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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新羅 四海 祭場은 東海 阿等邊의 경우 현재 포항시 영일읍에 소재했던 魚龍臺 로, 南海 兄邊은 부산시 남구 용당동 일대로, 西海 未陵邊은 군산시 경암동 북쪽 해변으로, 北海 非禮山은 지금의 삼척시 葛夜山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들 제장의 성립시기는 동해는 신라가 영일지역을 확보한 사로국 초기에, 남해는 5세기 중반 이후, 서해는 죽막동 제사유적과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7세기 이전으로, 북해 비례산은 6세기 중반 신라가 동해안로를 따라 함경도 방면으로 진출하던 시기로 여겨진다. 북해 제장이 다른 4해와 달리 산에 마련된 것은 悉直州를 포함한 강원도 일대 동해안과 그 주변 해상력 확보과정에서 전통적 산악숭배, 그리고 고구려의 침입대비 및 우산국 정벌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 삼국통일 후 북방으로의 영역 확대에 불구하고 북해는 실직에 소재하였다. 실직의 지역토착 해양세력을 국가사전편제를 통해 흡수하려는 목적에서 과거 신라 해상력의 상징이었던 실직에 계속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해를 포함한 4해의 제사 형식은 대체로 중국의 예제를 참고하였을 것이지만, 신라의 전통적인 산천숭배 관념에 따라 제례의 순서와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이해 된다. 그 제일은 신라의 독자적 산천숭배 전통에 따라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왕도에서 행하는 경우 당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1년에 한차례씩 5郊에서 迎氣日에 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4해의 신격은 각 방면의 해신으로 神像을 조성하여 제사 때 모셨다. 4해에 대한 봉작은 성덕왕 34년(735) 시기까지는 행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4해 제사의 절차는 ..三國遺事.. 水路夫人조와 高麗 李齊賢의 시를 통해 재구성할 수 있다. 구체적 단계는 첫째 제장을 물로 정화하기, 둘째 신이성을 부여한 ‘杖’을 두드리며 용을 불러내기, 셋째 높은 바위에 핀 꽃을 꺾어 술잔과 함께 봉헌하기, 넷째 기우와 풍년 기원 등의 순서로 추정된다. 이러한 절차는 북해 제장에 적용되었다가 점차 다른 4해의 제장에도 확대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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