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한국 만두문화의 기원이 되는 고려시기 만두문화의 전체상을 조망 하기 위한 고찰이다. 선행연구들은 고려말 충렬왕 시기 『쌍화점』의 ‘쌍화’를 한국 만두의 기원으로 간주해오고 있다. 그러나 고려사회는 ‘불교사찰의 채 식만두문화’와 ‘왕실과 민간사회의 육식만두문화’가 『쌍화점』의 ‘쌍화’ 이전 시기부터 고려사회에 정착하여 지속되어 오고 있었음을 밝힌다. 고려 불교채식만두는 13세기 초 수선사 2세인 진각국사 혜심의 『조계진각 국사어록』에 등장하는 불교채식만두인 ‘산함(餕餡)’과 이규보의 『동국이상국 집』에 언급된, 이규보가 평소 교류가 있었던 기선사(其禪師)로부터 받은 만 두류 음식인 ‘혼돈(餛飩)’을 통해 확인된다. 이 시기에 고려불교사찰은 아침 메뉴로 전통적인 죽과 더불어 만두류 음식인 혼돈을 식용하였을 것으로 생각 된다. 고려시대 육식만두의 전통은 국가행사인 연등회와 팔관회의 의례 속에 등 장하는 ‘쌍하(雙下)만두’와 고려가요 속에 언급된 『쌍화점』의 ‘쌍화만두’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쌍하’는 당시 동아시아 왕실과 사신접대에 등장하는 만두류 음식으로 낙타의 육봉을 속재료로 한 왕실연향에서 사용되는 ‘쌍하타 봉각자(雙下駝峰角子)’와 사신접대 등에 사용되는 타봉을 사용하지 않은 ‘쌍 화관장만두(雙下灌漿饅頭)’나 ‘쌍하각자(雙下角子)’등으로 구분된다. 『쌍화점』의 ‘쌍화만두’는 고려사회에 정착한 외국인인 회회인(回回人) 상 인이 팔던 만두로 양고기와 밀착된 그들의 음식문화와 고려사회에서 도축업 에 종사한 사실 등을 토대로 ‘양고기만두’였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위의 고찰로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한국 만두의 기원은 『쌍화점』의 ‘쌍 화’에서 시작되었다기보다는 아마도 북송과 맞물리는 시기에 불교사찰의 채 식만두문화와 왕실과 민간의 육식만두문화가 이미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 된다.
만주족은 중국 동북지방의 주요 소수민족 중의 하나였지만, 청나라 후반기부터 그 민족의 고유 언어나 문화가 점차 한족화(汉化)되면서 만주족 문화 고유의 특징이 점차 소멸되어 갔다. 현재 중국에 계승되고 있는 만주족 가요(歌谣)는 대부분 한어(汉语)로 작성되고 한어의 문법과 음운(音韵) 체계에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한어화 된 만주족 가요는 특 징적인 만주어 어휘와 그 만주 민속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에 한족의 가 요와 쉽게 구별될 수 있다. 본 논문은 현재까지 그런 특징을 가지고 계승되어 있는 여러 만주족 가요 중 대표적인 26개의 가요(동요, 자장가, 情歌, 생활풍습 가요 등)를 분석하여 가요 속에 있는 만주어 요소(要素) 및 역사, 민속 문화 등을 연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