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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당대(唐代) 신라인(新羅人) 김일성(金日晟)의 묘지(墓志)는 최근 중국 서안(西安) 응탑구(雁塔區) 삼교촌(三爻村)에서 출토되어 2010년에 대 당서시박물관(大唐西市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묘지 내용을 보면, 김 일성은 신라왕의 종형(從兄)으로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귀의하여 벼슬이 종삼품 광록경(光祿卿)에 이르고 대력(大歷) 9년(774)에 장안(長安)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생애가 전설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신라인의 묘지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 묘지는 당과 신라의 관 계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본고에서는 김일성 묘지와 관련된 제반 문제를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첫째, 전래문헌과 출토자료의 기록에서 신라왕실 자제 중에 ‘김일○ (金日○)’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당대 제왕이 하사한 이름이 자주 발견되는데, 여러 변방의 수장으로 당나라에 귀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김일성(金日晟)’은 ‘김일제(金日磾)’와 비슷하기 때문에 김일성은 당나라에 귀의한 후 개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묘지에 기록된 김일성의 생존연대를 추정해 보면, 김일성은 효 성왕(孝成王) 혹은 경덕왕(景德王)의 종형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혜공 왕(惠恭王)의 종형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할 수 없다. 신라 왕실의 자 제 중에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 학습하는 연령을 근거하면 김일성 은 성덕왕(聖德王)이 당나라로 조공을 보내어 숙위로 머물게 되었다. 개원(開元) 8년(730)에 성덕왕의 조카인 김지만(金志滿)이 당나라에 들어 와 숙위가 되어 오랫동안 당나라 조정에 있었는데, 그 행적이 김일성과 여러 방면에서 중복된다. 셋째, 김일성은 당나라에 들어와 은청광록대부(銀青光祿大夫)와 광록 경(光祿卿)을 제수 받았다. 현재 전래문헌의 기록에 당나라에 들어가 숙 위가 된 신라 왕실 자제에게 하사한 벼슬의 현황을 보면, 김일성이 제수 받은 광록시경(光祿寺卿)의 직책밖에 보이지 않는다. 구시(九寺)의 여러 경(卿)은 예악제향(禮樂祭享)과 민족외교(民族外交) 등의 업무를 담당하 였는데, 신라 왕실 자제들이 숙위관례(宿衛觀禮)에서 배운 것과 일치한다. 넷째, 김일성이 당나라에 들어간 후에 벼슬이 광록시경(光祿寺卿)에 이르렀고 장씨(張氏)와 혼인하였다. 오랫동안 장안(長安)에 거주하는 사 이에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발생하였는데, 그가 오랫동안 장안에 체류하 고 높은 관직에까지 승진한 것은 이 난과 깊은 관련이 있다. 김일성의 묘 지는 문장이 간략하고 크기도 비교적 작아 그 직책의 등급과 부합되지 않는데, 이는 장씨의 무덤을 이장하고 부부 합장묘지를 다시 썼기 때문이다. 다섯째, 김일성은 장안 영수(永壽)의 필원(畢原)에 장사 지냈는데, 영 수향(永壽鄉)의 처음 설치는 수대(隋代) 대흥현(大興縣)까지 거슬러 올 라갈 수 있다. 당나라에 들어와 영수향은 장안현에 관할되어 범위가 북 쪽으로 장안성 교외까지 이르고 동쪽은 천문가(天門街)를 경계로 하고 남쪽은 위곡(韋曲)까지 이르고 서쪽으로는 강촌(姜村) 일대까지 관할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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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LÜ Zu-Qian, ZHEN De-Xiu, and JIN Lü-Xiang are all renowned Neo-Confucianists during the Song Dynasty. Their viewpoint on literature was built on Confucianism’s Tao and they considered sentences from Liu Jing canon for their sentence structuring. Yet there are differences in compilations they made regarding selection of literatures and writers based on their selection criteria. LÜ Zu-Qian’s Song Wen Jian contained various works and writing styles, adhering to the emperor’s order to select sentences that would do good for politics. However, his compilation is criticized for lack of coherence. His another compilation Gu Wen Guan Jian mainly consists of sentences of archaic prose writers, holding true to its purpose of guide to sentence structuring. Taken together, overarching characteristics of LÜ’s compilations are purpose of guide to sentence building. ZHEN De-Xiu viewed sentence as part of academic pursuit, and argued that literature should identify sages’ findings and teachings. And it should be practically useful for the country, not merely a talk for talking’s sake. Holding true to such belief, ZHEN compiled Wen Zhang Zheng Zong by dividing the compilation into four sections: CiMing (purpose), YiLun (exchange of opinion), XuShi (launch work) and ShiFu (verse and prose) in a bid to teach readers for what the right kind of literature works is. This book, albeit stronger philosophical thought of Neo-Confucianism of the Song Dynasty compared to LÜ’s compilations, is mainly intended as a guide to creation of literature. JIN Lü-Xiang’s Lian Luo Feng Ya, the first compilation of poems written by Neo-Confucianists of the Song Dynasty contains the Lian Luo School’s poems and proses to identify the school’s origin and scholastic mantles. JIN put his painting Lian Luo Feng Ya Tu on the first page to demonstrate his academic tradition as a successor of Zhu Xi, and arranged literature works in the order of this. It has an implication as the first compilation of the Song's Neo-Confucianists’ poems that abstracted poems created by figures of the Lian Luo School and reestablished line of the Lian Luo School, a big move from traditional framework of compilation for traditional liter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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