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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전국적인 설문조사자료를 분석하여 과학연구에 대한 한국인의 지지도가 어떠하며, 어떤 집단이 이러한 지지를 견인하고 있는지를 순수 기초 연구, 산업발전을 목표로 하는 응용연구, 일반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로 나누어 살펴본다. 분석결과 사회적⋅정치적 가치 지향에 따라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를 포함한 연구 유형별 지지도에 차이가 나타났다. 주관적 정치성향이 진보적일수록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를 다른 유형의 연구들에 비해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보수적일수록 기초연구에 대 한 지지도가 높아졌고 신자유주의적 가치지향에 가까울수록 응용연구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 졌다. 한편 한국사회에서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가 지나친 응용연구에 대한 비판으로 대두된 반면, 일반시민들은 이를 응용연구보다 기초연구와 대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가 전문가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참여를 강조하는 반면, 과학자의 권위와 전문성에 대한 신뢰도 수준이 높을수록 오히려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에 대한 지지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에 대한 지지도가 다른 두 유형의 연구에 대한 지지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7,700원
        2.
        2012.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예이츠는 「1913년 9월」에서 중산층의 물질중시와 현실안주를 비난하면서, “낭만적 아일랜드”가 사라진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영웅적인 투사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죽었지만, 그는 새로운 아일랜드 창조에 중산층과 강경한 민족주의자들을 오히려 방해요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낭만적 영웅심’이 사라지게 한 현 상황에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식하면서, 화자인 예이츠의 분열된 혼란스러움이 재현된다. 「1916년 부활절」에서도 부활절봉기에 대한 화자의 유동적인 마음이 잘 나타는데, 봉기에 수반된 폭력에 대한 찬사라기보다는 폭력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낸 양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들에서 재현된 예이츠의 입장과 태도는 고정되거나 미결정의 상태로 끊임없이 출렁이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8,100원
        3.
        201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대학생들의 일상생활에서의 사회 및 정치에 대한 인식이 대학생들의 정치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적으로 분석하였다는 것이다. 기존연구와의 차이점은 청소년기의 생활환경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것들이 청소년 정치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2009년 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조사한 실태자료를 참고하였으며 대학생 1363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것이다. 본 연구를 위한 분석방법으로는 SPSS 13.0을 통한 기술통계와 회귀분석을 사용하였으며,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학생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는 정치의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본인과 형제, 자매, 부모, 이웃과의 사회 정치 대화정도는 청소년 정치의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셋째, 대학생들의 매체 즉, TV, 라디오, 신문, 잡지, 인터넷 등을 통한 사회 및 정치에 대한 접촉정도는 그들의 정치의식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결과는 대학생들의 사회 및 정치에 대한 관심 및 담론의 기회를 넓히고, 다양한 매체를 통한 사회 정치의 참여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실생활을 통한 청소년들의 사회 정치의식에 대한 교육의 접근방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500원
        4.
        2007.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晩醒 朴致馥은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중국적 세계질서가 붕괴되는 시기에 영남 강우의 유학을 다시 일으킨 대표적 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 재 류치명을 사사하여 전통적인 퇴계학파에 속하면서도 남명 조식의 학문과 사 상을 수용하였으며, 유학을 현실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고자 했던 성재 허전의 학문에도 심취했다. 만성은 당시 국가가 당면한 총체적 위기는 유교적 교훈을 따르지 않았던 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았으며, ‘진정한’ 유교적 정치사회질서를 회복하는 것만이 국가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올바른 처방으로 보았다. 구체적으로는 ‘華夷論’을 수용하여 오랑캐인 서구세력의 침입으로부터 조선 을 보호해야 하며, 조선은 ‘中華’로 상징되는 유교적 가치와 질서의 옹호자여야 했다. ‘斥邪論’은 당시 집권층과 학파적 바탕을 같이하는 기호지역 유학자들의 지론이었는데, 만성을 통하여 영남의 유학자 가운데서도 이에 적극적으로 공감 하는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성은 비록 조선후기 일반의 유학자들이 갖 는 세계인식의 한계를 공유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눈을 통하여 당시 조 선지성들의 사유세계와 그들이 안고 있던 위기의 본질을 엿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