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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美術史學 KCI 등재 동양미술사학 Dongyang Misulsahak(Journal of Asian Ar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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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7권 (2018년 9월)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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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은 성왕 9년(531)에 양나라에서 겸익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판단된다.『금강경』은 양(梁) 소명태자(昭明太子)에 의하여 분장(分章)된 것으로, 처음에는 29장으로 분장되었다가, 그 후 32장으로 세분화된 것이다. 초기 <은제도금금강경>의 번역 오류가 <돈황본 1.2>에서는 교정되거나 추기되었다. 이는 <은제도금금강경>이 <돈황본>보다 선본으로 <돈황본>은 다른 번역본에 의하여 교정되거나 추기된 것이다. <은제도금금강경>의 서체는 북조식남조체이다. 이는 북조필법이 혼용된 남조체로 남조에 서 유행한 북조(北朝)필법(筆法)이다. 즉 80%의 남조체와 특징적인 20%의 북조체가 혼용 된 서체이다. 특히 이체자(異體字)의 사용에 있어서 대부분 6세기에서 7세기 초에 유행한 이체자들을 통하여 <은제도금금강경>의 기록법이 <무령왕능묘지(525)>, <왕흥사청동사리 감명문(577)> 등과 거의 같은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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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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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촉구(燈燭具)는 등 또는 초를 사용하여 불을 밝히는 기구이다. 본 논문에서는 고려시대 등촉구의 종류를 크게 등과 초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광명대(光明臺), 초를 사용하는 촛대 [燭臺]와 번(燔)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등(燈)은 인간의 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인류와 함께 등을 사용하기 위한 등촉구도 발달하였다. 불교에서는 등을 중요한 공양물로 인식 하였는데 지혜의 상징으로 광명을 통해 어리석음의 어둠을 없앨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등공양을 통해 무한한 공덕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성불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부터 다양한 등촉구가 발견되었고 한대(漢代) 부터 초의 사용이 나타난다. 한국은 삼국시대부터 등공양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며, 통일신라에 들어서 등촉구를 찾아 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는 燈具 이외에도 초의 생산이과 함께 촛대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고려시대 등촉구를 광명대, 촛대, 번으로 나누어 각 유형을 분류하고 시기별로 나타나는 특징을 살펴보았다. 광명대는 일반적으로 받침의 모습에 따라 삼족형과 안상형으로 나누고, 특수하게 간주에 쌍사자가 표현된 쌍사자형으로 분류 할 수 있다. 고려시대 촛대는 받침의 모습에따라 안상형과 삼단형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번은 초꽂이가 둥근기둥으로 그 안에 초를 세우는 입촉형, 초꽂이가 針으로 나타나 초를 끼우는 삽촉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은 제작 시기에 따라 다른 특징과 양식의 변천이 나타나기도 한다. 고려시대 등촉구에 나타나는 명문과 동반출토유물을 통해 사찰에서 등공양구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7,000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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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에서는 왕비나 세자의 책봉(冊封) 그리고 상존호(上尊號)를 위한 상옥책(上玉 冊) 의식을, 국가적 행사로서 성대하게 치르고 이를 의궤(儀軌) 기록으로 남겼다. ‘상옥책’ 은 왕실에 관한 공덕과 찬사의 글을 옥간(玉簡)에 새기고 이를 금분으로 메워서 옥책(玉冊) 으로 엮은 것을 올리는 의식이다. 즉 의식의 주된 내용이 옥책의 내용을 낭독하고, 이를 함 (函)에 담아 봉(封)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에 사용되었던 함은 二重의 함으로 내함(內函)과 외함(外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내함은 매우 특별하게 제작되었다. 주칠함(朱漆函)에 니금(泥金)으로 화려하게 장식 되어, 조선 시대 사가(私家)에서 사용한 함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그 내함이 국립고궁박물관에 250여점 현존하고 있다. 본 논문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옥책 내함의 제작 시기를 밝혀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 공예사적 회화사적인 변화양상과 옥책 내함이 의례품으로서 갖는 역사적 의미에 관한 발표자의 이전 연구를 바탕으로 하였다. 옥책 내함은 왕권 강화의 의미와 관련한 왕실공예품이며, 목 공예 금속공예 칠이나 섬유 공예, 니금 그림의 회화사적인 측면에 이르는 다양한 정보를 주는 중요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더하여 여기서 중점할 내용은, 옥책 내함의 시대별 변화양상을 동시대 제작으로 추정되는 내함 外의 다른 국가 제작 함(函)과 비교 검토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자 하였다. 연구자의 앞선 연구에서 옥책 내함의 시기별 변화양상의 흐름을 밝힌 바 있는데, 그것은 뚜렷한 구분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동시대 흡사한 제작 방식을 갖는 다른 목조함의 제 작시기를 추정하는 근거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연구를 시도하였고, 이것은 제작시 기 파악이 어려운 목공예의 편년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은 한정된 수에 불과하여 그 연구의 시작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비교 대상의 확장과 더 나아간 다각도의 연구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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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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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서화고동의 수장과 감상은 명대말기 문인 문화의 수용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는 서적의 수입을 통해 수용되었고, 당대의 문집 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당시의 서화고동의 수집과 감상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서 수장가들은 고동, 서화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건물을 가질 정도로 많은 서화고동을 수장하고 있었다. 조선후기 고동기 수집과 감상의 경향은 명청대의 고동기 방제의 경향을 따르고 있어 상주 대 고동기를 비롯해 명대 선덕로의 방제가 주요한 수집과 감상의 대상이었다. 조선의 고동기 수집과 감상은 주로 鼎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현재 남아있는 것들은 대부분 18~19세기 조선에 유입된 것들이다. 조선후기 고동기 수집과 감상 열기로 인한 감식서도 등장하는데,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이운지」권5 <예원감상>의 고동은 당시 고동기 수집과 감상에 필요한 다양한 내용을 『동천천록』, 『준생팔전』 등 명청대 고동기 수집과 감상의 대표 서적을 인용하여 작성한 것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고동록」에도 당시에 유행하였던 고동기의 종류와 등급 등을 언급하였는데, 박지원은 인용 근거를 명시하시 않았지만 『준생팔전􋺸의 내용과 같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서유구와 박지원이 인용한 『준생팔전』의 내용 중 고동기 등급과 평가에 대한 것은 북송대 편찬된 『선화박고도』를 따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 지배층의 고동 수집과 감상의 경향은 문왕정과 선덕로로 대변되며, 문왕정은 유교적 대의명분이 강하였고, 선덕로는 명대이후 향로의 가장 중요한 품목이었기 때문에 조선 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따랐던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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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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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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