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자비 심과 그 심리치유적 요인에 관하여 고찰한 것이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 의 소리, 곧 중생의 소리를 관(觀)한다는 의미로서 ‘관한다’는 것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보살핌’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은 중생이 호소하 는 고통을 보고 듣고 보살피는 구원자로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자는 중생의 다양한 재난을 상징하는 ‘칠난(七難)’을 실제적인 재 난이 아닌 심리적인 괴로움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심리적인 재난 상황에 처한 중생들이 관세음보살을 칭념하고 의지하면 관세음보살과 감응하게 되 고, 보살의 자비로운 원력의 작용으로 심리적인 안정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 천태지의는 관세음의 관(觀)을 ‘관조(觀照)’의 의미로 이해하여, 관세음보 살이 단순히 중생들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따라 감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인 내가, 대상인 무엇을 관조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천태지의의 해석에 따라 관세음보살은 외재적 초월자가 아니라 내면을 관조 하는 수행자 자신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끝으로 자비의 개념을 심리치유에 적용하여 심리치료 프로그램으로 활용 되는 ‘자비명상’의 방법과 효과를 살펴봄으로써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심리치 료에 실천적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여말선초 관음보살상 중에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취하는 좌법으로 알려진 윤왕좌(輪 王坐, Maharaja-lila 또는 Rājalilāsana)를 취하고 있는 조각이 다수 확인된다. 기존의 불교조각사에서 제작된 바 없는 작례로서 활발한 대외교섭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 시대 관음신앙을 통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윤왕좌를 취하고 있는 관음보살상의 도 상을 살펴보면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에 상주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중국 송대 제작된 수월관음보살의 모습에서 그 원류를 확인할 수 있다. 윤왕좌를 취하고 있는 관음보살상의 양식적 특징은 여말선초 불교조각의 양식사적 흐름위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는다. 통일신라 양식을 기반으로 외래양식을 적절히 수용한 전통양식과 원․명대의 독특한 티베트계 양식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제작경향을 살펴보면 소형의 호지불상(護持 佛象)이나 경상(鏡像)과 같은 휴대용 불교용구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어 독특하다. 이들은 제난구제(諸難救濟)나 안산(安産) 등 현세이익적인 원(願)이나 정토로 향하고 싶은 내세에 관 한 염원을 담을 수 있는 대상으로서 이를 성취하고자 하는 강한 마음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양주 청련사의 조선후기 불교조각 가운데 1670년에 조성된 대웅전의 아미타삼존상과, 1651년에 조성된 원통보전의 관세음보살상을 다룬 것이다. 이 두 조각상은 2017년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친 복장 조사를 통해 제작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웅전의 아미타삼존상은 1670년(강희 9, 庚戌)에 수조각승 녹원(鹿苑)을 비롯한 인종(印宗)ㆍ도운(道云)ㆍ유경(唯敬)ㆍ사운(思運)ㆍ성심(性諶) 등 6명이 참여해 조성한 17세기 후반의 불교조각으로, 확실한 조성 연도와 조각승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청련사 아미타삼존상은 1670년에 조성된 이후 1913년과 2000년에 개금불사가 이루어졌으며, 1940년에 복장품 일부는 도난되었다.
청련사 관세음보살상은 1651년(효종 2, 辛卯)에 전라도 흥양현 팔영산(八影山) 지장암(地藏庵)의 좌협시보살로 조성된 사실이 조성발원문에 기록되어 있다. 조성발원문의 내용을 통해 아미타삼존상 가운데 좌협시보살로 조성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40년에 개금ㆍ중수하였던 원문(願文)이 발견되었다.
청련사 원통보전의 관세음보살상이 어떠한 이유로 청련사로 이안(移安)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조선 말기에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왕실 관련 사찰에 여러 지역의 불상들이 이동된 경우가 많았던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양주 청련사의 관음보살상도 화계사와 흥천사처럼 왕실과의 인연으로 고흥능가사의 지장암에서 청련사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法華寺十一面觀音菩薩像은 높이 100cm의 입상으로 한그루 의 비자나무(榧)로 된 9세기 檀像풍의 일목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본 상에서 특징적인 것은 얇은 동판을 잘라서 鬢髮과 垂髮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같이 표현된 점인데, 마치 이와 대 응하는 것처럼 바람에 펄럭이며 뒤집힌 천의의 끝단 표현도 훌륭한 조각 기법으로 완성되어 주목된다. 이와 같은 이른바 風動表現에 관해서는 중국 당대 화가 吳道玄의 화풍을 답습 한 결과라고 한 井上正의 견해가 정착되었다. 그런데 본 상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光明皇后연고인 東大 寺아미타당에 안치된 檀像十一面觀音像(현존하지 않음), 혹 은 紫微中臺十一面悔過所의 畵像本尊(현존하지 않음)의 模刻 이라고 하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원래 光明皇后의 십일면관음 신앙은 아미타신앙과 결합한 신앙으로, 8세기에 제작된 東大 寺아미타당상이나 紫微中臺畵像本尊도 황후의 아미타신앙 과 밀접하게 관련하고 있으며 陀羅尼集經에서 말하는 阿彌 陀佛輪印法과 같은 수행법인 同經에 게재된 掐數珠印제11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法華寺 像에서 보이는 吳道玄풍의 풍동표현이나 未開敷蓮華등을 조 형화 한 광배는, 아마타불의 극락정토에 서있는 십일면관음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생각되는데, 光明皇后에 얽힌 설 화에 물든 法華寺像도 황후의 십일면관음신앙의 계보를 잇는 상으로 원래는 法華寺아미타정토원 금당에 모셨다고 하는 선행연구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法華寺像의 풍동표현 이나 광배 장식은 光明皇后의 십일면관음신앙의 성격을 전해 주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특수한 표현은 紫微中 臺畵像本尊등에서 이미 채용된 표현을 法華寺像이 답습한 결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예전부터 추정된 것처럼 法華寺像 은 여전히 光明皇后연고의 십일면관음상의 모각이었을 개연 성이 높다.
이 논문은 관음신앙에 대한 천태의 선적 이해를 분석해 정리한 것이다. 동북아 불교신앙의 중요한 형태 중의 하나인 관음신앙은 중국인들에 의해 다양하게 수용되었다. 외재적이며 초월적 존재로 대중적 지지를 받았으며, 중국에 토착화하여 낭랑신앙이나 해신신앙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러나 천 태지의는 이러한 종교적 관념에 동의하지 않았다. 관음을 수행적으로 이해 하고자 했다.
관음을 천태신앙의 독특한 수행방식인 관법으로 이해하고자 한 것은 법 화경에 대한 그의 주석인 법화문구이며, 이 책의 「석관세음보살보문품」 에서 십쌍과 오척으로 관음보살을 해석하면서 특유의 관법에 의거한 관음보 살의 해석이 등장한다. 이들 중에서 본 논문은 오척을 중심으로 관법에 의 거한 관음보살의 해석을 분석해 정리하고자 한다.
「석관세음보살보문품」의 오척에선 관세음이란 단어를 축자적으로 한 글자 씩 해석하고 있으며, 이 경우 관이란 글자를 관법에 의거해 이해하고자 한 다. 즉, 석관(析觀), 체관(體觀), 차제관(次第觀), 원관(圓觀)이란 의미로 해 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법은 결국 천태의 일심삼관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본고는 일심삼관의 구체적인 고찰을 통해 관세음의 관을 관법으로 해석하고 자 한 천태의 의도를 살펴보고자 했다.
그리고 관세음의 관이란 글자를 일심삼관이란 관법의 수행으로 이해하고 자 한 근본적인 이유는, 일심삼관이란 수행이 마음의 번뇌 망상을 제거하는 것에서 출발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또한 일심삼관 의 수행을 통해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과 본질의 세계가 실상의 세계 임을 인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내용은 바로 ‘다양한 세상의 근기를 관찰하고 적절하게 응병여약(應病與藥)’하는 관세음의 속성과 형식적으로 상통하는 점이 있다. 결국 관음은 종교적 수행의 완성이며, 자기의지의 절대 적 실현을 의미한다. 따라서 천태는 관음을 객관화하지 않고, 주체적이며 자 기실현의 완결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