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중국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가톨릭교회의 선교에 비 해서 그들의 선교가 여러 측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식하 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교현장에서 의도적으로 개신교회가 ‘성서의 종교’ 임을 강조하고, 성서를 번역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으며 성서를 보 급하는 일에 노력하였는데 이는 개신교 선교부의 가톨릭교회와의 차별화 전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가 초기에는 ‘선교보호권’(宣敎保 護權)을 중심으로, 1622년부터는 포교성성(布敎聖省)을 중심으로 하여 국 가 및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 및 중국선교를 수행하였던 것과는 달리 개신교 선교사들은 대체적으로 자발적 선교회 등을 중심으로 하여 국 가 또는 강력한 교회중심체제로부터 벗어나 선교를 수행하였다. 일부의 현 상이나마, 가톨릭교회가 기독교를 선점한 중국에서 그리고 당시 직접적 복 음전도의 자유가 없던 중국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의 최선의 전략은 성서원 문으로부터의 성서번역과 보급이었으며 이는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자신들 의 정체성과도 일치하는 일이었다. 로버트 모리슨의 번역본을 시작으로 첫 100여년동안 8개의 다른 중국어번역본을 출판한 개신교의 열정이 그들의 성서에 대한 관심을 증거한다. 그러나, 대립되는 성서판본을 출판할 수밖에 없었던 개신교회의 불일치성은 오늘날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19세기 중국개신교의 중국종교에 대한 이해는 사실 그 제국주의적인 선교관점에서 시작되었다. 서방선교사들은 중국종교를 이교문화로 규정하고 중국인을 개화시켜야할 선교적 대상으로 바라다보았다. 그러나 중국문화의 강렬한 반기독교적 정서를 체감하면서 선교사들은 본질적인 면에서 다시금 중국종교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이해는 중국인의 종교정서 등을 발견하게 했고 보다 복음이 중국문화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와 더불어 중국신도는 자신의 고유한 토대문화 위에서 기독교를 수용하려고 노력하면서 좀더 적극적인 중국종교에 대한 이해를 개진시켜 나갔다. 우리는 19세기 중국개신교의 노력을 통해 오늘날 단편적인 자신의 이해를 넘어 복음전도를 위해 폭넓은 자신의 이해의 지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