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李穡 1328~1396)은 원제국(元帝國)이 고려를 지배한지 100여 년이 지난 고려 말에 태어났다. 14살 되던 해, 원(元)의 국자감(國子監) 에 입학하여 성리학을 접함으로써 그의 평생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이 는 훗날 귀국 후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이 되어 후학들을 선발 하여 성리학을 강독, 토론함으로써 고려 성리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공 헌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색은 원(元)과 명(明), 고려와 조선이라는 왕조의 교체기에 따른 역 사적 전환기에 처하여 자신의 경세사상과 역사의식을 적극적으로 드러 내게 되었다. 본고는 이색의 ≪춘추(春秋)≫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의 역사의식과 경세사상을 고찰함으로써 역사적 전환기에 나타난 한 인 간의 행동 양식과 정신세계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색은 전 생애를 통해 6,200여 편의 시문(詩文)을 남겨 동국 문장의 으뜸으로 불린다. 그의 시문집인 ≪목은시고(牧隱詩稿)≫와 ≪목은문고(牧隱文稿)≫는 모 두 ≪목은집(牧隱集)≫에 수록되어있다.
이 글은 조선 중기 德溪 吳健(1521-1574)의 학문에서 그의 성리학적 경세론을 알아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먼저 덕계의 학문적 배경과 그가 활동하던 조선시대의 상황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덕계가 강조한 국가의 비전과 대책을 살펴보았다. 이상의 연구결과 덕계의 經世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덕계의 경세관은 정통 성리학의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구체적인 정치현장에서 정통유학의 의리를 그대로 실천하였다. 그는 유학의 정치 이념을 충실하게 실천한 實踐儒學者였다.
둘째, 言論은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言論은 正義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언론은 역사의 기록이자 志操 곧 正義의 기록이다. 덕계는 정치에 있어서의 疏通은 바로 이 正義를 중심으로 한 자유로운 言路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덕계의 君主論은 聖人君主의 실현이 목표였다. 덕계는 군주의 덕목으로 謙遜・慕善・樂善・敬・誠 등을 강조하였다. 재능 보다는 德을, 威嚴보다는 겸손함을, 말 보다는 실천을 중시하였다. 왜냐하면 誠實하지 않은 지도자는 자신의 말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덕계는 성리학의 理想을 실현하기 위하여 꿋꿋하게 노력한 선각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