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나의 아저씨〉를 정신분석학적 상징으로 해석함으로써 이 드라마가 정신분석학적 도덕을 함의 하는 멜로드라마임을 밝힐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나’와 ‘아저씨’의 관계가 정신에서 초자아와 자아가 맺는 성숙한 도덕적 관계를 상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자아는 인간의 개체와 인류의 계통을 발생시킨 시원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정신에 표상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자아는 이들을 발양했던 ‘온기’와, 이들 에게 발휘할 수도 있는 광폭한 금제를 동시에 체현한다. 세계의 도덕적 징후들을 상징들로 보여주다가, 세계의 지고한 도덕을 끝내 부각하는 것이 멜로드라마다. 자아를 발양한 초자아의 온기는 세계에 숨겨진 지고한 도덕일 수 있다. 그러므로 멜로드라마는 이 ‘온기’를 끊임없이 상징함으로써 결국 이 의미를 서사적 으로 구현해낼 수 있다. 멜로드라마를 흔히 정신분석학적인 드라마로 간주하고 이의 테마를 소위 ‘도덕적 비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논문은 이 드라마를 분석하면서 첫째, ‘나’가 인간의 개체를 발양하고 인류의 계통을 발생시킨 초자아를 상징하는 점을 탐색할 것이다. 둘째, ‘아저씨’가 초자아와 근원 적인 동일시를 이루는 자아를 상징하는 점을 탐색할 것이다. 이로써 이 드라마가 초자아의 온기를 향유하 는 성숙한 자아를 재현하는 정신분석학적 멜로드라마임을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된 무대 멜로드라마의 영향으로 낭송자와 한 악기 주자 또는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연주회 방식으로 동시대에 발생한 콘서트 멜로드라마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에서 출발하여, 창작 및 수용에 있어서 최고의 시대였던 20세기 초 독일의 콘서트 멜로드라마와 당대 대표적인 작품인 실링스의 ⟪마녀의 노래⟫를 연구한 것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콘서트 멜로드라마는 낭송 텍스트로 발라드를 선택하는 18세기부터의 전통을 따르고 있고, 19세기 동안 굳어진 기악 음악의 묘사적인 표현 기능 및 음악적 동기의 유기성을 극적인 작품으로의 완결성을 위해 더욱 발전시키는 한편, 낭송자의 뛰어난 표현력을 작품의 창작 과정에서 고려하는 새로움을 수용했다. 대표적인 작곡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실링스로, 특히 실링 스는 콘서트 멜로드라마를 주요 장르로 정착시키고 예술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실링스는 빌덴브루흐의 발라드 <마녀의 노래>를 텍스트로 선택하여 동명의 콘서트 멜로드라마를 창작하면서 낭송 텍스트로 선택한 발라드의 내용을 그대로 쓰는 소극성에서 벗어나 극적인 짜임 새를 위해 각색하고 고유의 방식으로 주도동기를 설정하고 적용하여 낭송과 기악 음악의 조화를 추구하는 한편, 기악 음악만의 자율적인 감정 표현도 필수적인 요소로 삼는 새로움도 시도함으로써 콘 서트 멜로드라마의 발전 가능성과 독립된 형태로서 음악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하였다.
드라마를 기반으로 하는 연극 및 영화와 관련한 본 연구는 대중문학에 대한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가운데 플롯에 관한 언급을 단서로 시발되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어떤 플롯이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의 기준이 플롯 자체에 있지 않고 사회적 삶을 지배하는 견해들의 체계 안에 있다는 점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작품의 수용자와 연관된 커뮤니케이션의 입장을 기반으로 하는 동시에 견해들의 체계에 대한 상호 텍스트적 관점을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논의는 플롯 자체가 개연성을 만들지는 않고, 개연성의 힘은 수사학에 있다는 논지를 담고 있다. 본 논문은 이 논의를 보다 넓혀서 구체 작품에 적용하여 살펴보는 방식을 취한다. 에코의 논의를 발전시켜 질문해보는 바, 그렇다면 서사적 연쇄인 플롯은 그 자체로서 무엇을 담보⋅성취하며, 또한 어떤 한계를 지니는가. 또한 사회적 삶을 지배하는 견해들의 체계는 플롯 이라는 요소를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작품을 규정하고 형성하는데 기여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다채로운 관점과 프레임을 통한 접근을 요구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측면을 상호텍스 트적 관점을 통해 접근한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드라마 장르에서 가장 중요시 되어왔던 플롯이 모방되고 변용되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그 기능의 한 측면을 살펴본다. 본 논문은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덴마크, 1956~ ) 감독의 극영화 <도그빌Dogville>(2003) 의 고찰을 통해 에코의 지적에서 확장해 나온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을 구체화해본다. 이 영화가 드러내는 경계적 성격은 한 작품이 지니는 특정한 정체가 삶을 지배하는 견해들의 체계 및 플롯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드러내는 좋은 예시가 된다. 이 고찰을 통해 본 연구는 서사와 드라마 장르처럼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 작품들에서 플롯이 갖는 의미와 역할의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의 논지에 따르면 플롯은 형식의 모방과 변용을 통해 관객의 관습적 기대를 넘나들게 된다. 이러한 기대치의 경계선에 작품의 성격이 놓이게 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답변이 된다. 그 경계의 틈에는 수사학 또는 문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 영화 <도그빌>을 통해 살펴보는 바, 이 영화의 독특한 성격은 상호텍스트적인 관점, 보다 구체적으 로 말하면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온 형식을 어떻게 모방하고 변용했는가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다. 본 연구가 취하는 이러한 입장의 고찰은 드라마 방식을 표방하는 연극과 영화 및 극적인 작품을 창작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드라마 작품을 분석하는 이들에게 창의적인 암시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스위니 아고니스테스 는 극적 형태에 있어서 T. S. 엘리엇의 첫 번 째 탐구 작업인 바, 대체적으로 실패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엘리엇 이 이 시를 자신의 시 전집들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것의 의미를 그의 작품 전체 속에서 숙고하게 만든다. 그의 초기 작 품들의 명백한 미숙함으로부터의 이탈이 변화나 역전의 신호가 아니라 그의 정서의 확대나 발전이라는 그의 안내를 따라간다면, 이 시는 보통 사람들의 감상주의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변화 시키려는 첫 번째 단계인 것이다. 이 시가 인기가 많았던 마리 로이드 처럼 관객에 대한 정서적 혁명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첫 번째 단계로 의 입문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실패’라기보다는 ‘성공적인 실패’라고 정 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실패의 결과로 이어지는 시극들 전부에서 ‘유머’ 의 어조가 ‘심각함의 어조로 바뀌었다. 하지만 관객의 의식적인 관심을 요구하겠다는 그의 전략의 이러한 변경이 엘리엇의 정서적 혁명의 최종 목표인 공동체의 영적 가치관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히 좋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