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의 문수전에는 문수동자상과 문수보살상이 모셔 져 있다. 문수동자상은 1466년에 조성된 불상이며 1984년에 복장유물이 발 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조선 초기의 저고리인 명주 적삼과 무문사 적삼이 포 함되어 있다. 복장유물들은 일괄 보물 제793호로 지정되었는데 저고리의 문 화재명칭은 ‘명주 적삼’과 ‘생명주 적삼’이었다. 그러나 생명주 적삼의 소재 는 무문사이므로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 1973년 문수보살상을 개금하는 과정에서 회장저고리 한 점이 발견되었 으며, 이 저고리는 1987년에 ‘세조대의 회장저고리’라는 문화재 명칭으로 중 요민속자료 제219호로 지정되었다. 문수보살상은 1661년에 조성되었는데 불상안에서 발견된 회장저고리는 조선 초기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어 저고리 의 원복장 불상은 문수보살상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문수동자상의 의숙공 주 발원문에 의하면 1466년에 8구의 불보살상(佛菩薩像)과 나한상 등을 조 성하여 문수사에 봉안했다는 내용이 있어 당시 조성되었던 다른 불상의 복장 물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회장저고리가 조선 초기의 저고 리이기는 하나 세조와의 관계가 확실한 것은 아니므로 ‘세조대의 회장저고 리’보다는 ‘회장저고리’로 변경하는 것이 합당하며 출처에 대한 보충 설명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2004년 송광사 불상에서 『법화경현찬회고통금신초(法華經玄贊會古通今新抄)』권 1과 권2가 발굴되었다. 1974년 중국 산서성 응현(應縣) 불궁사(佛宮寺)에서 『법화경현찬회고통금신초(法華經玄贊會古通今新抄)』 권2와 권6이 발굴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현재 이 책의 권1과 권6은 한국과 중국의 유일본(唯一本)이고 권2는 한중이 가지고 있는 유이본(唯二本)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처럼 희귀한 귀중본일 뿐 아니라 학술적 문화적으로도 매우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고 교장(敎藏)의 원모를 보존하고 있는 중요하고 희소한 자료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 책에 대해 대략 4가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①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와 책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② 이 책의 작자에 대해서도 현존 자로에서 알 수 있는 범위에서 조사하였다. ③ 이 책의 書名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서명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이 책의 성립과정 등을 알 수 있었다. ④ 서문과 서문 앞의 글을 통해 이 책의 저본(底本) 등에 대한 고찰을 하였다. 이와 같은 고찰을 통해 이 책에 대한 비교적 소상한 소개를 하였고 아울러 교장(敎藏) 성격의 일단을 알아볼 수 있었다.
서울 옥수동 미타사의 주불전인 극락전에는 조성 연도와 양식이 서로 다른 아미타불상·관세음보살상·대세지보살상으로 구성된 아미타삼존불좌 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글은 아미타삼존불좌상의 복장 유물과 불상의 특징을 분석한 것으로, 필자가 2020년 8월에 실시한 복장 조사를 통해 수습한 자료를 중심으로 작성한 것이다. 아미타삼존불좌상 가운데 목조아미타불상의 복장에서는 조성발원문 (1707년) 1점과 중수발원문 2점(1744년·1917년)이 발견되었다. 건칠관세 음보살상의 복장에서는 조성발원문(1769) 1점이 수습되었다. 복장 기록을 분석한 결과 목조아미타불상은 1707년에 조성되어 1744년·1768년·1917 년 등 세 차례에 걸쳐 개금·중수되었고, 건칠관세음보살상은 1769년에 조성되어 1917년과 1970년에 개금·중수되었으며, 목조대세지보살상은 1744년과 1917년에 개금·중수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미타사 아미타삼존상에서 발견된 복장 기록은 조선 후기 왕실 발원 불상의 조성 및 개금·중수 과정을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필 자가 주목한 미타사 아미타삼존상의 후령통 내부 물목에 관한 연구는 조선시대 불복장 의식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조상경(造像經)』의 내용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미타사 목조대세지보살상의 16세기 후령통, 목조아미타불상의 1707년 후령통, 건칠관세음보살상의 1769년과 1970년 후령통은 불복장 납입법의 변천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이 글은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몰타의 유대인』에 등장하는 애비게일이 당시의 여성성, 연극성, 그리고 가톨릭교회를 향한 부정적 시선을 집약적으로 구현하고 있음을 논의한다. 종교개혁 이후 영국에서 반연극주의와 반가톨릭주의는 모두 의복이 그 착용자의 정체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심에 기반해 있었고, 이는 곧 가톨릭 종교의복이 무대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발전한다. 애비게일은 유대인 여성으로 등장했다가 극의 후반부에 가톨릭 수녀로 개종하면서 탐욕스러운 유대인이나 위선적인 가톨릭 종교인의 부정적인 전형들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운 인물로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말로우의 무대 위에서 수녀복을 착용하고 소년 배우에 의해서 연기되었던 애비게일은 기만, 위선, 문란함, 미성숙함과 같이 일찍이 수녀 복장에 부여되어왔던 부정적 정서들을 소환해 내기에 애비게일의 성스러움이란 텍스트 안에서나 유효하다. 일관되게 성스러운 여성을 재현하는 것은 당시 영국 무대에 주어진 실현 불가능한 과제였으며, 초기 근대 영국 무대 위 수녀들은 반가톨릭적, 반연극적, 반여성적 정서 속에서 종교 개혁 이후 영국 무대가 당면한 재현의 위기를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