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서 외경 「유디트」에서 소재를 취하여 만들어진 헤벨의 드라마 유디트는 신정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헤벨은 신의 절대적 선함과 그에 대한 믿음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의 냉담한 특성으로 인해 기독교인의 신앙이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는 현실을 성찰한다. 이것이 성경과의 명료한 차이점으로, 드라마에서는 신의 존재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극성이 연출된다. 다니엘과 유디트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적 구원을 위해 선택된 신의 도구들이지만, 현실의 비난과 내적 분열을 감내해야 하는 비극적 상황에 놓인다. 그 비극성의 책임은 인간뿐만 아니라 신에게도 있다. 신은 자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한 인간의 고통을 책임지지 않는 자의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헤벨의 드라마 유디트는 기독교의 신과 구원 이념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본고는 이성교 시의 기독교적 형상화와 구원의식을 구명했다. 이성교는 1956년 등단 후 주로 고향을 소재로 한 향토적, 전통적 서정시를 선보였다. 그러나 제4시집 이후 그는 강원도의 일상적․전통적 소재에 신앙적 감흥과 성서적 사건을 연결한다. 그는 일상의 ‘눈(雪)’을 기독교적 ‘거듭남’으로, ‘까치소리’를 ‘영 성의 소리’로, ‘봄’을 부활을 현시하는 ‘영적 회복’으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예수의 형상으로 시화된다. 예수의 형상화는 ‘어머니<임<그 사람’으로 변조된다. 어머니는 실제적(a real) 어머니(이성교의 어머니)에서 실재적 ‘임(당신)’ 으로 형상화되며, ‘임’에서 ‘그 사람’으로 예수의 형상화가 다시 확장되어 자기 희생적 삶과 구도자적 삶을 객관화하여 노래하게 된다. 이성교는 강원도를 시적 배경으로 삼아 실제 지리적 공간을 이상화된 지정학적 구원의 공간으로 노래한다. 그는 풍요의 유년 공간 월천(삼척)을 이상 실현의 공간 강릉(영동지역)으로 확대하며, 강릉 일대는 인심이 가득한 본향으로서의 구원 공간 강원도로 다시 한 번 확장된다.
본 논문은 영혼치유적 구제론과 구속론적 구제가 요한 크리소스톰에게서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탐구한다. 영혼치유적 구제는 고대 철학적 치유의 관점에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도움을 통한 영혼의 평화의 회복을 의미한다.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자선은 또한 죄 용서와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대립적으로 보이는 이 두 전통들이 모두 크리소스톰의 구제설교에서 등장한다. 학자들은 그의 사상에서 철학과 신학이 분리되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본 논문은 크리소스톰의 마태복음과 요한복음 설교를 면밀히 분석하여 이 두 전통들이 그의 구원론과 구속적 구제와 관련된 성경구절 해석을 바탕으로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이교 철학자들과 연설가들의 이상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독교적 치유론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크리소스톰에게 있어서 영혼의 병과 결과에 대한 철학적인 개념이 기독 교적인 죄와 심판의 틀 속에서 흡수되어 변화되었다. 죄는 마음의 평화를 깨트리는 욕망의 무질서나 잘못된 생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한 그의 심판과 지옥의 형벌 아래에 있는 끔찍한 상태이다. 구제는 이러한 영혼의 모든 위기를 해결한다. 즉, 악덕을 제거하고 덕을 증진하여 영혼의 건강을 회복하여 궁극적으로 천국으로 향하게 한다. 크리소스톰은 그리스-로마의 철학적 치유 개념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목양적인 목적에 따라 그것의 목적과 범위와 내용을 변혁하여 기독교적 영혼치유 구제담론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