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고는 성경 번역에 있어서 어린이(미성년)와 어른의 문체 차이로 인한 ‘수용성’ 여부를 연구한 것이다. ‘수용성’은 보그란드와 드레슬러가 주장한 ‘텍스트성’(textuality)의 하나이다. 어린이와 어른의 성경 문체를 비교·분석하기 위해 여덟 가지 방법으로 시행을 했는데 그에 해당하는 예로는 어린이 그룹을 네 부류(A, B, C, D)로 성인그룹을 네 부류(A-1, B-1, C-1, D-1)로 나누어 세부적으로 각 문체에 따른 번역 결과물의 수용 여부를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 성경 번역의 문체 비교에서 독자들은 격식체를 선호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고, 성경 특유의 문체를 선호한다는 것 또한 밝혀졌다. 독자의 입장에서 번역가가 번역하는 것은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는 것이 번역학의 이론이자 보그란드와 드레슬러의 주장이다. 그러나 성경 번역의 경우 예외가 되며, 독자에 대해서 너무 고려하여 번역하면 오히려 효과적이지 못한 번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본 논고의 결론이다.
만주의 존 로스 선교사가 1900년대 초에 중국어로 출판했던 7권의 주석서를 탐구하는 이 논문은 그 주석서가 태동하게 된 역사적 배경, 서지사항에 있어서 쟁점들, 그리고 그 가운데 한글로 번역되어 출판된 5권의 신약 주석서를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 방법으로는, 1890년과 1907년에 열렸던 중국 개신교 선교사대회의 보고서, 로스 및 선정된 중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저술한 <선교사대회 성경주석>, 1800년대 말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중국어 성경 역본, 그리고 한국의 동양서원과 조선기독교서회가 1900년대 초에 출판한 한글 번역본들을 검토하였다. 연구 결과로서는, 위의 1890년 선교사대회에서 행한 알렉산더 윌리엄슨의 ‘해설 성경’ 제안이 최종적으로는 <선교사대회 성경주석>으로 귀결되었음을 밝혔다. 번역과 저술을 포함하는 로스의 주석서들은 신명(神名)의 차이를 반영한 다양한 판들로 출판되었으며, 사용된 성경 역본으로는 구약은 대표역본, 신약은 그리피스 존의 1898년판 천문리(淺文理) 역본임을 확인하였다. 한국의 동양서원은 로스가 저술한 5권의 신약 주석서를 번역 출판하였고, 조선예수 교서회는 동양서원의 유다서 주석을 추후에 새로운 맞춤법에 따라 수정하여 출판하였는데, 두 출판사 모두 주석서에서 로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 논문은 존 로스에 대한 연구가 성경 주석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더욱 확장될 수 있으며 또한 <선교사대회 성경주석>이 중국과 한국에서의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공시적 및 통시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본 연구는 서유럽의 근대 국가와 민족들의 형성 과정에서 종교개혁이 미친 영향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말에 한국인들, 특히 기독교인들 속에서 민족 개념과 민족됨의 의식 형성에 끼친 기독교의 초기 성경 번역 과 그 역할에 주목하였다. 근대 초 서유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한 가지 의미는 성경의 재발견이었고, 이것은 각 국가들이 근대 민족국가로 이행하 기 위한 전단계로서 하나의 민족됨의 형성에 기여했다. 즉 영혼 구원을 의 도했던 종교개혁이 프로테스탄트 민족들과 국가들이 만들어지는데 일조했다. 이때 종교개혁을 겪었던 각 국가들은 성경으로부터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신념을 끌어냈다. 특히 성경에서 나오는 해방, 언약, 율법, 선민, 출애굽, 약속의 땅에 대한 꿈과 같은 서사들을 성경에서 끌어와 그들의 정치적 행동을 정당화시켰다. 근대 초 독일지역, 네덜란드, 체코, 덴마크, 스위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와 같은 나라들이 외부적으로는 외세의 침략 과 간섭에서, 내부적으로 신분제적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고 이를 성취했다. 이를 언약적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기독교는 한말 한국인들에게 근대적인 서구식 사고방식을 깨우쳐주었고, 나아가 기독교민족주의를 고취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중심 매개체는 특히 성경으로 간주할 수 있다. 성경은 단순히 개인의 영혼구원이라는 종교적 정 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공동체로서 민족됨의 통일적인 서사와 담론을 제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본고는 서양사와 비교사적 관점에서, 성경이 한말의 한국인들에게 민족됨의 의식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이 후에 실용적인 성경 민족주의로 어떻게 표출되며, 그 결과인 성경 민족주의 에 대한 개념정의를 시도했다. 초기 번역 성경의 보급은 외형상으로 사회적 이고 제도적인 하나의 민족됨의 모델을 제시해주었다. 또한 근대적인 시민 적 민족주의를 연상시키는 평등주의적인 측면들도 가지고 있다. 즉 모든 민족은 ‘정치적 주권’을 획득할 권리를 갖는다는 사상으로 정의되는 정치적 교의를 전개한다. 한말의 기독교는 사회개혁과 반외세의 저항의 서사를 성 경의 민족됨의 서사에서 상당부분 끌어와 그것을 민족주의 운동과 연결시 킨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한말 개신교의 성경 번역이 결과적으로 빚어 낸 것은 내부적으로는 사회개혁과 외부적으로는 반외세적 저항사상의 행동 프로그램인 성경 민족주의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중국기독교 역사 속에서 정통과 이단의 문제를 성경 God의 중문번역명에서 발생한 논쟁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문제는 명말청초의 천주교에서도 조상숭배와 공자숭배와 더불어 “전례논쟁(礼仪之争)”의 한 축으로 당시 천주교선교사들의 중국선교 현장에서 문화적응적 입장 또는 중국문화를 이교문화로 규정하고 이를 배척 또는 개화하려는 입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본문은 이 논쟁의 연장선에서 특히 개신교 중국선교 중 많은 서방선교사들이 참여한 영문저널 The Chinese Recorder 를 중심으로 이 논쟁을 전개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선교사들의 서방전통 또는 성서전통으로 구분되는 의식의 차이와 중국문화 특히 ‘상제’, ‘신’ 이 단어들이 갖는 의미의 차이, 그리고 중국종교 등에 대한 관점차이와 선교대상인 중국신도에 대한 이해, 서로 다른 선교지역 이해 등의 원인 때문에 좀처럼 종식되지 않는 논쟁을 전개했음을 고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충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이 논쟁을 통해 얻어진 경험과 중문번역명의 직접적 사용자인 중국신도들의 성장을 주목하면서 전대와는 다른 새로운 입장을 찾아나가며 이를 통해 상호 이해와 일치의 길로 나아가려고 노력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분명 용어문제(Term Question)는 단순한 명사논쟁이 아니라 사상간의 실제적인 교류를 의미하는 논쟁이다. 이 때문에 각각의 역명(용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함의들을 파악하고 중국언어가 가지고 있는 복잡성과 지역적 차이성 그리고 역사적 변천 등을 심도 있게 연구한다면 충돌처럼 보일 수 있는 논쟁의 현장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으며 더욱 자신의 관점을 수정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얻을 것이다. 우리가 The Chinese Recorder 를 통해 얻은 관점은 바로 이를 실천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고집해 성서의 God을 전달할 방법이 한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에 의해 전달할 수 있음을 즉 번역 속에 수많은 타협과 다원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