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노스의 정적주의 사상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의 핵심메시지를 근거로 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삶과 회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정 적주의 테마를 설명하는데, 자신의 삶속에서 겪은 여러 사건들을 성찰한 후 그 리스도교인의 삶에 관하여, 특히 내적인 삶과 기도에 관한 명상을 했다. 고백 록 은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몰리노스는 아우구스티누 스 영성의 직속 후계자로서 그의 영적안내 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반향을 짙 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안에서 쉬도록 되어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리가 어떻게 몰리노스의 내적인 삶 가운데 작용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몰리노 스에 의하면 신이 우리 안에서 행하는 일은 그 분께 해야만 할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로서 신과의 통교는 자기 부정과 신안에서의 휴식의 중요한 측면이 다.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며, 또 신이 전 하는 뜻을 듣고 들으려 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후계자 몰리노스 가 제안하는 신앙여정의 결론은 신에 대한 신뢰, 자아포기, 명상이며, 그럼으로 써 크리스천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약속한 성령 안에서 휴식과 쉼을 얻도록 그들 을 초대하고 있다.
“사형제도”를 다루는 방식은 법률적이고, 민속학적이며 사회학적인 분 야이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종교사적으로 고찰하려고 한다. 즉,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 “사형제도” 역시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음에 분명하며 이를 둘러싼 입장 역시 첨예하게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신약성서에 따르면 사형제도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복종과 불복 종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이 정부에 사형제도라는 권한을 부여해주셨다 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사형제도를 거부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법의 이반 (離反)이라는 전제 아래 주장하였다. 반면 신정통주의 신학자인 에밀 부룬 너는 “검, 즉 사형제도는 깨어진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신의 거룩한 진노 의 표현이며 표현이어야만 한다”고 기술했는데, 이는 완고한 이단, 어린이 들을 미혹하는 유혹자, 살인이나 신성모독자 같은 범법자들에 대해서 불과 검으로 근절시켜야 한다는 프란체스코회 설교자인 시에나의 베르나르딘 (Bernardin von Siena, 1380-1444)을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종교 사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사료에 대한 언어학적이고 역사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국가와 정치에 대한 종교적인 관계를 묻는 것인 데, 이때 본문과 사실에 대한 종교사적인 접근이란 종교적인 언어로 환원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 교회가 겪고 있는 도나투스파 논쟁에 깊이 관여하면서, 그 지도자였던 “파르메니아누스 서신 논박”(Contra epistulam Parmeniani)을 남겼다. 그는 이 작품에서 근본적으로는 살인과 같은 사형제 를 인정하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의 권위와 국가의 권위를 모독 함으로써 질서와 규정을 깨는 행위들에 대해서는 “사형제”라는 강경한 입 장을 천명하였던 것이다.
이 논문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삼위일체론을 비교 연구하기 위함이다. 초대교부들의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적 개념으로 세 위격에 대한 전통적 교리를 정당화하면서 양태론과 삼신론의 위험성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 간의 상호 사랑의 동등한 본질을 강조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은 그 이전 교부들에게서 나타나는 일체성이나 삼위성에 치우친 강조로 인한 난제들을 사랑의 유비를 통해 동시에 균형 있게 강조함으로 서방교회의 심리학적 삼위일체론과 동방교회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모두 분명하게 제시했다.
에드워즈는 동서방교회의 전통 속에서 17세기 개혁적 스콜라주의자들과 청교도들의 사상을 계승해 관계론적 개념으로 자신의 삼위일체론을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 에드워즈는 성자의 영원출생과 성령의 이중발현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을 발전시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역동적 실재 개념으로 설명했다. 성부를 최초의 자존하는 신성으로, 성자를 신적 성향의 재귀적 명철의 실현으로, 성령을 신적 성향의 재귀적 사랑의 실현으로 보았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가 정의한 성부와 성자의 ‘사랑의 띠’로서의 성령은 비인격적인 의미로 오해될 소지가 있었지만, 에드워즈는 성부와 성자의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자’로 성령을 표현함으로 인격성을 뛰어넘는 신적 위격에 합당한 자리매김을 해 놓았다. 또한 에드워즈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의 독특한 우월성을 통해 세 위격의 동등성을 부각시켰고, 관계적이며 사회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향적 존재론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가정과 공동체 간의 올바른 관계의 본을 제시해 주었다.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을 토대로 독창적으로 계승한 에드워즈는 개인이기주의를 초월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동적 관계성을 강조함으로 동등성과 상호 사랑에 기초한 공동체성과 실천적 경건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The paper has the aim to search for why humans should feel spiritual emptiness in spite of material fullness. This is the epistemological reality that humans differ from animals loyal to satiety of stomach. Humans are created with reason as the tool to admire and worship the amazing grace of the Creator and get closer to divinity leading humans to heaven. Eliot as a kind of common human pursued through his poems the ultimate themes such as origin of existences, goal of life, and good / evil, while Augustinus that relied on The Absolute God as the donor of reason as a part of divinity told us them in terms of theology. In the sense, Eliot pursuing the ultimate themes like life and death and also Augustinus resorting to the sacred providence of God, mean representing common people’s desire trying to grasp eternity in spite of having transient longevity. The only two things that we humans including Eliot and Augustinus can know are the terrible realities that we are absurdly thrown into the world and necessarily face with death as the unavoidable and gloomy termination. The pious vision from the saint of Hippo on Eliot’s some ultimate themes is aimed for the practice of ‘caritas’ that means sacred love to both the Absolute and ordinary people. In conclusion, R. Descartes depending upon human’s own apparent thought rather than turning to God, F. Nietzsche declaring the death of God, and K. Marx disregarding divinity and reducing human to molecular state would commit errors because they misused reason given by God that they hated, and produced the proposition of ‘Cogito ergo sum’, the Birth of Tragedy, and the Capital, which also can be recognized as a reality of double bind.
Es ist bekannt, dass Augustin auf die reformatorische Theologie Luthers einen großen Einfluß ausgeübt hat. In dieser Arbeit geht es darum, festzustellen, an welchen Punkten und in welchem Ausmaß Augustins Theologie von Luther rezipiert worden ist. Dafür untersucht der Verfasser, wie Luther in seiner Vorlesung über Römerbrief Augustins Schrift De spiritu et littera zitiert und rezipiert hat. Luthers Vorlesung über Römerbrief steht Augustins Schrift De spiritu et littera zugleich näher und ferner. Auf der einen Seite hat Luther die zentralen Gedanken von De spiritu et littera aufgenommen. Auf der anderen Seite ist er die Themen wie die Rechtfertiung, die iustitia Dei usw. über Augustins Leitgedanken hinausgegangen. Zum Verhältnis von Luther und Augustin: Mit dem Kirchenvater war Luther vertraut. Augustin ist für Luther zeitlebens die oberste nichtbiblische Autorität geblieben. Aber gelegentlich war Luther ein gewisser Unterschied zwischen Paulus und Augustin bewußt und auch hat Luther vorsichtige Kritik an Augustin geübt. Schließlich hat Luther nicht der historische Augustin selbst, sondern der von Paulus akzeptierte bzw. reformatorisch reinterpretierte Augustin interessi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