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확실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과 변화하는 세상 속에 서 오히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은 더 부족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한국교회 앞에 놓여진 변화된 현실은 결코 녹록치가 않다. 이런 시대 변화의 흐름 속에 놓인 한국교회 는 새로운 변화의 현실 속에서 여러 가지 당면한 문제들을 스스로 헤쳐 나갈 변혁의 의지가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때이다. 필자는 본고에서 한국사회에서 개신교가 타종교보다 사회봉사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한때 제자훈련으로 점철되었던 한국교회의 현상을 실례를 통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뷰카와 팬데믹 시대에 한국교회가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는 길을 성찰하고 그 대안으로서 선교적 제자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마태복음의 배경이 되는 마태공동체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차 유대교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예수의 선교명령에 따라 열방을 향해 선교하였고, 동시에 유대인들을 향해서도 선교하 였다. 따라서 마태는 예수가 유대인들이 바라고 기다리던 다윗의 혈통 을 이은 왕이자 메시아임을 증거하기 위해 마태복음 전체의 구성을 모세오경과 유비시켰다(analog). 또 왕으로 온 예수를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보다 ‘천국’(Kingdom)을 선호하며 ‘왕’(King)의 복음의 특징을 드러낸다. 이것은 마태복음의 결론이자 핵심인 ‘대위임령’을 천하의 제왕이 등극하는 형식, 즉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28:18)로 명령하고 있는 것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이 선교 명령은 결국 그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가르치고 고치며 훈련했던 모든 것들이 ‘선교적 제자도’로 집약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의 목적은 현대 신학교육의 모델들과 커리큘럼을 ‘선교적 제자도’의 관점에서 재고하는 것이다. 동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교육 모델로서 베를린 모델은 교회의 필요에 따라 전문적인 사역자들을 훈련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 모델은 교실 교육과 교회 현장 사이의 거리가 커짐으로써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사역을 준비시키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다양한 과목들을 공부하면서 아카데믹한 부분을 추구하는 반면에 목회자의 신앙과 영성 그리고 인격 훈련이 도외시 되고 있다. 본 연구는 위의 모델을 배제함 없이 ‘선교적 제자도’를 위한 도제교육의 모델을 강조할 것이다. 이로써 이 연구는 신학교육 기관들이 선교적 관점에서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커리큘럼의 재고를 제안할 것이다.
본 논문은 하워드 스나이더의 교회론을 중심으로 “공적 제자도를 이루는 생태학적-선교적 교회론”을 연구한 논문이다. 스나이더는 “교 회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선교사인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유전학적으로 선교적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로 현존하게 된 공동체 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교회론의 출발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한 다. 또한 그는 ‟교회는 가장 본질적인 차원에서 선교적 공동체다. 비록 때때로 선교가 실제로 주변화된 때가 있었지만 선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DNA 안에 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교회는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하나님의 선교 공동체로 공적인 영역에서 올바른 제자로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선교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스나이더의 교회론적 방향은 선교에 맞춰 져 있으며 교회의 진정한 본질은 선교에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입장을 고려하면서 본 논고에서 그의 교회론을 세 가지 차원에서 탐구했다.
첫째 그의 교회론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이 깃든 창조 세계를 보존하고 책임져야 하는 교회 공동체의 선교적 사명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의 회복과 그 세계 안에 하나님의 샬롬이 이루어지기 위한 교회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스나이더는 온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주목하면서 하나님의 원대한 선교적 계획은 이 세계를 섬기는 것이며 그 범위는 역사를 초월하여 나아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회는 이 세계를 섬기는 하나님의 선교적 행위의 도구로서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사명을 지녔음을 강조 한다. 하나님의 선교적 통치는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피조 세계로 향한다. 전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샬롬을 통해 평화를 되찾고 파괴되고 상처 난 영역들이 온전한 회복을 가져오는데 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생태학적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샬롬을 실현하 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둘째는 교회의 진정한 삶은 섬김, 즉 종으로 살아가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세상은 ‘빈익빈 부익부’의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 부의 축척을 위해 가난한 자들은 끝없이 가난의 굴레와 노동의 시간을 보낸다. 스나이더는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는 가난한 자를 해방하는 종의 공동체로 존재해야 함을 강조한다. 교회는 공평과 정의를 행하며 탈취당하는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과부를 압제하 거나 학대하지 않는 해방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교회의 부르심은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부유한 그리 스도인들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자발적 가난과 섬김이 없다면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으며 이런 실천이 바로 예수의 선교적 삶을 실천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셋째는 교회의 선교적 부르심의 행동은 공적인 제자도로 나타나야 함을 보여 준다. 스나이더는 공적 제자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스 도인들은 교회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지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광장에서도 동일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서 교회를 이 세상 가운데 부르시고 파송하신 근본 목적은 제자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과 행실로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보여준 사랑과 은혜를 세상 가운데 보여주고 실천해야 할 당위성을 지녔다. 교회가 교회됨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는 교회 안이 아니라 세상이다. 세상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살아내느냐에 따라 교회는 자신의 생태학적 삶을 구현할 수 있다. 선교의 실천이 단지 말에만 국한 된다면 교회는 공적 광장에서 복음으로 살아낼 수 없다. 말과 함께 실천적인 삶을 보여줄 때 공적 제자도를 이루는 공동체 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