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秋史 金正喜의 편지를 모아 간행한《阮堂尺牘》의 수사적 특징을 통한 글쓰기의 한 단면 과, 내면의식의 표현을 통한 내용적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추사 척독이 갖는 독특한 문예미를 조명 해 보고자 씌어졌다. 《阮堂尺牘》은 추사의 유배 이후부터 만년까지의 편지를 모은 것으로 經史, 百家, 古文, 詩詞, 老佛, 金石, 楷隸에 이르기까지 그의 학문과 예술 세계가 고스란히 나타나며, 내면묘사가 섬세한 문예취향이 강한 글이다. 《阮堂尺牘》의 수사적 특징은 ‘나열과 반복’ ‘영탄과 비장’ ‘직서와 고백’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나 타나고 있다. 그는 유학자로서 절제된 감정이 아닌 흘러넘치는 직관적 감흥을 시적인 리듬감을 통 하여 표현하였다. 질병에 의한 육체적 고통과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고뇌를 영탄과 비장을 통하여 나타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강하게 묘사하고자 할 때는 직서적 표현을 통하 여 내면을 여과 없이 진솔하게 표현하였다. 《阮堂尺牘》의 내용적 특징은 환경적 요인에서 오는 고독을 기다림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치유하 고자 하였는데, 그 기다림의 매개체가 척독이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는 자연의 이법에 따른 주역의 소통 이론을 통하여 현실을 극복고자 하였다. 추사는 서신을 통하여 서예이론에 대한 공부법과 서화에 대한 품평으로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깊이를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당대 예술적 경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추사척독은 자신의 精華가 말 밖에 넘쳐흐르고 신묘한 운치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척독의 예술성 을 풍부하게 부각시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하여 척독 사에 그의 위치를 자리매김하고 다 음 시기까지 이어주는 교량역할을 하였다.
본 연구는 19세기에 그려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가 당대와 현대를 가로지르면서 시대적, 문화적 차이를 통해 수용된 다층성을 밝히고자 한다. 김정희는 조선후기의 뛰어나 서화가(書畵家)이자 금석학자(金石學者)이자 실학자(實學者)이다. 그는 1844년, 그의 나이 58세 때에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때 김정희를 기억해준 유일한 제자, 역관 ‘李尙迪’을 기리는 마음으로 <세한도>를 그렸다. 이 <세한도>는 네 종류의 글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김정희가 이상적을 기리기 위한 발문이다. 두 번째는 이상적이 김정희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치적인 이유로 청나라 명사 16인에게 보여주고 받은 찬문찬시이다. 세 번째는 광복 후 김석준, 오세창, 이시영이 더한 찬문찬시이다. 네 번째는 황지우를 비롯한 여러 시인이 남긴 현대시이다. 롤랑 바르트가 제기한 것처럼, 하나의 기호는 2차 의미체계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낸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볼 때,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오늘날 황지우의 <유리끼운 세한도>에 영향을 미쳤다.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를 통해 자신에게 의리를 지킨 이상적을 기억하며 19세기의 ‘의’를 밝혔다면, 황지우는 추사 <세한도>를 20세기에 불러내어 현 시대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제시하였다. 즉 거대담론이 사라진 것처럼 인식된 현실세계에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다시금 불러 세워, 아직은 사회적 문제, 거대담론의 문제로 행동해야할 때임을 드러냈던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당대 개별적 작품성뿐만 아니라 시대를 넘나드는 시대사적 의의를 지닌다. 이를 드러낸 현대 시인이 바로 황지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