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와 단테는 시, 지옥편을 상징적 매체로 사용하여 인간 세상에서 절대선의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파운드는 런던의 현대사회를 지옥으로 묘사하여 현대 문명의 타락과 현대인들의 비도덕적 삶을 질타한다. 반면에 단테는 성경에 토대를 두고 지옥을 설정하여 사후세계의 지옥을 설명한다. 파운드는 플로티노스의 안내로 지옥 여정을 시작하고 끝내지만,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다양한 지옥을 여행한다. 요 컨대 두 시인은 지옥을 인간의 심리적 상태로 묘사하여 거기서 벗어나기 위하여 절대선을 실천하는 것이 현대인들이 가야할 여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이츠와 파운드 사이의 관계의 대체적인 큰 그림은 1910년대 수년간 형성되었다. 파운드는 부분적으로 예이츠를 만나기 위해 1908년 런던으로 오는데, 예이츠는 그보다 20년 연상이고 파운드는 예이츠를 시 분야에서 살아있는 거장으로 생각했다. 파운드는 문인들 사이에 곧 자리를 잡고, 올리비어 셰익스피어의 소개로 예이츠를 만나고, 예이츠가 매월요일마다 갖는 모임에 정규적으로 참석한다. 얼마 후 예이츠는 파운드를 비서로 고용하여 1913년부터 16년까지 서섹스의 스톤 코티지에서 3년 간 겨울마다 함께 머물면서 편지를 받아쓰게 하거나 가까이서 시를 쓴다. 이 생산적인 기간에 두 저명한 업적이 남는데, 예이츠의 『페르 아미카 루네』(1918년)와 파운드의 세 편의 장편시 를 포함하는 『러스트라』(1917년)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모더니즘을 "새로운 것"과 동일시한다. 1910년에, 혹 그보다 10년 전 혹은 후, 시 혹은 다른 문화와 지적 영역에 있어, 전통과 다른 중요한 새로운 것들의 출발이 되는 시점이었다. 미국에서, 에즈라 파운드, 왈러스 스티븐스, 그리고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같은 시인들이 족적을 남기고, 『시』, 『대중』, 그리고 『새로운나라』로 대변하는 작은 문예지의 문화가 등장하고, 그리고 그리니치 빌리지는 문화의 중심지가 된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1차대전 참전은 이 운동에 제동을 걸고, 전후 시기는 여려 면에서 달라졌다. 반면, 아프리카계 작가와 예술가는 할렘 르네상스의 결과로 그 전보다 1920년대에 더 큰 인정을 받는다.
Yeats held a life-long interest in Japanese culture, and employed the images, knowledge and inspiration he gained from Japan in many of his literary works. On the whole, it was the Japanese literary form that was most significant in his development as a writer. It was through the translations of Ezra Pound and Ernest Fenollosa that Yeats became acquainted with Noh, the medieval Japanese drama. It is generally agreed that Yeats’s encounter with Noh marked a turning point in his career as a dramatist. The Noh led him to create “a form of drama, distinguished, indirect and symbolic...an aristocratic form.” In “Note to At the Hawk’s Well,” Yeats writes:
I have found my first model—and in literature, if we would not be parvenus, we must have a model—in the ‘Noh’ stage of aristocratic Japan.
From this statement, we can see how significant the Noh-form was to Yeats in his development as a playwright. When Yeats was first introduced to Noh, he immediately perceived affinities with Irish legends and beliefs. The Noh was not something completely new or alien to Yeats. It was the discovery of an ideal, an ideal form for him to express his perennial themes of the tension between the physical and spiritual worlds. Yeats’s Noh-inspired plays are often categorized as “dance plays” and we can see that “dance” was an important symbol which Yeats developed through his experience with Noh. Yeats wrote in his “Introduction” to Certain Noble Plays of Japan that it was a Japanese dancer, Ito Michio, who inspired him to write his new play, At the Hawk’s Well (1916). In Noh, the dance which is usually danced by a supernatural figure, is placed at the centre. Here, the supernatural dominates the stage and the action develops toward a moment of enlightenment. Yeats precisely points out this fact and writes that in his new play, instead of “the players working themselves into a violence of passion...the music, beauty of form and voice all come to climax in pantomimic dance.” However, since Yeats intended Cuchulain as the central figure of At the Hawk’s Well, the theatrical effect of the dance had to differ from that of Noh. Another characteristic of this play is that it dramatizes the ‘transformation’ of the Guardian of the Well, the role which Ito Michio played, through spirit possession. This change in personality is conveyed by means of a change in costume(she throws off her cloak to reveal a dress suggesting a hawk). This is a method resembling ‘monogi(物着),’ one of the most important dramatic conventions of Noh. Yeats explores this device again, in The Only Jealousy of Emer(1919), another dance play modeled on Noh, but this time using different masks to show the change in personality. Yeats’s interest in this motif of spirit possession eventually led him to write The Words Upon the Window-Pane(1930), a play where he dramatizes a seancē. Here, the dramatic tension is concentrated mainly on a supernatural manifestation through the ‘protagonist’ who is a professional spiritual medium. In this paper, I have discussed Yeats’s relationship with Noh through a detailed analysis of At the Hawk’s Well. In this play, we can see many aspects of Noh. The simplified stage, the musicians, the mask, the dance, the use of a square blue cloth to represent a well; these are characteristics reminiscent of Noh. However, we must note that this play was not merely an imitation of Noh but a completely new form of creative writing. Richard Taylor indicates the influence of Yoro, a felicitous Waki-noh, or God Play on this play. A comparison of these two plays reveal that Yeats had no intention of following the Noh paradigms faithfully. However, the inspiration he gained from Noh opened a wide range of dramatic experiments enabling him to write a sequence of dance plays. In later plays such as The Words Upon the Window-Pane and Purgatory, Yeats succeeded in achieving a dramatic effect closer to that of Noh.
일본을 대표하는 고전연극 노(能)가 서양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19세기말부터였다. 일본과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노는 번역을 통해 서양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때 소개된 많은 번역 가운데 특히 유명한 것이 페놀로사․파운드의 번역이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한 정확한 번역과는 거리가 멀지만, 시극(詩劇)으로서의 노의 문학성을 알리는데 그 어느 번역집 보다 기여한 바가 크다. 노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간아미(觀阿彌 1333-1384), 제아미(世阿彌 1363-1443) 부자(父子)에 의해 대성되었다. 이들에 의해 노는 종래의 민간예능의 제요소들을 흡수하면서 당시 지배계급의 미의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상징적이며 귀족적인 극예술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제아미는 무겐노(夢幻能)라고 하는 노 특유의 극형식을 창출하였는데, 그 후 많은 작품들이 이 형식을 빌어 쓰여지게 되었다. 무겐노의 극구성을 보면, 정처 없이 떠도는 승려가 긴 여행 끝에 어느 마을에 도착하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이 승려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또는 남자가 나타나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화자(話者)가 바로 이야기 속의 주인공임이 밝혀지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일단 모습을 감춘 주인공은 극의 후반에서는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나 과거를 재현하고 춤을 춘다. 현세에 대한 미련, 추억들이 이들의 이른바 성불(成佛)을 막고 이승에서 떠돌게 하는 것이다. 승려는 이 영혼이 이승과의 인연을 끊을 수 있도록 염불을 드리고 이에 유령은 성불하게 된다. 작품에 따라서는 유령이 끝내 성불하지 못하고 영원히 이승을 방황하는 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파운드의 소개에 의해 서양에 널리 알려지게 된 노는 많은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예이츠는 노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작품 속에 노의 주제나 기법 등을 수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이츠가 말년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다름아닌 무겐노였다. 과거와 현재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자연계와 초자연계의 교류를 그리는 무겐노는 예이츠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여 그가 오랜 기간 모색해왔던 아일랜드의 전승․신화의 세계를 극화하는 방법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본고는 파운드와 예이츠가 무겐노 형식으로 쓴 작품 「트리스탄」(1916)과 「연옥」(1939)을 중심으로 노가 이들의 작품에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예이츠의 학교 어린이들 사이에서 (1927)와 파운드의 빌라네레: 심리적인 시간 (1916) 은 모두 장소의 개념을 시의 주제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두 시인이 모두 외부경치의 묘사로 서두를 장식하는 낭만주의 명상시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두 시인이 사용한 장소의 개념과 각 시의 주제를 연결시켜 보면 두 시인의 다른 성향을 알 수 있다. 먼저, 학교 어린이들 사이에서 에서 예이츠가 사용한 교실은 생로병사 같은 인간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그 새장 혹은 감옥의 좁은 방과 같은 한계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이 시의 주된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의 마지막 시구 (“춤과 춤추는 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인가?”)는 비록 학자마다 그 해석을 달리하여 아직도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나의 소견은 예이츠가 추구해온 합일의 신비적인 힘을 결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즉, 처음에 설정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합일의 힘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주관적인 힘에 더욱 더 무게를 두는 낭만주의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한편, 파운드의 빌라네레: 심리적인 시간 은 집의 묘사로 그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집이 화자의 시각 (주관적인 관점)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장소의 선택으로 인간이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주관의 한계(집의 내부에서 밖을 보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으로)를 극복하게 하려는 파운드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파운드의 방법은 객관적인 시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다양한 관점을 유지하여 주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 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파운드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객관적인 관점은 이루어지지 않고 주관적인 관점의 한계만 드러낸 채 끝을 맺는다. 이는 예이츠와는 달리 파운드는 주관적인 힘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의 힘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예이츠의 상상력에 대한 동경으로 시를 쓰고 그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던 파운드가 이제는 예이츠의 시적 노선에 대해 조금씩 거부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이츠가 그 자신을 마지막 낭만파 시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파운드는 이 시를 기점으로 이후에 보다 주관이 배제된 형식으로 객관적이고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인 시들을 발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가 시인의 내적세계라는 좁은 울타리를 나와 보다 이 사회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파운드의 시학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한 세기동안 모더니즘에 대한 다양한 탐구와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의 미학이란 문제는 전반적으로 그 논의에서 배제되었다. 많은 비평가들이 19세기의 낭만주의와 심미주의에 대한 반대로 시작한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새로움을 꼽았고, 그에 대한 논의는 너무도 많다. 이제 모더니즘의 미학의 의미와 의의를 검토하는 일은 무척 가치 있는 일이다. 모더니즘의 미학을 탐구하는 과업은 한 편의 논문에서 살펴보기엔 너무 방대하고 다양하기에, 본 논문은 에즈라 파운드와 T. S. 엘리엇의 작품에 국한하여 모더니스트 미학을 탐색하고자 한다. 매간이 『텍스트의 조건』에서 논의했던 “언어적 약호”와 “서지 학적 약호”에 근거한 두 가지 다른 독서에 근거하여, 본 논문은 두 모더니스트 시인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매우 다른 견해를 발전시켰으며, 그에 따라 매우 다른 작품을 썼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