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송국리형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거점취락을 대상으로 사회발전 양상을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송국리형문화 단계가 과연 어떤 형태의 또는 어떤 수준의 사회였는지 들여다 보기 위함이다. 이를 위하여 당시 취락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이념체계와 관련되는 고고학적 맥락을 추출하여 사회적 수준과 발전양상을 살펴보았다. 송국리형문화의 취락사회는 Chiefdom 사회에 깊숙이 진입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모든 취 락사회가 동일한 체계로 운영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고고학적 환경에서 사회 발전과 변화에 영향 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핵심요소들은 거점취락에서 활성화되어 있었다. 족장 성격을 갖는 유 력자의 존재와 지도력, 유력자와 그 공동체 또는 세력집단 간 갈등과 같은 사회현상, 대규모 공사를 위한 노동력의 집결과 부의 재분배, 위세품의 존재와 장거리 교역, 사회적 위계화와 장인집단(전문 화·분업화)의 존재, 거점취락과 지역사회의 유기적인 연계망, 사회결속을 위한 취락의례(제의)의 존 재 등은 송국리형문화단계의 취락사회, 특히 거점취락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이었다. 비록 모든 취락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화·보편화 현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Chiefdom 사회의 발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문화요소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송국리형문화를 영위했던 다양한 취락사회는 내적·외적으로 사회적 관계와 지역적 적응 속에서 상사·상이한 체계로 발전해갔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공통되는 사회발전 양상과 지역성을 고려하여 우리 형편에 맞는 사회발전 모델과 범주의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송국리형문화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문화로서 지역적 보편성과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 문 화는 한반도에서 제주도로 전파되어 북제주의 삼양동과 남제주의 예래동과 화순리에서 대규모 취락을 형 성하였다. 이러한 배경은 제주 탐라문화의 지역 거점화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제주도에서 송국리형문화는 유입기-확산기-토착기-전환기를 거치면서 발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물질문화와는 달리, 제주 토착민들은 송국리형주거의 전통을 원삼국시대까지 지속시켰다. 특히 호남 지역과 상통하는 주거문화가 전기간 동안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송국리형문 화가 제주의 토착적 기층문화를 형성했다는 점과 그 기원이 호남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근거 라고 생각한다. 제주도의 송국리형문화는 기원전 7세기 어느 시점에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기원후 2세기 이후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기간 동안 제주도에서는 물질문화의 변화 과정을 거치는데, 기원전 300년 을 전후하면서부터 제주도만의 토착적인 토기문화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외도동식토기가 출현하 는 기원후 2세기 전까지 원초적인 탐라문화로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외도동식토기의 출현과 곽지리 식토기로의 계승은 본격적인 탐라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므로 이전 단계는 古탐라시대라고 해도 무리는 아 니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