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스캇(1893)의 훈민정음 기원론과 스캇(1887; 1893)의 한국 어 자모 제시 방법을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스캇 (1893)을 번역하여 훈민정음 기원론을 살펴보았고, 스캇(1887; 1893)을 번역하여 한국어 자모 제시 방법을 살펴보았다. 그러한 결과 스캇(1893) 은 훈민정음의 기원을 산스크리트어에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스 캇(1887; 1893)을 통해 스캇(1887)의 자모는 리델(1881)의 육필본을 스 캇(1893)은 리델(1881)의 인쇄본을 참고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한 스캇(1887)은 학습서의 틀을 갖춘 최초의 영어권 한국어 학습자를 위 한 학습서이며, 후속 연구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의 의의는 비교적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스캇의 한국어 학습 서 연구에 참여하였다는 것과 이 연구가 한국어 역사 교육의 기초 자료 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를 누가 썼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1940년경 한글판본이 안동에서 발견된 후 앞쪽 어제서문 4장이 떨어져 나가 이를 깁는 과정에서 훈민정 음 판하서체를 안평대군의 글씨로 지목하면서 심증적 추측성 의견이 분분하다. 본 논문에서 해례본 판하서체는 정인지가 직접 쓴 서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 근거로는 첫째, 훈민정음 해례본에 ‘세자우빈객 신 정인지 서’로 서자 (書者)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 둘째, 서체가 서문에서 관지까지 일맥창통(一脈暢通)한다는 점. 셋째, 부왕의 업적을 아들이 찬서 할 리 없다는 점. 넷째, 정인지서라고 적혀있는데도 다른 사람이 대서할 수가 없다는 점. 다섯째, 정인지 서체와 훈민정음 해례서체가 같은 필체라는 점이다. 제2장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전체적인 구성을 살펴보고 특히 정인지의 후서까지 한 흐름으로 이루어져 의도적으로 이 를 변조하거나 바꿀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을 밝혔다. 제3장에서는 그동안 학계에서 알려져 있는 기존 주장을 파악 하고, 정인지의 후서와 관지에 분명하게 서명했음에도 불구하 고 여태껏 필사자에 대한 서지학적 연구 정리가 이루어져 있지 않아 기존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특히 최초로 안 평대군 서체설을 주장하여 서지학적 논증과 실증적 연구 기회 를 놓친 것에 대한 성찰과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설명 하였다. 결론적으로는 이와 같은 근거와 논증을 바탕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판하서가 정인지의 글씨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두었 다. 끝으로 본 연구와 함께 필요한 서체비교 분석은 또 다른 연 구과제로 지면이 한정되어 진행하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하 며, 앞으로도 이 연구에 이어 정인지의 서예에 대한 재조명과 훈민정음 해례본 한자서체 및 한글서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 루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