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주체성과 관련된 책임과 환대의 개념에 집중하면서 엠마누엘 레비 나스의 타자 윤리학과 기독교적 가치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특히 레비나스 의 개념들이 기독교의 이웃 사랑 강조, 특히 가난하고 굶주린 이웃에 대한 책임 의식과 어떻게 조응하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분석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 럼 사소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며, 아일랜드 소도시의 중년 석탄 상인 빌 펄롱 의 심리적 변화를 추적한다. 펄롱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학대받는 소녀들과의 조우를 통해 그의 양심과 마을의 집단적 침묵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학대받는 소녀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감당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펄롱 이 세탁소 소녀에 대해 책임을 지기로 한 결정이 진정한 기독교적 가치로의 성 장을 반영하며, 이는 레비나스의 윤리학과 일치함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버려진 소녀에 대한 펄롱의 응답과 실천은 펄롱에게 깊은 행복감을 가져다주며, 윤리적 행동이 가져오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논의는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가 개인 의 책임과 이웃에 대한 돌봄이라는 측면에서 기독교 원칙과 일맥상통하고 있음 을 입증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기형도 문학에 나타난 자기혐오를 레비나스의 존재론을 원용하여 구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자기혐오는 자기 자신, 인생, 그리고 운명을 사랑하지 않는 태도로 규정된다. 레비나스의 존재론에 따르면, 자기혐오의 원인은 존재함 자체에 대한 공포와 죽음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성에 있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죽음으로부터 타자에 대한 증오와 살의를 읽어낸다. 그러한 점에서 레비나스의 존재론은 평화로운 타자론의 확립을 촉구하는 윤리학이기도 하다. 레비나스는 본래적 자기를 찾기 위해 자신의 실존에만 관심 갖는 태도에서 벗어나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됨으로써 선함으로서의 존재가 될 것을 주장한 다. 기형도의 자기혐오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자신에게 전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 한국사회의 약자로서의, 타자의 죽음에 응답하지 못했다는 유죄성이 자기혐오로 전이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형도 시의 죽음은 타자들과 함께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기형도의 시는 한국시사에서 가장 심원한 존재론을 보였다. 동시에 기형도의 시는 혐오사회가 한 시인의, 요절의 심리적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혐오 사회에 대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본 연구는 차별이나 동화(동일성)의 강제와 같은 형태의 타자 지배적 폭력을 부정하고, 타자 존중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인 아이덴티 티’가 어떤 것이야 하는지에 대해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을 참조하면서 예수의 선교활동에서 찾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본고에서는 타자 지배가 가동되는 메커니즘이나 타자 존중을 지향하는 주체에 대해 레비나스 등의 주장을 검토한 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중심으로 고찰하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본고의 결론은, 그리스도인 아이덴티티의 핵심은 속성(민족/인종, 성차, 종교 등)에 근거하는 아이덴티티와는 다른 ‘이웃 아이덴티티’이며, 그리스도인에게는 타자 지배를 부정하고 타자 존중을 지향하는 아이덴티티가 이러한 이웃 아이덴티티와 그것으로써 더욱 의로운 것으로 계속 변용되어 가는 속성의 아이덴티티라는 이중 구조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Both religions and literature/the arts have the same purpose--to liberate our mind from the limited ontological domain of the ego and reach infinity, the dimension of genuine love, and thus to attain true wisdom beyond the binary opposition of will, intention, and concepts that cause conflicts and struggle. The goal of religions and literature is to make us to deeply experience the real Self, which is the ultimate reality or universal Truth. This paper first discusses the Buddhist notion of Emptiness and Levinas, whose theory embraces Judaism and Christianity. Then the Kantian sublime is discussed as the most profound aesthetic impetus on the reader’s mind. The last part presents my reading of Stevenson’s Jekyll and Hyde. By showing the disappearance of the polar opposites, Jecyll and Hyde, the novella leads the reader to the sphere of the sublime where the reader experiences the spiritual feeling that detaches her/him from ontological perception and conceptual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