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궐의 영원의 사자들은 판타지 로망스이다. 판타지 로망스는 로망스의 플롯에 판타지 요소를 사용하는 소설의 하위 장르이다. 저자는 자신을 문학 작 가가 아닌 로망스 작가로 선언할 만큼 전통적인 문학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글쓰기를 지향한다. 영원의 사자들은 이승의 인간인 나영원과 저승의 사자인 갑1 사이의 사랑과 운명, 그리고 연화로부터 나영원에 이르기까지 33년을 주기 로 환생하는 여인들에게 반복되는 죽음과 공포의 이야기를 다룬다. 살아있는 인 간인 연화는 7세 때 저승에서 사자들을 만나고, 특별히 갑1을 운명적으로 사랑 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과 저승사자 간의 인연은 금기사항으로 연화는 갑1을 잊 지 않으면 사후에 저승으로 들어갈 수가 없게 설정된다. 연화는 마음속에서 갑1 을 잊지 않기로 다짐한 결과로, 이승에서의 폭력에 의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매 번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즉시 환생하게 된다. 전생이 경험한 죽음의 공포와 갑 1에 대한 운명적 사랑에 대한 기억은 나영원의 꿈을 통해 소환되고, 사자들의 도움으로 33년의 저주는 풀리게 된다. 판타지 로망스로서 영원의 사자들은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한 인간의 간절한 마음이 이승과 저승이라는 시공간을 넘어 이루어내는 사랑의 이야기를 초현실적으로 구현한다.
정은궐의 홍천기는 하늘의 신비로운 섭리와 인간 삶의 현상을 종교적 관점에서 예술적으로 담아내는 작품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또한 인간은 본능적으로 욕망과 분노의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강렬하게 분출될 때 마가 자리하게 된다. 마는 강력한 욕망이나 분노에 자신을 내맡긴 사람을 자신의 먹잇감으로 삼는 파괴적 요소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신에만 의지하며 살아갈 수 없고, 형이상학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소설에서 천재적 화공인 홍은오는 산수화와 초상화를 통해 여백이 드러내는 미학적 가치를 보여준다. 부친의 재능을 이어받은 홍천기 역시 여백을 중시하는 화풍으로 예술가의 길을 걸어간다. 몸 안에 마가 자리한 하람은 천문에 능한 자로 자기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홍천기와 천생연분의 관계를 이룬다. 이들의 삶과 사랑은 여러 신령한 존재와 상호작용한다. 신령함이 부재한 인간과 사회에는 마에 자리를 내어준다. 물신숭배로 채색된 현대인 초상화의 두 눈동자에 신령함이라는 여백의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 여백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승화와 영적 도약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