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없는 문”은 불교의 무문관에 나오는 공안이다. 연구자는 인간들이 공연히 문을 세우고 그 인위의 문을 통과하려고 애를 쓴다고 본다. 물론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통, 관습, 규범이 다 그런 것들이다. 데리다의 해체주의도 마찬가지다. 라캉의 말에 따라, 인간이 타자의 산물인데 어떻게 타자를 해체할 수 있단 말인가? 또 보르헤스의 말에 따라 나의 텍스트는 타자의 소산이 아니던가? 데리다가 말한 차이와 연기도 헤라클레이토스와 노자가 수 천 년 전에 이미 말하였다. 같은 물살을 두 번 체험할 수 없다고. 또 소쉬르의 기호학의 요지도 노자와 장자가 수 천 년 전에 도가도 비상도, 무위자연으로 이미 말하였다. 그래서 본고 에서 해체주의는 기존의 확립된 예이츠의 시 해석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생산에 일조 하려고 한다. 그것은 타자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이기에 타자의 텍스트를 해체한다는 말은 자기부정의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확립한 해체주의 또한 타자의 소산 으로 해체의 대상이 된다. 이런 점에서, 예이츠의 마스크 , 말씀 , 재림 을 분석한 결과 “마스크”의 불가피성, 언어게임으로서의 소통의 공식,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 대신 기계적 낙관성을 진단하여 기존의 해석에 대한 [차연]을 실천해 볼 수 있다.
전 세계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것이 자연의 반작용인지, 조물주의 분노인지 알 수는 없다. 단지 인간은 그것에 대응하기 위하여 노력할 뿐 그것의 정체와 끝을 알아낼 수가 없다. 여태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증상적이고 현상적인 것이다. 인간은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 기획의 일환으로 자연의 법칙을 하나씩 알아내어 불로장생의 수단으로 삼아가고 있는 중 이다.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인 휴머니즘은 600년이 지난 지금 포스트-휴머니즘으로 변경되었다. 그것은 인간과 기계가 결합된 세상을 의미한다. 인간의 아침은 각자 디지털 디바이스의 접속, 즉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열고 하루의 일과를 구상한다. 그래서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존재의 조건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포스트-휴머니즘을 전조한 영화들『불로(不老)의 묘약』, 『터미네이터』, 『매트릭스』를 예이츠의 시작품에 적용해 본 결과, 인간들은 스스로의 편의와 안락을 추구하기 위해 신성의 일환으로서의 사고의 결과로 스스로 창조한 기계에 의해 사멸할 운명에 처한다. 그리고 영화와 시는 현실의 상황을 영상과 문자로 현실을 반영하는 징후적 텍스트에 불과하다.
본고는 인간의 운명으로서 존재의 소멸에 관한 폴 비릴리오의 관점에 따라 존재의 소멸의 의미를 예이츠의 시작품에 적용한다. 「가이어」 에서 생성의 소멸의 과정을 살펴보았으며, 화자는 일시적인 만물 혹은 가치의 유전을 원치 않고 비극적 환희의 이중구속의 상황 속에서 지상에서의 영원한 소멸을 동경한다. 또 「1919 」에서 화자는 소멸의 운명에 대해 불평하지만, 사물이 소멸하지 않으면 그것도 재앙이 될 것이 다. 그럼에도 니체의 후예들은 소멸의 운명에 저항하며 영겁회귀를 꿈꾼다. 「벤 벌번 아래서」에서, 성 시스틴 성당의 벽화는 성스러운 아우라가 넘치지만 실상 반신 반수의 속물적인 인간의 작품이기에 신성의 소멸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에 미켈란젤로가 추구하는 것은 [세속의 완전성]을 추구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렇다면 소멸의 운명을 맞이하는 인간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시간의 보편성 혹은 통시성에 함몰 되지 말고 매순간 시간의 동시성 혹은 공시성을 향유하는 것이다.
“하위주체”라는 궁색한 용어는 서방세계에 침투한 내부자인 스피박에 의해서 독점적으로 탈식민주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도처 지배세력 하에 처한 모든 존재들이 사실 “하위주체”들이며,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크리스테바가 애호하는 전-언어적인 “코라”와 “비천화”라는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여기에 죽음과 에로티즘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서구사회의 구습에 도전하는 바타이유의 인식이 연 결된다. 이러한 반역적인 증상들을 예이츠 시작품에 적용해본 결과, “물속에서 자신을 감상하는 늙은이”에서 노인이 “비천체”가 아니라 “무위”(wu-wei)의 현상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으며, “마스크”에서 비록 그것이 “코라”와 양립할 수 없는 비본질적인 자아의 양상이긴 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인간현실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식할 수 있 다. 또 “상실된 것”에서 보이는 호불호(好不好)의 결과들이 인위적인 구분임을 인식할 수 있으며, “학생들 속에서”는 바타이유의 견지에서 공생을 위한 상호투쟁의 결과로서 성행위를 통한 존재의 연장을 인식할 수 있고, “세 가지 동작”에서는 실재적, 상상적, 상징적인 차원으로 이어져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반복되는 삶의 악순환을 인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삶은 그토록 고귀한 것이 아니라 삶의 실재에서 벗어난 거죽의 행로를 반복하는 비본질적인 쓰레기의 것으로 인식된다.
시를 읽는 일은 사물을 읽은 일과 같다. 유식과 무식을 떠나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끊임없이 주위의 대상들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사물자체 혹은 본질에 도달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사물자체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의미생산에 그치고 그 의미는 타자들에 의해 상속되고 갱신된다. 따라서 주/객의 일치를 선언한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인간사회에서 객관적인 대상으로서의 사물, 사건, 작품에 대한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견해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봐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때어났다. 항상 밑바닥에서 시작해야하는 시시포스의 운명처럼. 이런 관점에서 읽어본 본 작품의 내용은 영국의 탄압에 직면하여 식민지 아일랜드의 내/외의 비우호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듯하다.
유사 이래 인간은 생존을 위해 주변 사물에 대한 읽기에 몰두하여 왔으며, 그 권리가 왕, 마술사, 시인, 비평가, 학자에서 민중으로 넘어왔다. 이제 사물에 대 한 읽기의 주체는 정치체제의 변천에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독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므 로 본고에서는 학자, 비평가의 일방적인 읽기를 탈피하여 4차 산업시대를 맞이하여 다양한 매체를 통한 예이츠 시작품 읽기를 시도한다. 전자매체이든 문자매체이든 양자 모두 매체임에는 불변이고, 마찬가지로 아무리 세상이 바뀌더라도 사물에 대한 읽기는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의미하는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점점 기계와 일체화 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과 기계의 흥미진진한 세기의 대결 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최근에 벌어진 한국의 한 바둑 명인과 영 국 인공지능 알파고의 게임은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 면 알파고와 예이츠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알파고가 인간의 지식을 축적한 인간의 아바타이기 때문이고, 인간의 기억과 기계의 기억은 코드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고, 인간과 기계는 모두 저장된 기억을 활용하여 행동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 러니까 칼 융의 ‘집단무의식’에 상존하는 원형이나, 라캉이 말하는 ‘타자의 언술’이 인 간을 작동시키므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인공지능인 알파고에 해당되는 셈이다.
“비전,” “비잔티움,” “탑”으로 점철되는 예이츠의 플라토닉한 과업인 현 실에서 실재로의 항해의 차원과는 달리 지젝은 인간이 상징적, 물리적 현실을 탈피하여 실재로의 이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 현실과 실재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 려 구체적인 현실이 실재의 단서임을 주장함으로써 신-플라톤주의를 함의한다. 이 점은 지젝이 애독하는 라캉의 훔쳐진 편지 (The Purloined Letter)에 대한 독해에도 드러난 다. 이와 달리 예이츠는 무의식의 실재를 신비로운 영역으로 바라봄으로써 프로이트의 입장을, 지젝은 무의식의 실재를 기호로 바라봄으로써 라캉의 견해를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라캉이 프로이트의 텍스트를 확대재생산하듯이 지젝 또한 라캉의 텍스트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하여튼 예이츠와 지젝은 현실의 공간을 넘어 혹은 현실의 공간 안에 서 실재를 탐색한다는 점이 니체적인 불멸성의 비전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Yeats for his life pursued the completion of self, creating “half-self” as a kind of dialectical self and borrowing transcendental power by medium to reach the origin or presence of Thing Itself as the esoteric way of “auto-writing” shown in A Vision. On the other hand, Jean-Baptiste Grenouille, protagonist in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born with a sense of smell challenges making the essence of perfume risky of life, finally to kill women for creating a supreme perfume possible to fascinate everyone. Accordingly, both have something common as alchemists desiring a universal spiritual or exoteric solvent: the former immerges into enhancing spiritual ennoblement as a result of inner revelation, while the latter ventures his life to attempt the perfect combination of materials through numerous experiments to enchant all that smell the perfume, even those suspicious of charlatanism promising elixir of life.
본고에서 시도하는 예이츠의 시작품에 디지털 개념을 적용하는 하이브 리드적 접근을 혹자들은 다소 낯설게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이 “불확정성의 진리들”을 내포한 다층적 구조이기에 독자의 체험에 의한 구체화의 과정이 중요하다. 이렇게 분석해본 이니스프리의 호도 에서 시인은 현실의 근거로서 초현실을 제시했 으며 현실과 초현실의 인식론적 단절에 저항한다. 방황하는 잉거스의 노래 에서 등장 하는 “소녀”는 시적자아의 “아바타”로 기능하며, 이를 상상에 의해서 추동되는 “시뮬 레이션”의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학교 어린이들 속에서 는 지식의 전승으로 인하여 신이 존재하는 곳에 인간이 존재하며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 컴퓨터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사물을 특정한 대상으로만 지시할 수 없는 “브리콜라주” 의 삶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하이브리드”에 대한 불신을 자발적으로 포기해야할 제3의 밀레니엄(millennium)에 위치함을 인식하여야 한다.
예이츠는 인간의 정체, 존재의 이유, 삶과 죽음과 같은 궁극적인 물음에 일평생 세계의 어느 철인 못지않게 사색과 탐색을 거듭하였다. 본고에서는 인간이 지상에서 살아가지만 피안의 실재를 향한 치열한 탐색을 예이츠의 시작품을 통해서 살펴보고 그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해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어 인간의 구원에 헌신한 중세의 아퀴나스의 신학적 입장을 들어본다. 본고의 결론은 사물의 실재가 공허하지만 인간의 내면에 엄연히 존재하기에 만물의 제작자인 하나님이 실재하시며 이에 대한 동의 유무는 어디까지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This paper is focused on the rather esoteric search wondering if the two masters of letters across the recent West would communicate with each other in that they commonly lived in marginal countries, were schooled in English-speaking cultures and interested in the ultimate and overwhelming themes on 'maximalism' that mainly tends to put value on life and death, eternity and transcendence. This moment that the sublime mission of critics practices concreteness of obscurity recurs to us. Yeats tries to represent the motives stemming from myths and legends, while Borges pursues the representation of fantastic states missing in library, labyrinth and maze, which means their sympathetic embodiment of 'bricolage' on permanence. And through doubt of inertia realized in use of language and creation of works, Yeats practices 'automatic writing' and 'theory of mask' for the objectification of his works which results in construction of reality, while Borges does 'self-reflexivity' which shows us deconstruction of reality as broken mirror in favor of sarcastic criticism of writing. For the political positions of their biographies, the masters have something in common with their prominent careers and activities in which Yeats served the senate and resisted the British empire and Borges contributed to professor of a state-run university and stood against the Peron regime. Henceforth, some conjunctional and disjunctional points on intertextuality between the two masters can be inferred from their views on Buddhism and poems. In the respect that we, who can't be creators of texts but their agents, only drive violent 'assemblage' of code to camouflage Things, the suggestion that the immortal poem of Sowol's, "Azalea," imitated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and "The Lover Mourns for the Loss of Love" of Yeats's is reasonable and natural, and it can be deduced that Sowol didn't duplicate Yeats's poems but borrowed masochistic imagery from them, which reminds us of T. S. Eliot's declaration that only the first rank poet unnoticeably can steal other poets' works. On the other hand, Borges, through the parodized "Pierre Menard, Author of the Quixote," shows us the meanings of the text changeable with transitions of generations. Accordingly Sowol's poems tacitly responds to Yeats's poems, while Borges straightforwardly transcribes the original work in view of self-reflexivity. That Yeats's response to Shen-hsiu's and Hui-neng's Zen poems indicates that Zen can free people from the abstract mode of life fettering them is in contrast with Borges's reaction to Buddhism that 'a parable of arrow' and the high monk, Bodhidharma's insight de-constructing his pupil's faith of self-verification searching for his authentic mind only leads to meaningless groping of life. Although the masters's views seem different, virtually they are equal in the sense that life is nothing but some limited play in mood of 'tragic joy,' which is just like recognition of nothingness. Even if the entire works of Yeats's and Borges's can't be read, we can sense their themes converged under keynote of 'maximalism.' For pursuit of a Utopia, Yeats yearns for it, but Borges denies it. In recognition of reality and fantasy, Yeats tries to overcome reality through fantasy, while Borges thinks of reality as fantasy. Their positions on woman are extremely different in that Yeats exposes masochistic symptom, while Borges manifests 'carpe diem' mourning a beauty's fate finally encroached by the beast of time. For the ultimate theme of God, Yeats longs for unity with God, instead, Borges views God 'langue' as cultural and linguistic structure. Concerning cataclysm of civilization, the masters are of the same opinions in that Yeats asserts cyclic patterns of civilization to move from the one pole to the other pole and Borges songs a Nietzschean circulation. They show us considerably wide contrasts concerning recognition of eternity since Yeats yearns for immortal existence, while Borges views human beings ephemeral existences. In conclusion, intertextuality functioning an essential principle of life becomes the ground to deconstruct the boundary between authors and readers and shatters the absolute icons of authors and canons, since the moment we unfold texts before us, we often tend to indulge into illusion reading precisely them rather than 'misreading' them and recognizing reality caused by automaticity of linguistic structure. However, to avoid or lessen the contradiction or irony in the reading community, we can enjoy the horizon of split or inter-subjective meanings produced by diverse walks of readers with eradicating 'transcendental signified' of canon. After all, Intertextuality can be the background of De-construction, simultaneously serves the ideology of 'pragmatic theory' for texts not to be the origins or totalities of Things but to contribute to this and that aim of life.
This paper is an attempt to practice Jungian ways into a great poem of Yeats’s, “Among School Children,” over which home and foreign academic societies concerned have been under much controversy till now. But it is very regrettable that I have no belief if the views issued from some noted scholars in the societies have been plausible or appropriate. In the sense, as suggested by the title, the encounter between Great psychologist C. G. Jung and Great poet W. B. Yeat is very significant in that they both had pursued the same ultimate subject as a supreme state of humanity respectively represented as archetype of ‘Self’ and ‘Unity of Being.’ For Jungian ways applied to the poem, first symbols, images and psychological situations lurking in it can be useful as the interpretative clues. These representations can function as faithful agents helping us to reach the gate of the poetic truth, urging us to mobilize Jungian esoteric terms corresponded to several kinds of psychological situations people must go through. ‘Great Mother,’ maternal archetype, who stands for earth and womb and takes two characteristics, construction and destruction, possessing opposite qualities of Witch Kali and Virgin Mary, exercises serious effect upon a male child as an earthly hero. Some ideal aim or mission that the hero strives to grasp is just equivalent to hurriedly return to the womb as his biological origin, namely secular realization of the principle of ‘entrophy’ meaning the second principle of thermodynamics; does mean the hero’s life whatever else? It can be associated with the biblical situation, Pieta, the holy picture describing Mary’s lamenting in bitter grief with embracing his dead son, Jesus Christ. In fact, the hero is determined to death resulting from energetic emission of burning libido, which can be embellished with either establishment of duty or sacrifice to community. Thus, ‘Great mother’ longing for the runaway baby from her womb, in turn, is expecting his death to suffice emptiness of womb and heal her chronic complex, hysteria. In conclusion, in the poem, we can find that the destiny that after “children” in the “school” go through a initial step of ‘individuation,’ the perfect state which further can be indivisible, they, absurd beings, are cast into the tough world with each secular mission is just to aid the scheme of ‘Great Mother.’ “school” is a temple teaching “dance” and “children” in it dancers learning “dance.” Accordingly, the enigmatic relation of “dancer” and “dance” in the eighth stanza would be unraveled: The former can come under an archetypal pattern and the latter can correspond to its practitioner. Thus, “dance,” playing a role of ‘complex’ as compelling force and driving us to imitate it, tires us, dancers, finally to death, as an erotic dancer Salome’s dance murdered a spiritual dancer John the Baptist. After all, we can never get to the core of “dance” only to hang around its brink, which Yeats should know. As usual, getting captivated by “dance,” we continually shout hoarse to others: Shall we dance?
The paper has the aim to search for why humans should feel spiritual emptiness in spite of material fullness. This is the epistemological reality that humans differ from animals loyal to satiety of stomach. Humans are created with reason as the tool to admire and worship the amazing grace of the Creator and get closer to divinity leading humans to heaven. Eliot as a kind of common human pursued through his poems the ultimate themes such as origin of existences, goal of life, and good / evil, while Augustinus that relied on The Absolute God as the donor of reason as a part of divinity told us them in terms of theology. In the sense, Eliot pursuing the ultimate themes like life and death and also Augustinus resorting to the sacred providence of God, mean representing common people’s desire trying to grasp eternity in spite of having transient longevity. The only two things that we humans including Eliot and Augustinus can know are the terrible realities that we are absurdly thrown into the world and necessarily face with death as the unavoidable and gloomy termination. The pious vision from the saint of Hippo on Eliot’s some ultimate themes is aimed for the practice of ‘caritas’ that means sacred love to both the Absolute and ordinary people. In conclusion, R. Descartes depending upon human’s own apparent thought rather than turning to God, F. Nietzsche declaring the death of God, and K. Marx disregarding divinity and reducing human to molecular state would commit errors because they misused reason given by God that they hated, and produced the proposition of ‘Cogito ergo sum’, the Birth of Tragedy, and the Capital, which also can be recognized as a reality of double bind.
This paper is to show how properly the contagious concepts stemmed from Deleuze can be applied to literary text, even if Deleuzean reading that has flooded as yet home or abroad is hard to practice. However, we always feel it troublesome that the challenge is so hard and even fatuous in the sense that Deleuze’s texts are inclined to decline to be grasped by readers. Moreover, even the poem of T. S. Eliot’s also would get out of reader’ obsessional desire to ‘territorialize’ the poem. In the dilemma, we find a aphorism of Lacan’s as a western high monk: we can’t read all texts of an author and can’t grasp all of his/her identity even if he/she has scoured all of his/her texts thoroughly. Thus what we know is no less than broken knowledge, so someone who argues that he/she is a know-all must be totalitarian or paranoiac. Deleuzean reading can be practiced in view of not ‘systematic reading’ but ‘affective reading.’ The former chases after comprehensive ideas as if readers would be gods in the Olympus mount, but the latter enjoys ‘intensity’ or velocity of each part composing of text as asserted by Spinoza. After passing through this poem, the trend of ‘deterritorialization’ is perceived just like a form of melody, ‘rondo,’ in which main melody is recurring with marginal variations intervened every movement and at last reduced to ultimate themes which can be summarized such as state of thought without image, enlightenment and revision. To reach the poetic truth, Eliot mobilizes a collage of intertextual images such as a gruesome world of Dante’s hell to which ‘line of flight’ or ‘singularity’ as death takes human in which confession makes possible atonement or salvation. “a patient etherized” means lethargic being castrated by the norm or value of community and paralyzed by the conventional images in ‘socius’ such as primitive, despotic and capitalistic state. “yellow fog” seems to veil falsehood of reality, but indicates difficulty of rational judgement and “time” as ‘abstract machine’ of self-contradiction frees oneself from oneself with the same identity made up of present(‘chronos’), past and future(‘aion’) articulated only by human as subject of thought. Ego riding on timetable is determined to be confined in routine of life, which means that we must take off each conventional mask. Thus “ragged claws” cut causation as ‘rigid line’ of world and Apostle John and “Lazarus” as saints undergo metamorphosis of death or rebirth in that the one was martyred and the other returned from across Lethe of oblivion as Zarathustra would face against his fate. “the eternal Footman” functions as self-disciplined subject succeeding to regime or prisoner contained in ‘panopticon.’ “Hamlet” and “the Fool” mean that the former as ‘war machine’ tries to subvert ‘the State apparatus’ or ‘molar aggregates,’ and the latter denies despotic ‘normalization’ or generalization. Contrary to the mundane situation, “mermaids” and “sea-girls” stand for becoming-imperceptible through ‘decoded flow’ happening when the poetic narrator fed up with stuffed images drowns himself as moving ‘phenotext’(the signifying system) to ‘genotext’(not reducible to the language system), and awakes himself in the revision of Things. At last Eliot completes “the love song” with the esoteric tree diagram erasing image by image, and shows us the terrible road to enlightenment.
This paper is an attempt to interpret "Ash Wednesday"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religion as the background of life indeed can contribute to the salvation of mortals, and to examine how Eliot can reach the 'still point' in the Christian view. Religion(Religare in Latin) means the reunion between The Absolute and humans on the basis of the cleansing of The Original Sin caused in Eden. On the other hand, it may be the great spirit of 'engagement' as nothingness standing against existence. Further, religion becomes not only a way of an imaginary level defending grim reality, but also a 'presence' determined over innumerable ages to save humans from the horror of death. Eliot, believing poetry can function as a substitute for religion, pursued several aspects of religion to grasp the very essence of life and an unknown stage after life. But he might have gone through severe conflicts between religion without consciousness and religion with consciousness as Paul de Man put it. Through reading "Ash Wednesday," this can be associated with whether religion serves as a role of a mid-wife or a soporific. As a whole, this poem surely touches upon 'washing worldly cares' such as honors and achievements on Earth, or 'baptism' in the Christian way. In this sense, the poetic narrator thinks that "the aged eagle" tries to fully stretch his/ her wings, which only become mechanical gestures and squirmings harboring under Heaven, revealed in "infirm glory" and "transitory power." After the narrator died, his/ her flesh was gulped down by carnivorous "leopards" and then the dry bones were exposed to the earth. This stands for the process of naturalization that must be destined for all living things. Under "a juniper tree," Elijah cried and faced his cruel fate, but "The Lady" was only indulged in "contemplation" regardless of his pressing situation. This can be thought of as 'A View of White Bones' issued from Hinayana as found in the lines: "Where all loves end/ Terminate torment/ Of love unsatisfied/ The greater torment/ Of love satisfied." Consciousness, escaping from its body, moved to a transcendental level through "the toothed gullet of an aged shark." This step can be equivalent to Jonah's regeneration, needing negation of worldly concerns. The process of negation, as shown in Upinishad, must be necessary for the dead to renew their souls, so they can expect the amazing grace of the Creator. After having forgotten his earthly affairs through limbo, the narrator came to "the third stair," in which some blessed and comfortable environments were given to him/ her: "spring," "fiddles," and "flutes." Here there are no values of things that humans valued extremely on Earth. The values are merely for either 'exchange value' or 'sign value' just a kind of made-up value. Self-restoration happens after "Mary" leads "the others" across the other shore of Lethe and "fiddles" and "flutes" wash their ears, equivalent to a regenerative scene of "unicorn" leading "hearse." The reality of "signed" cross exists in the apocalyptical background of "the silent sister" and functions as a way of redemption. The Creator sends his holy message to creations by "wind" as "the token of the word unheard, unspoken" corresponding to some sensible revelation. Eliot doubts authenticity of language since he thinks that "the unheard, unspoken word" can be the true word "for the world," and values "enough silence." In this way, "those who walk in darkness" are those who pursue 'self' and "those who avoid the face" are those who disregard 'self.' The poet does not want "to turn again," which means that he may recognize the principle of entropy heading from valuable Eros to valueless Thanatos. The prayer like "Bless me father" can correspond to the ego-centric desire of the narrator, for he/ she tries to transfer his / her own faults to the God. The Human's spirit, "weak spirit," is merely a "lost heart" which can cause "lost lilac" and "lost sea," and arbitrarily drives "salt savour of the sandy earth." In conclusion, Eliot, reminding me of a missing and crying baby yearning for its lost mother, reflects on his bitter past on the assumption of his imaginary death. His 'alter-ego,' the narrator, through the process of sweeping off worldly cares, eventually gets to "place of solitude" dusting off "time of tension" and comes to learn how "to sit still" under "the juniper tree." Thus he becomes to be reborn in one with "spirit of the river" and "spirit of the sea," which means an esoteric level of enlightenment through which Buddha must have overcome the glossy temptations of Maya. But wandering long since being banished from Eden, Cain's offsprings heartily wish for the ecstatic recurrence of it. Eliot says that we can come to terms with the Maker only through burning each secular soul and body as becoming "ash," meaning the extinction of fiery des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