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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연구의 목적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나 창작 입문 단계의 학생들 이 파악하고 창작에 적용하기에 적합한 영화의 이야기 구성 방법을 찾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8단계로 구성하고 그 구성의 적절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연구 결과 프롤로그는 인물 소개, 이야기의 배경,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등을 소개하는 단계이고, 발단은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첫 번째 사건이자 실제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단계 이고, 도발적 사건 단계에서는 그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 삶의 균형이 파 괴되거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전개는 도발적 사건에 대한 주인공 의 대응 단계로 여기서 주인공은 삶의 균형을 회복하거나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표를 가지게 되고 추구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적대자나 장애물이 등장하고 주인공의 목표를 저지하려 한다. 위기는 주인공의 목 표 추구가 강력한 방해를 받는 단계로 주인공이 계속해서 목표를 추구하 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하거나 목표 추구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 의 기로에 서게 된다. 절정은 위기 단계에서 주인공의 최종 선택을 보여 주는 단계로 주인공은 적대자나 장애물의 방해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대 응한다. 결말은 주인공의 최종 목표 추구에 대한 성공과 실패 등 완전한 결과를 보여주는 단계이고, 에필로그는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해소되지 못한 감정, 남은 궁금증을 정리하는 단계이다.
        5,800원
        2.
        2016.12 KCI 등재 SCOPUS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인접 국가인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에서 극한 자연재해로 인한 중대사고가 발생하면서, 국내에서 중대사고 및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 (PSA, Probabilistic Safety Assessment)에 대한 중요성이 재인식되었다. 국내에서는 원전의 소외결말을 평가하는 3단계 PSA에 대한 연구개발이 최근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는 국외 3단계 PSA 전산코드 중, 미국의 MACCS2 (MELCORE Accident Consequence Code System 2), 유럽의 COSYMA (COde SYstem from Maria) 그리고 일본의 OSCAAR (Off-Site Consequence Analysis code for Atmospheric Releases in reactor accidents)에 대한 간략한 분석과 미국 의 MACCS2에 대한 단점 및 한계점 분석을 수행하였다. 국내·외 전문가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지적되어 온 MACCS2의 한 계점은 다수호기사고와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로부터의 방출 모사의 불가능, 그리고 대기확산모델을 단순 가우시안 플륨모델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이며, 이중 일부는 MACCS2업데이트 버전을 통해 개선되어 왔다. Food chain 모델의 모사의 제한, 해양 및 수계 확산모델의 부재, 제한된 범위의 경제영향평가 등 또한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기술보고의 결과는 국내 3단 계 PSA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300원
        5.
        200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섬의 소유를 결정하는 관습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구명하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이러한 연구를 시도하게 된 이유는 “울릉도 쟁계(爭界)" 때에 일본 막부가 울릉도를 조선의 땅으로 인정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일본에서보다 조선에서 더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두루 알다시피 울릉도 쟁계가 발생한 것은 쇄환(刷還) 정책으로 인해 조선 조정에서는 어부들에게 울릉도의 도해를 금지하고 있었던 것과 관계가 있다. 이틈을 이용하여 일본의 막부는 호키주 요나고의 오야•무라카와 두 집안에 울릉도에서의 어채(魚採)를 인정하는 도해 면허를 발급했다. 그렇지만 이 섬에서 조선 어부들과의 조우로, 어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1693년 오야 집안에 고용되었던 어부들이 박어둔과 안용복을 납치해갔다. 이를 계기로 울릉도의 소유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자, 조선의 예조에서는 1도 2명, 곧 조선에서는 울릉도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죽도라고 한다는 사실을 들어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였다. 이로 인해 야기된 분쟁은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간 다음에 결론이 났다. 당시에 막부는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고, 호키주 요나고의 오야•무라카와 두 집안에게 도해 금지령을 내렸다. 이렇게 도해 금지령을 내리면서 제시한 것이 호키에서는 울릉도까지의 거리가 160리 정도인데 비해 조선에서는 40리 정도라는 지리적인 원근에 입각한 것이었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 섬의 소유를 결정할 때에 이런 관습이 작용했다는 사실은 광해군 때에 통신사(通信使)로 도일하였던 이경직(李景稷)의 『부상록(扶桑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습은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고 난 다음에도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기타자와 세이세이(北澤正誠)의 『죽도고증(竹島考證)』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그는 독도인 송도가 일본에 더 가깝기 때문에 일본의 섬임을 증명해야 한다고까지 하였다 또 독도가 항해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빨리 등대를 설치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것은 1904년 나가이 요사부로에게 독도의 편입을 사주하면서, 망루를 세우고 해저전선을 설치하자고 했던, 당시 외무성의 정무국장이었던 야마자 엔지로(山座圓二郞)의 의견과 상통하는 것이어서, 그들의 독도 강탈이 일찍부터 준비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그 과정에서 야마자는 독도가 일본에서 10해리나 더 가깝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견해는 사실을 왜곡한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일본의 『위키피디아(Wikipedia) 백과사전』의 지도에 의하면 오히려 한국 울진에서의 거리가 일본 마쓰에에서의 거리보다 5Km 더 가깝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외무성은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더 가까운 지도를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어, 경제대국에 걸맞는 외교를 하지 않고, 제국주의적인 영토 야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해명하면서, 독도 문제가 한•일 간의 단순한 영토문제가 아니라, 역사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면서, 두 나라 사이에 존재했던 관습도 중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