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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에서는 엘리엇과 애쉬베리의 시와 시론들을 통해 모더니즘과 모더니즘 이후의 시학의 차이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런 차이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우선 '체계'를 향한 모더니즘의 요구가 위에서 또는 멀리서 바라보는 시선의 위계적 구도 속에서 진행되고 있음에 우선 주목하였다. 어떤 고전적인 서사도 가능하지 않는 프루프록의 진퇴양난 속에서 이런 위계적 시선의 구도가 결국 무너질 수 밖에 없음이 발견되었다. 애쉬베리의 시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프루프록의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애쉬베리는 “공허” 앞으로 여러 감정들이 마술경처럼 지나가는 묘사를 통해 "부재의 기호“를 중심으로 기호들이 떠도는 탈구조주의적 풍경을 우선 그려내고 있다. 위에서 바라보거나 의미를 읽어내려 하지말고 “인생의 긴 시간 사람들과 같이 살아온” 것처럼 느끼며 시작하라고 애쉬베리는 말한다. 애쉬베리의 시를 통해 우리는 감정들이 계속 이어져가고 “밀려오고 밀려가는 움직임” 속에서 하루하루가 완성되는 새로운 숭고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2.
        2014.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존 애쉬베리의 작품『세 시』는 T. S. 엘리엇의 모더니즘 시『네 사중주』에 대한 포스트모던적인 반향이다. 엘리엇은 “육화”를 “회전하는 세계” 속에서 궁극적인 “정점”으로 동일시함으로써 기독교적인 중심을 갖는다.『세 시』를 면밀히 분석해보면 애쉬베리가『네 사중주』의 특정한 언어와 생각에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시간에 포섭되는 것을 거스르는 엘리엇의 기독교적인 주장을 해체하고자 했다. 엘리엇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반한 유럽중심적인 고착이 자신들만의 문화적 구조를 바탕으로 세계관을 발전시키는 비서구사회의 독자들에게 문제시될만한 영향을 만들어내는 반면에, 애쉬베리의 보다 평등한 중점은 비서구사회의 문화적 구조에서도 보다 폭넓게 해석될 수 있다. 한편, 애쉬베리의 비정치적인 주체적 병합은, 즉 탈중심화된 주체는 그 자체가 유럽중심주의라는 측면에서 문제시 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들이 논의해온 것처럼, 탈중심화된 정체성은 비서구사회와 소수민족들이 정체성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순간 특권을 갖는다. 애쉬베리의 엘리엇에 대한 비위계적이고 탐구적인 비평은 유럽중심주의에 반하는 좀 더 성공적인 미적 대응 방식을 제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