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해행총재(海行摠載)에 수록된 문견록(聞見錄)을 중심으로 조선통 신사가 포착한 일본의 일상 지식을 확인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그에 따라 조선시대에 일본을 방문한 이들의 다양한 기록들이 담겨있는 해행총재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했으며, 그중에서도 일본의 일상 지식이 자세히 담겨있는 문견록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먼저 2장에서는 일상 지식의 개념 정리를 필두로 조선통신사가 포 착한 일상 지식의 갈래를 구분하였다. 이어서 3장에서는 해행총재(海行摠 載) 문견록(聞見錄)에 나타난 일본의 일상 지식을 몇 가지 주제로 구획하였 다. 첫 번째는 ‘일본, 비일상에서 일상적 지리 공간으로의 전향’이라는 주제 로 논의를 진행하였는데, 인간의 거주지 확대는 지식의 확대로 직결되었으 며, 다양한 형태의 탐험적 행위는 공간적 지식의 범위를 확대시켜왔다고 판 단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의 일상적 지리 지식 수집 과정을 도식화 함으로써 다양한 층위의 지식 수집 양상을 밝혔다. 두 번째로는 ‘일상과 만 남 그리고 일본의 일상 문화 포착’이라는 주제로 논의를 진행하였는데 여기 에서는 조선통신사가 일본의 일상과 문화를 어떻게 기록하였는지 살폈다. 이는 일상 지식의 연구 범주 가운데서도 ‘일상과 사건’을 확인할 수 있는 자 료일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세계 : 우리 세계, 그들 세계’라는 영역까지 도 파악할 수 있는 연구 대상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세 번째로는 ‘일상생활에 관한 인식론적 탐색과 인류학적 접근’이라는 주제로 논의를 진 행하였다. 인식론, 즉 일본을 긍정적으로 보았는가 부정적으로 보았는가를 주로 다룬 선행 연구와 달리 인류학적인 시선에서 통신사행록을 다시 분석 하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해행총재(海行摠載)에 수록된 문견록(聞見錄)을 다 루면서도 일본을 ‘일상’ 그리고 ‘지식’, 나아가 ‘일상 지식’으로 읽어내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존에 해행총재에 수록된 개별 사행록에 대해 서는 대략적으로 일정 부분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문견록만 추출하여 ‘일상 지식’을 살핀 연구가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울러 기존 선행 연구의 답습에서 벗어나 통신사행록 텍스트에 담긴 다양한 지식을 지리학, 문화사, 그리고 인류학 측면에서 들여다보고자 시도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고 하겠다.
이 글은 李憲明이 제자의 눈으로 바라본 龍山 시절 스승 臺山 金邁淳의 일상 과 학문을 추적하였다. 대산은 1806년 伯從兄 金達淳의 獄事로 관직이 삭탈되었을 뿐 아니라, 1817년 에는 金基敍의 陰祀 사건에 연루되어 상당한 고초를 겪는다. 이는 평소 말수도 적고 섣불리 행동하지 않을 정도로 신중한 성격에 일처리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 지 않을 정도로 주도면밀하지만, 빈궁한 사람을 도와주느라 녹봉조차 부족했을 정 도로 남에게 관대했던 성품 탓이기도 하다. 대산은 외동딸이 非命橫死하고 善根을 양자로 들인 이후에도 1년 넘도록 기녀 의 몸에서 후사를 바랄 정도로 핏줄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그 바람도 물거품이 되자, 선근의 교육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만큼 기대가 남달랐다. 심지어 淸襟樓詩會를 베풀고 李碩章과 이헌명을 선생으로 맞아 가르칠 정도였다. 또한 대산은 세도정권에 영합하기를 거부하고 인재 등용과 권력 전횡에 시종일 관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한다. 托物寓意한 詩로 세도정권의 부조리와 폐단을 풍자․비판하는 한편, 「治國大經十策」으로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는 正祖의 각 별한 총애와 은혜에 대한 대산 나름의 보답인 셈이다. 이헌명은 제자의 눈으로 대산의 일상과 교유는 물론이려니와 학문과 저술에 이 르기까지 많은 정보를『西淵聞見錄』에 포착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알려지 지 않았던 대산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