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힌두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바탕이 될 때 네팔 선교는 더욱 더 구체적인 접근이 가능해진다. 네팔 힌두교는 여러 토속신앙과 혼합되고 불교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되었다. 그리고 정치와 사회-문화 전 영역의 중심을 이루며 네팔 역사와 함께 성장하였다. 또한 네팔만의 고유한 제의중심으로 발전한 특징도 가진다. 이런 네팔 힌두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선교적 제언으로는 다신사상에 대한 연구와 함께 기독교의 유일신에 대한 강요보다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증거적인 삶을 통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종교와 문화가 깊이 혼합되어 있는 현실에 대하여서는 비평적 평가와 상황화 적용으로 네팔의 고유문화는 지켜나가고, 힌두의미나 형식을 기독교적인 상황화로 발전시켜나가는 선교적 접근을 시도한다. 제의중심적인 힌두교인의 성향과 특징은 선교적 도구로 잘 활용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지는 방안을 모색한다. 결국 네팔 힌두교의 고유특징에 대한 이해는 네팔 선교 전략을 수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arly Buddhist rock cave temples of India, in spite of being an origin of Buddhist temples, has little been studied in Korea. After field studies and an interpretation of their forms in conjunction with religious life, precedent theories are supplemented and refuted as follows. Starting from the 2nd century B,C., Buddhist ascetic disciples digged residential rock caves, called vihara, for protection from monsoon rain and hot weather, A typical arrangement was settled -a courtyard type, with 3 side rows of tiny one-person bedroom and a front veranda with columns. Also digged were Chaitya caves, in line with viharas, to worship, which is the tumulus of Buddha's relics. I suggest that the original type of chaitya a simple circle cave with a stupa, suitable for circumambulating ceremonies. I refute the existing theory presenting Barabar caves of Ajivika as a chaitya origin, featuring empty circular room without a stupa. I also interpret a typical apsidal plan as being a simple result of adding a place of worshipping rites in front of the stupa. Enclosing columns around a cylindrical stupa is a result of reinforcing both the divine space and circumambulating ceremonies, with elongation toward hall. Finally the chaitya came to have a grandeur apsidal plan with high vault ceiling nave and a side aisle as in Western cathedrals with large frontal horseshoe arch windows. The Buddha image, which had become a new worshipping object, was integrated into the stupa and interior surface. First the stupa and then the statue was introduced to residential Viharas. Therefore, I suggest that the vihara should be renamed as 'chaitya' as a worshipping place, by establishing statue rooms without bedrooms at all. The functionally changed vihara is similar in form to a 'rectangular type of chaitya', little known and developed in different routes. A columned inner courtyard gradually becama an offering place, like Hindu mandapa, Buddhist caves ware changed to a kind of Tantric and Hindu temple by means of statue worshipping offering rituals.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엘리엇은 동서고금의 철학 및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유니테리언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한 엘리엇은 황무지를 집필 할 즈음에는 불교로의 개종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고, 1927년에는 자신의 종교가 영국 성공회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는 기독교 의 개념이 많이 들어 있으며 기독교의 상징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 렇지만 황무지의 제 5부 「천둥이 한 말」이나 네 사중주의 셋째 작 품인 「드라이 셀베이지즈」에는 힌두교의 개념과 상징이 사용되어 있 다. 특히 후자에는 크리쉬나가 직접 언급되어 있고 그의 말이 직접 인 용되어 있다. 이 이외에도 힌두교의 상징 내지는 암시가 이 작품에 풍 부하게 등장한다. 기타와 우파니샤드과 같은 힌두교의 경전 내지는 사상이 엘리엇의 정신적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런 점에서 엘리엇 이 끼친 힌두교의 영향을 부정 할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