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은 경 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居敬을 몸소 실천하려고 노력한 유학자였다. 그는 젊어서 유학을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心經附註라 는 책을 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늦게 깨달아 이루기 어렵다.”고 한탄하기도 하였지만, 처음 학문하고 수양하는 일 에 感發하고 興起한 것은 이 책의 힘이었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송종 관 또한 이 책을 읽고 나서 서예가 마음의 그림이라는 의미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서예가 마음의 그림이라고 하는 설은 일찍이 한나라 양웅이 제시하 였다. 이 설은 나아가 ‘마음이 발라야 글씨가 바르다.’․‘마음 법이 곧 서법이다.’․‘사람이 발라야 글씨가 바르다.’ 등으로 전개되어 서품이 곧 인품이라는 ‘書與其人’ 설로 발전하였다. 서여기인의 근본은 도덕성이다. 도덕성은 敬의 사상에서 비롯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경은 공경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의 이 의미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살펴보면 더욱 오묘한 이치가 담겨있다. 경은 곧 道의 이론적 근본이 되면서 도를 실천 하는 방법이기도 하 다. 이때의 경은 엄숙․경건․공경․경외․깨어있음․마음의 수렴 등 다 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 다양한 의미 가운데 程頤와 朱熹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主一無適’의 의미였다. 주일무적은 글자 그대로 하나에 집중하여 흐트러짐이 없다는 뜻으로 일종의 정신집중을 의미 한다. 하지만 더 깊은 뜻은 인욕의 유혹에서 벗어나 천 리의 실천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서예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서예공부는 서예의 이론적 근본을 바탕으로 기능적 실천이 따라야 하 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자는 서예의 근본정신을 경의 사상으로 보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자는 “내가 글씨를 쓸 때 매우 경한 마음으로 쓴다. 이것은 글자를 잘 쓰고자 해서가 아니라 다만 이것이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 정자의 ‘寫字時甚敬’은 곧 유가 도덕 서예의 근본사상 이 되었다. 이황 역시 이 의미를 모를 리 없었던 것이다. 이황은 이 ‘敬字之意’를 서예에서도 실천에 옮겨보려고 노력한 학자였다. 그래서 그의 서예를 ‘경의 서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논문은 16세기 조선시대의 南冥 曺植(1501-1572)의 정치사상과 17세기 명말 청초의 鏡萬唐甄(1630-1703)의 정치사상을 비교한 논술하였다. 두 사상가는 130 년이란 시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자리에서 같은 주제를 갖고 토론하며 교류한 듯 여러 방면에 걸쳐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부패하고 부조리한 정치현실에 대한 강력한 개혁의식과 실천정신은 그야말로 不謀而合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성리학자들의 성향은 본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현학적 • 이론적 공소함 에 빠지가 쉽다. 막상 그런 현상은 성리학자들 사이에 빈번하였다. 그런 점에서 남 명과 주만은 철저히 이런 성리학자들의 단점을 실천적 · 개혁적 관점에서 보완해 나아갔다. 이로부터 두 사상가는 정치현실에 그 누구보다 민감하였고, 구체적 개혁 정책으로 당대 사회 정치적 부조리의 문제를 해소하려고 노력하였다. 결국 두 사상가는 당대보다는 후대에더 큰 빛을 발하며 사상사에 큰 족적을 남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