통해 그간 귀족계층 무덤에서 출토된 마차들은 중국 한나라로부터 선물 받은 것으로 해석했지만 수레와 마차가 흉노 자체적으로 생산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자 한다.
5,700원
5.
2019.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전륜성왕 아쇼카와 관련된 에피소드 가운데 불탑 건립과 흙을 보시한 설화 미술이 고대 인도 미술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를 고찰한 것이다.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인 마우리아 제국의 아쇼카왕은 불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중인도에 머물러 있던 불교를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인도와 북인도, 또는 로마에까지 전파한 것이다. 전륜성왕으로 일컬어지는 아소카왕은 불교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예배대상인 불상 및 불탑과 관련이 깊다. 고대 인도의 대표적인 불교미술은 석가여래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인데 塔門과 欄楯에는 주로 석가여래의 일대기와 전생담이 새겨져 있다. 이와 함께 아쇼카왕의 성지순례, 8만4천 탑 건립에 관한 설화, 전생에 석가여래에게 흙을 보시한 에피소드가 표현되어 있어 주목된다. 고대 인도 미술에서 석가여래와 아쇼카왕에 관한 설화미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아쇼카왕과 관련된 불교미술 가운데 첫째, 석가여래의 사리를 봉안한 근본 8탑 가운데 용왕이 지키고 있다는 Ramagrama 탑의 에피소드와 관련된 미술에 대해서, 둘째 ‘阿育王施土’로 알려진 아쇼카왕의 前生과 관련된 설화 미술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 이야기들은 佛滅 후 100년 후에 아쇼카왕이 등장해 8만4천기의 탑을 세운다는 석가여래의 예언과 관련이 있어서 주목된다
6,700원
6.
2019.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고구려 벽화고분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인 발굴 조사와 학술 연구를 통해 현재까지 역사, 고고, 복식, 문화사, 미술사 등의 방면에서 적지 않은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처음 발견된 1907년부터 1980년대까지 벽화고분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일제강점기 발굴을 처음 시작한 일본과 벽화고분이 위치한 북한과 중국에 의해 주도됐다. 한국 학계는 정치 이념과 지리적 문제로 인해 원천자료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했고, 척박 한 연구 환경으로 인해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일본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벽화관련 출판물들이 다량 유입되면서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들이 서서히 갖춰지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고 2000 년대 초에 남북 간의 화해무드로 인해 학술교류가 활성화되면서 벽화에 대한 실견과 원천자료에 대한 접근이 한 층 수월해졌으며 미술사 연구를 위한 토대도 전보다 탄탄해져 갔다. 1990년대 이전까지 미술사 분야의 연구는 벽화고분이 갖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학계의 주목을 받기 어려웠으나, 이후 전문 연구자들이 배출되고 미술사의 양식론에 입각한 거시적, 미시적 관점의 다양한 논문들이 생산되었다. 게다가 회화이외에 공예나 불교조각를 전공하는 미술사학자들도 고구려 벽화 연구에 동참하여 전공 연구자가 아니면 다룰 수 없는 세부적인 주제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데 기여했다. 100여년에 걸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는 그동안 다양한 주제에서 적지 않은 성과물들을 생산해냈지만 전공인력의 부족과 벽화 원천자료의 불완전한 공개 같은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 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많은 고분의 벽화 자료가 제대로 정리, 발표되지 않아 벽화연구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남북교류를 통한 원천자료의 정리와 출판이 시급하며 벽화를 전공하는 미술사 방면 연구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배출되어 다양한 방면에 걸친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양식론에 입각한 연구결과물들이 보다 많이 쌓여 고구려 벽화고분의 편년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기준안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5,800원
7.
2019.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여말선초 관음보살상 중에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취하는 좌법으로 알려진 윤왕좌(輪 王坐, Maharaja-lila 또는 Rājalilāsana)를 취하고 있는 조각이 다수 확인된다. 기존의 불교조각사에서 제작된 바 없는 작례로서 활발한 대외교섭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 시대 관음신앙을 통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윤왕좌를 취하고 있는 관음보살상의 도 상을 살펴보면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에 상주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중국 송대 제작된 수월관음보살의 모습에서 그 원류를 확인할 수 있다. 윤왕좌를 취하고 있는 관음보살상의 양식적 특징은 여말선초 불교조각의 양식사적 흐름위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는다. 통일신라 양식을 기반으로 외래양식을 적절히 수용한 전통양식과 원․명대의 독특한 티베트계 양식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제작경향을 살펴보면 소형의 호지불상(護持 佛象)이나 경상(鏡像)과 같은 휴대용 불교용구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어 독특하다. 이들은 제난구제(諸難救濟)나 안산(安産) 등 현세이익적인 원(願)이나 정토로 향하고 싶은 내세에 관 한 염원을 담을 수 있는 대상으로서 이를 성취하고자 하는 강한 마음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5,500원
8.
2019.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주자성리학을 국가의 기본 통치이념으로 건국된 조선조에서 임금은 그 모든 사회체제의 구심점이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그러한 임금의 대표적인 의사표현 수단이 어필이다. 어필은 내용적으로는 임금의 개인적인 생각․사상 및 그 시대의 제반 요소가 담겨져 있고, 서체적로는 조선조의 서예사와 서예미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척도이다. 그동안 어필 관련 연구는 일부 임금의 서체에 국한하여 부분적으로 연구되어 조선조 전체적인 관점에서 어필을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본 논문은 임금의 서체에 대해서는 제외하고 『조선 왕조실록』에 기술된 어필에 담겨진 내용을 중심으로 세부적으로 분석․고찰하였다. 실록에 기술된 어필에 대한 내용 속에는 어필과 관련된 형식적인 내용에서부터 문화적․ 사상적․정치적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임금이 써서 내린 글을 통칭하여 어필이라고 하는데, 실록에는 임금의 글씨에 대한 명칭을 다양한 용어로 쓰이는 것이 확인된다. 어필의 정치적․사상적 배경도 주자성리학적 세계관에 따라 王道政治를 근본으로 禮治思想을 절요처로 하여 왕도정치와 예치의 통합을 통한 ‘修己之學’과 ‘治人之學’적 요소의 조화로운 통일을 지향하였다. 어필은 서체적 의미 이외에 어필내용을 깊이 분석하여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임금이 어필을 내린 사유를 분류해서 정의한다면 “임금이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고, 종묘사직의 안위를 지키며, 선대왕 및 성현들의 유지를 존숭하고 이를 본받아 계승하며, 신하와 백성들과의 소통 및 교육적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임금의 입장에서 표현하는 형식적인 의사 표시 수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조선조에서 어필의 상징성은 지엄, 권위, 존숭, 공신력, 초권력적 성격을 띤다. 임금은 나라의 지존으로서 이러한 상징성에 의거하여 어필정치를 하였다. 이에 따른 어필의 효용성은 첫째 왕도정치의 구현의 수단, 둘째 행정적 통치의 구현 수단, 셋째 교훈․경계적 現示의 수단, 넷째 국방․외교에 관한 신뢰구축의 수단, 다섯째 특별권력으로써의 왕권 구현 수단 등으로 어필이 다양한 역할을 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조에 있어서 어필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려 나감에 있어, 임금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직접적이고 형식적인 수단이었다. 이 어필 속에는 임금의 생각과 사상, 그리고 나라를 다스려 나가는 국정운영의 방향과 철학이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다. 이 에 따라 어필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고찰하여 어필 속에 담겨진 의미를 다양하게 도출하였다. 조선조는 임금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어필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조선조를 전반적으로 이해 하는 중요한 지렛대이다. 즉 어필은 조선조 이해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따라서 이번 어필 내용에 대한 연구는 향후 조선조의 정치적 사회적 이해는 물론이고 특히 미술사, 서예사 등 조선조 미학에 대한 연구를 심화 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7,000원
9.
2019.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보스턴미술관의 한국미술 컬렉션은 보스턴미술관의 운영 및 소장품 수집과 관련된 컬렉 터들과 큐레이터에 의해 변화를 겪어왔다. 보스턴미술관의 동양미술품 소장 및 연구는 일본 과 중국이란 큰 축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그 중 한국미술은 부수적인 부분으로 다뤄졌다. 본 논문은 동양컬렉션의 조성 과정 및 소장과 연구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 두 명의 큐레이터와 컬렉터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보스턴미술관의 한국미술 컬렉션의 형성과 특징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하였다. 보스턴미술관에 한국 미술품이 처음 소장된 1892년에서 1910년 사이 에드워드 실베스터 모스(Edward Sylvester Morse, 1838~1925)의 한국 도자 컬렉션이 가장 주요하다. 일본 도자기와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표본으로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시기의 다양한 한국 도자기가 수집되었으며 특히 신라, 가야의 토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시기, 종류의 구분 없이 하나의 캐비넷에 전시된 한국도자기는 민족학, 인류학과 유사한 맥락에서 연구되었다. 이어지는 1910년대와 1920년대에는 기존 동양미술 컬렉션에 부족한 일본 조각과 중국 미술품들을 보강하는 과정에서 회화, 공예 등 다양한 매체의 한국미술품이 함께 소장되었다. 그 중 특별 기금을 통해 수집된 고려청자는기형, 색감, 문양, 유약 등의 특징을 파악하는 등 청자 자체로서 전시, 연구되는 양상을 띠었다. 연구를 통해 과거부터 중국, 일본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우수함과 고분 출토 도자기가 갖는 진품성이 고려청자를 한국미술의 대표격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한편 고려청자는 중국 고대 역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동양미술의 보고로 발전한 일본미술까지의 시대적 변화를 담은 보스턴미술관 동양미술 전시에 한 부분으로 자리하였다. 전시구성과 함께 보스턴미술관의 동양미술 소장, 연구에 반영된 오카쿠라 카쿠 조(岡倉天心, 1868~1913)의 영향은 동양미술 연구자와 컬렉터들로 이어졌다. 다음으로 도미타 코지로(富田幸次郎, 1890~1976)가 동양미술부를 이끌어 나가던 1930년 이후, 일본 미술상과의 관계 속에서 고려시대 금속공예품이 주로 소장, 연구되었다. 동서양을 오가며 주요 컬렉터 및 기관과의 관계를 형성해 온 야마나카 회사(Yamanaka Company)를 통해 수집된 금속공예품은 코지로에 의해 일본 연구자들의 발굴, 연구성과를 활용하여 연구되며 한반도 내 일본 식민정책의 성과를 함께 담아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 국미술 컬렉션에 가장 큰 기여한 찰스 베인 호이트(Charles Bain Hoyt, 1889~1949)의 한국 컬렉션은 고려청자, 금속공예에 편중되어 전체 한국미술 컬렉션과 유사한 구성을 가지고 있으나 조선시대 도자기가 청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수집되었으며 다양한 기형, 기법을 반 영하고 있어 개인의 취향도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6,3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