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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美術史學 KCI 등재 동양미술사학 Dongyang Misulsahak(Journal of Asian Ar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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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13권 (2021년 9월)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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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d on the trade between Europe and Asia in 18 th century, this essay offers are-evaluation of Lady with Parasol, a famous pattern on Chinese export porcelain by Dutch artist Cornelis Pronk. This pattern is designed for the Dutch East Indian Company for sending special porcelain order from China and plays an important role in the history of export porcelain. By rethinking the origin of Pronk’s design and the transformation of it on porcelain plates produced in China, Japan and Europe, this case reveals the life cycle of an image from design, delivery, production, accommodation to appropriation in a perspective of global history and transcultural communication, highlighting the creation and imagination of Exotic in cultural encoun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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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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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8세기 아시아와 유럽 간의 무역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화가 코르넬리스 프롱 크(Cornelis Pronk)가 디자인한 ‘양산을 든 부인(Lady with Parasol)’자기의 도상과 이와 관련된 무역자기에 대한 문제를 재차 정리하고 고찰하려 시도한 것이다. ‘양산을 든 부인’ 자기 도상은 프롱크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위해 특별히 고안한 주문 제작자기 도상으로서 무역자기 연구에서 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본문은 관련 연구사를 기초로 하여, 도상의 유 래를 재고찰하였으며, 중국․일본․유럽 등지에서 생산된 유사 자기들의 변형 양상을 분석 하였다. 또한 국경을 넘나들며 지속된 도상의 탄생과 유통, 생산과 수용, 변형 및 타 문화권 과의 조우에서 태동되는 ‘이역(異域)’의 상상과 그 창조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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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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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per uses linglong porcelain wares existing at two different types of kilns- Guanyao (official kiln) and Minyao (folk kiln) as examples. Firstly it discusses the situation of this type of works circulating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during the 17 th century. Secondly it explores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its styles. Lastly, it reflects on the process of Qianlong official kilns producing linglong openworks with two layers and the pottery supervisor’s innovative style made for the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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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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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속성이 다른 관요와 민요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영롱자기(玲瓏瓷器)의 예를 통해 먼저 17세기 전반 동서무역항로에 이런 작품들이 유통된 것을 검토하고, 이어 관련 양식에 대한 기원과 변화를 논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8세기 건륭(乾隆)년간 관요에서 영 롱투각쌍층기[玲瓏鏤空雙層器]를 생산하게 된 경위와 독도관(督陶官)이 황제를 위해 새롭 게 해석한 신양식에 대하여 재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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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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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채는 태생부터가 유럽시장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생산된 자기이지만, 18세기 후반 이후 이슬람 세계로의 소비정황이 확인되고, 19세기에 이르면 본격적인 이슬람 시장으로의 수출이 이루어져 광채자기의 생산과 수출과정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8세기의 대표적 예로 무굴제국에 유입된 광채 식기세트가 있으나 소량에 불과하다. 이 는 아마도 당시 동인도회사가 중서무역에 절대적 우위를 선점하는 가운데, 영국 동인도회사 령의 무굴제국에서 아시아 간 역내무역 형태로 소량 주문되어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아시아 역내무역의 주요 축이었던 인도 무굴제국과 중국과의 소규모 거래에 의한 것으로, 수 출된 광채자기의 장식이 유럽 도기에서 주로 사용된 ‘백색 위의 백색(Bianco Sopra Bianco)’ 기법이 상용된 것으로 보아 특정 계층을 위한 소량의 주문품으로 보인다. 다만 이 때 광주의 요업계 역시 동인도회사를 통한 유럽으로의 대규모의 수출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세계는 핵심 시장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1840년대 광동의 일항 체제가 종식되면서, 광채의 수출에도 드디어 변화가 감지된다. 19세기의 중국 요업계는 주요 고객을 잃으면서 새로운 시장으로의 개척이 필요했 고, 광채 생산업계는 때마침 1840년대 난징조약에 의한 對중국의 자유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페르시아 카자르 왕조․이집트․오스만 제국 등 이슬람 세계에 의한 직접적 주문과 함께 이 슬람 세계로의 본격적 수출이 이루어 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슬람 세계로 적지 않은 수량이 수출되면서, 카자르 왕조에서 생산된 채회도기의 다수가 광채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도 하 였다. 즉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의 광채 수입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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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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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신안해저문화재 가운데 자기 고족배(高足杯)에 주목하여 출수 현황과 조형 특징을 정리하고, 중국 내 생산 및 소비 유적 출토품과 비교를 통해 그 성격과 특징을 살펴 보았다. 필자가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신안선에서 고족배가 60 여점 발견되었는데 이는 전체 도자기 수량의 0.3% 미만을 차지하는 매우 적은 수량이다. 그러나 청자와 백자가 모두 확인되며 특히 일부 백자 고족배의 경우 부량자국이 관할한 우수한 민간 요장에서 생산된 고 급 생산품이기에 일부는 특별한 목적성을 갖고 교역된 기종으로 여겨진다. 즉 일부 고족배는 높은 위상을 가진 고급 무역품으로 당시 중국 민간 요장에서 중앙으로 공납했던 양식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원나라 관에 공납․유통되었던 것 과 유사한 양식을 갖춘 것이 무역에서 통제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고급 상품성을 가지고 지 역적․계층적으로 폭넓게 유통되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따라서 신안선에서 발견된 고족배 분석으로 원대 도자무역의 개방된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각종 회화와 문헌 자료를 통해 고족배의 용례에 대해 살펴본 결과 중국에서 술잔 혹 은 찻잔, 공양구로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일본에서는 신안선에서 발견된 고족배의 비율을 반영하듯 소비지역에서 출토사례가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도 일부 선 종 사찰에서 고족배가 출토되었다는 점은 소비지 성격을 이해하는데 참고자료로 도움이 된 다. 일본의 용례를 살펴본 결과 술잔, 과일이나 음식 등을 바치는 공양기로 사용되었을 가능 성이 가장 높았으며, 오랫동안 전세되어 내려오면서 그 용도가 바뀌어 다실에서 향로로 사용 되기도 하였다. 또 에도시대 중국 청자 고족배가 재현 대상이 되었던 사례를 확인하여, 일본 일부에서는 중국 고족배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또 소장 대상으로서 애호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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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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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瓷器)는 조선의 중요한 대외 교역 물품이 아니었다. 조선은 전국에 걸쳐 자리하는 가마에서 필요한 백자를 생산했으므로 자기를 만들지 못한 나라들과는 수입해서 사용하는 그 릇의 종류와 크기, 수량이 달랐다. 유럽 등지에서는 새롭고 이국적인 동아시아의 자기가 여 러 왕실과 귀족들의 수집품이 되었지만 조선은 자기 자체를 이미 수 세기 동안 일상의 그릇 으로 사용해왔으므로 다양한 문양이 장식된 일부 청화백자나 오채자기 위주로 중국과 일본의 자기를 들여왔다. 서울 시내 출토양상을 보자면 조선 후기 한양도성에 유입된 외국 자기의 수량은 조선 전 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모양새다.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유상채 자기의 증가 현상 이 추가되지만 청화백자로 만든 발과 접시 등 반상기가 외국 자기의 주류를 이루는 특징은 조선 전기 이래로 계속 이어졌다. 조선시대 해외 교역이 사행이나 일부 상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중국과 일본의 물 산은 자연스럽게 왕실과 사행에 직접 참여하는 관리, 역관 혹은 상인 계층을 시작으로 소비 의 흐름이 마련되었다. 서울 시내에서 조선 후기 외국 자기들이 출토되는 유적이 궁궐이나 그 주변 혹은 시전행랑이 자리하는 종로대로 일대에 주로 위치하는 것도 이러한 상황이 반영 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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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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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唐代)는 고대 중국 사회 발전의 전성기로 대외교류가 매우 활발하였고 도자기도 빠 른 속도로 발전한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요장들이 각지에 널리 퍼졌으며 생산 규모 가 방대하고 그 기술 수준 또한 높았다. 그 중 가장 저명한 요장은 남방의 청자를 대표하는 월주요(越州窯)와 북방의 백자를 대표하는 형요(邢窯)였다. 형요는 남북조(南北朝)시기에 개요한 후 초기에는 청자가 주를 이루다가 북조 후기 중국에서 백자를 가장 먼저 생산하였 다. 그 후 수대(隋代)에 빠른 속도의 발전을 거쳐 당대에 가장 성행하여 중국 백자 생산의 중심이 되었으며 만당(晩唐)시기에 대규모의 홍수와 전란으로 요업이 쇠퇴하여 오대(五代) 시기에 요업이 정지되었다. 당대는 형요 역사상 가장 번성한 시기로 청자가 주도하던 발전 방향을 변화시켜 “남청북 백(南青北白)”의 국면을 맞을 만큼 자기의 수준이 정점에 이르렀다. 이 시기 형요는 중앙아 시아를 통한 서역과의 대외교류를 통해 유입된 문물들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조형의 기물들 을 생산함으로써 당대의 국제성과 개방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국적인 기형들의 기원은 그 계통에 따라 로마-비잔틴, 사산, 소그드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들은 유입 경로나 발전과정에서 문화 요소들이 융합되면서 양식 변천을 보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형요 자기가 각지에서 출토되고 80년대 이후 발굴이 진행되면 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한국에서는 형요 백자가 월주요 청자와 비교되거나 함께 사용되었던 간략한 사례 정도로 다루어져 왔을 뿐 형요 자기 자체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형요 역사상 가장 번성한 시기인 당대에 주목하여 형요 자기에 보 이는 서역의 영향과 특징에 집중하였으며 경제, 문화, 무역이 번영하였던 당대가 가지는 개 방성과 국제성을 형요 자기를 통해 전달하는 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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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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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전기에 한하여 제작된 특수기종 ‘자기 쌍이잔’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들어서며 유교적 재정비가 이루어졌고, 기명을 제작함에 있어서도 역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기종들이 등장한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전기’라는 특정 시기에 한하여 제작된 자기 쌍이잔의 현전 사례와 관련 기록을 살핌으로써, 시기별 제작 양 상 및 변화 과정을 살피고 나아가 제작배경과 용도, 성격을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특히 조선 전기에만 제작되었다는 특징을 통해 조선 전기 도자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피는 데에 그 의 의가 더해질 것으로 보았다. 조선 전기 생산유적의 출토현황을 통해 자기 쌍이잔의 제작양상을 살핀 결과 지방요의 경 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각 지역별로 나타나는 양상이 달랐으며, 관요에서의 제작양상 역시 이러한 지역별 제작양상은 시기별 제작양상과도 연결되었다. 즉 본 연구에서는 Ⅰ-Ⅲ 기의 각 시기에 따른 변화양상을 통하여 자기 쌍이잔이 조선 전기 도자사의 표지적인 유물로 써 그 연구가치가 충분하며, 앞으로의 조선 전기 도자사 연구에 있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 할 것으로 기대해보았다.
6,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