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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기장읍성은 둘레 1,527척 규모의 연해읍성(沿海邑城)으로 1425년(세종 7)에 축조되었 다. 현존 기장읍성은 초축 이후 1451년(문종 1)을 전후한 시기에 증축되어 3,197척으로 규 모가 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시대의 요구에 따라 수축과 증축을 거듭하면서 폐성 된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그동안 기장읍성의 발굴조사를 통해 600여년 전 이곳에 자리 잡은 기장읍성의 정확한 범위 확인과 잔존 성벽유구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문헌과 고지도, 지적도 등을 통해 유교적 이념에 충실한 전형적인 읍성의 공간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연구성과는 기장읍성과 관련한 문헌기록과 부합하고 있으며, 기장읍성의 축조기법은 임진왜란 직전의 읍성의 축조기법과 이후 읍성의 축조기법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읍성으 로 평가되고 있다. 대부분의 읍성유적은 성벽의 완결성을 강조하여 보기 좋게 복원하려고 하지만 원래의 축 성 모습을 온전히 복원해 내려면 발굴조사 결과를 반영한 정확한 고증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장읍성에서 지금까지 발굴조사 된 성곽 유구는 구간마다 성벽의 축조수법도 차이가 있고 기저부에서 상부까지 남아 있는 성벽도 잔존 부위가 달라 구간별로 성벽의 축조과정과 변천 과 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시간과 경비를 절감할 수 있는 성곽유적박물관으로 정비하여 다른 읍성유적과 차별화를 도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장읍성에 대한 보존과 활용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역사·문화적 환 경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기장지역이 지닌 역사와 전통을 바로 알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활동을 통해 우리 고장의 역사를 찾아 탐구하면서 기장읍성이 과거 외적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스스로 지키려 했던 선조의 얼과 숨결이 스미어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기장읍성에 대한 이러한 역사에 대한 인식의 출발이야말로 기장읍성의 보존과 활용에 있어 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옥체험관 조성 및 옛길을 중심으로 한 탐방로 개설, 벽 화 및 안내판 정비 등 주민들과 지자체가 합심하여 기장읍성을 가꾸어 나간다면 새로운 역 사문화자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장읍성 고유의 성격에 맞는 역사적인 스토 리 및 다양한 성곽 관련 체험프로그램의 지속적인 개발과 활용, AR·VR을 중심으로 한 최 첨단 시스템을 구축하여 다른 읍성과 차별되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야 할 것이다. 나 아가 기장읍성을 중심으로 기장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기장읍성 전시관의 건립도 추진되 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들이 기장지역 주변의 역사문화 관광자산과 연계된다면 또 하나의 지역 명소 가 탄생되고 그것의 활용을 통해 다시금 기장의 원도심 지역에 또 다른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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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5.03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기장읍성 체성은 동,서, 북벽은 사직선기단으로 축조되어 있으며 남벽 체성은 수평기단 으로 축조되어 있다. 이 중 남벽 체성은 기저부 조성시 바닥에 판석을 깔아서 그 위에 지대 석과 성석을 축조하는 반면에 동, 서, 북벽 체성은 기반암을 정지하고 그 위에 자갈과 할석 으로 다진 후 할석으로 기저부를 축조하는 차이가 있다. 기장읍성 체성 내벽은 기본적으로 계단식으로 축조하였으며 이후 내탁식으로 개축되었으며, 체성 너비는 초축은 6-7m 사이, 이후 내탁부까지 포함하면 10m 전후에 이른다. 초축 당시부터 외벽기단보축을 설치하였으 며 서벽 체성 일부에서 여장 기단부가 잔존하는 것이 확인된다. 기장읍성에서 확인되는 부대시설은 옹성문지, 치성, 해자, 수로 등이 있다. 이 중 옹성문 지는 기록에는 3개소로 이 중 동문, 남문 2개소가 확인되었다. 반원형 편문식 옹성이 덧대어 져 축조되어 있으며 옹성 규모는 조선 전기 연해읍성에서 확인되는 것과 대동소이 하다. 개구 부 및 성문 너비 역시 3.5m 전후로 성문 평면은 초축에는 체성 육축부 좌우가 돌출한 “┍ ┑” 형 개석식으로 축조되었다가 수축 시 “∥∥”으로 축조되었으며 동, 남문이 동일한 양상이 다. 다만 남문은 기장읍성 정문인 관계로 평지에 설치된 반면 동문은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 고 있어 전체적으로 경사지게 축조되어 있다. 따라서 세종조 연해읍성 축조 시기에는 옹성 체성과 읍성 체성이 같은 너비로 축조되다가 문종조 이후로 갈수록 옹성 체성 너비가 읍성 체성 너비보다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장읍성 옹성은 세종조 년간에 축조가 이루 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기록과도 부합되는 것이다. 기장읍성 치성은 기록에는 6개소로 알려져 있다. 이 중 동벽에서 2개, 동남성우 1개 등 총 3개소가 확인되었다. 세종조 규식으로 정한 150척(70m) 마다 1개소를 설치하는 것에는 부 합하지 않는다. 또한 규모는 당대 규식인 17척×20척 방대형에 부합하는 치성과 적대가 동 벽에서 확인되고 있다. 특히 동벽 적대는 규모에 있어, 동남 치성은 축조수법에 있어 여타 연 해읍성에서 확인되는 치성과 대동소이하여 세종조 년간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기장읍성 해자는 동, 서, 남벽 바깥에서 모두 확인되고 있다. 이 중 남벽 해자는 체성으로 부터 약 9~12.6m 떨어져 축조되었고, 남문지 옹성 지대석을 기준으로 6.4m정도의 이격 되어 있다. 서벽체성과 해자 이격거리는 약 8~10m 이다. 동벽 체성과 해자 이격거리는 11m로 체성과 문지 주변 해자 이격거리는 1:0.5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장읍성 해자 역 시 남벽과 서벽, 동벽에서 확인된 이격거리가 9~12.6m, 8~10m, 11m로 여타 경상도 연 해읍성 및 영진보성과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다만 남벽과 서벽 사이 간격차가 1~2m 가 량 확인되고 있다. 기장읍성 서벽 해자 너비는 3~4.6m, 깊이 42~100cm 내외이다. 남벽 해자 너비는 5.5~6m 내외이다. 이 중 남벽 해자는 거제 고현읍성과 웅천읍성 동남벽 해자, 전기 동래읍 성 해자 너비와 유사하거나 일치한다. 이것은 세종 16년(1434)에 축조된 웅천읍성 동북벽 해자는 너비가 7m에 이르는 반면 문종 이후 축조된 것으로 파악되는 동남벽, 남벽 해자 너 비는 5m 전후로 축조되고 있다. 따라서 기장읍성 해자는 문헌기록을 참고하면 문종 1년 이 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남벽 체성 축조수법과 동, 서, 북벽 등 의 축조수법에 차이가 있음에도 참고점이 될 수 있다. 기장읍성 해자 내부에서 확인되는 목 익(木杙)은 극소수가 확인되었다. 남해안 연해읍성 해자에서 확인된 잔존 목익 크기가 50cm에서 1m 전후로 확인되고 있으며 기장읍성에서 확인된 목익 역시 대동소이 하다. 끝으로 기장읍성 내 수로가 확인되었다. 이 수로는 서부천으로 명명된 하천이 통과하는 곳으로 기장읍성 고지도에도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최근 조사결과 추정 입수구와 덮개돌, 수로 호안석축이 중복되어 확인된다. 이 호안석축은 석축방향에 따라 기존 알려진 서부천 복개구역보다 더 남쪽에서 확인되거나 연접하고 있다. 아울러 이 호안석축과 대칭되 는 석축이 확인되고 있어 이것이 기장읍성 초축 성벽과 해자일 가능성과 증개축으로 인한 것인지는 기장읍성 남벽 체성, 해자 초축 및 증개축과 수로 축조 등에 대한 보다 명확한 양 상을 확인 한 후에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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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1.05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40호로 지정되어 있는 기장읍성은 조선시대의 읍성축조수법이 정형화된 형식으로 정리되기 이전에 축조되어 고려시대 성곽 축조수법과 조선의 읍성축조수법이 혼합되어 성곽축성사에 있어 읍성축조수법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기장읍성에서 확인되는 사직선기단의 축조는 과거 고려시대말까지 계속 축조된 판축토성(版築土城)의 기단부 축조방식을 읍성축조에 적용한 결과로 고려 판축토성에서 조선시대 석축성인 연해읍성의 축조로 이어지는 흐름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다. 기장읍성 동벽 체성부에서 확인되는 세장방형 외벽면석 축조수법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조선시대 읍성의 장대석 입수적 축조수법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기장읍성 남벽과 동벽 체성부 기저부 축조수법은 김해읍성, 웅천읍성, 동래읍성, 고성읍성 등에서 확인되는 지대석 설치 이전에 바닥에 판석을 이용하여 바닥면의 수평을 맞추어 정리된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축조수법이 사용되기 이전 시기에 축조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장읍성은 사직선기단축조수법, 체성부 세장방형 외벽면석의 사용과 더불어 고려시대의 성곽축조수법과 조선시대 연해읍성 축조수법이 혼용된 과도기적 읍성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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