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이미 많은 학자들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갈보리의 언덕』을 읽었지만 주요 평론가들의 평가를 평가하여 예이츠의 『갈보리의 언덕』에 대한 평가를 바로잡는 것이 목적이다. 사실 대부분의 읽기가 불충한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 이 작품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 그런 것 같다. 최고의 예이츠 학자인 헨렌 벤들러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이 작품에 대한 결론을 “별 알맹이 없는(negligible)” 작품이라고 내린다. 본 논문은 이 작품을 피상적이거나 빠르게 읽어 내려가기 보다는 가능한 한 면밀하게 읽고 음미하려고 한다. 본 논문은 이 극이 예이츠의 최고의 중기작 품으로 평가한다. 학자들은 이 작품에 대한 소개든, 주제 분석이든 간에 작품 자체를 충분히 이해하고 음미하려고 한 노력이 부족했었다. 벤들러의 짧은 논의는 한마디로 “알맹이 없는”이라 요약되는데 이 평가가 본 논의를 촉발했다. 그녀의 경우 아마 학위 논문의 주제와 연관해서 8장 “죽음, 정죄, 그리고 부활”에서 『갈보리의 언덕』을 짧게 논한다(이 장이 다루는 다른 극은 『부활』이다). 아마 주제에 한정해서 논하다보니까 이 극의 가치를 간과한 것이지 모른다.
이 논문은 예이츠의 희곡『갈보리』에 나타난 예이츠의 실험적 연극 장치들을 연구한다. 예이츠의 실험적 연극 장치들은 극장을 개혁하고자 하는 그의 반연 극적 노력에서 기인되었다. 그의 노력은 연극적 재현의 혁명적 개혁을 이끌었고, 그의 연극이 디에게시스 연극이라고 불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갈보리』에서 예이츠는 예수의 ‘꿈으로 다시 살기’라는 신성모독의 위험이 있는 주제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과감한 연극적 장치들을 사용하였다. 관객들의 감정적 반응을 자극하는 모든 자연주의 연극적 요소들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그 대신에 다양한 거리를 두게 하는 장치들을 사용하였다. 특히, 디에게시스적 언어로 극을 파편화시키는 디에게시스 장치를 이용해서 관객들이 극의 상황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어서 머릿속에서 상상하도록 이끌었다. 그 결과, 예이츠는 관객이 연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고 극적 갈등이 관객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연극이 가능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