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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神道碑銘은 일종의 墓道文字이다. 묘도문자는 한 인물의 學問, 言行, 德性, 業績, 家系 등을 기록하여 돌에 새겨 神道에 세우는 것인데, 남명의 경우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며 5종이나 남아 전하는 경우는 사례가 없다. 이 5종의 묘도문자의 撰者는 모두 자신의 입장에 충실한 修辭를 보였다. 대곡 성운은 평생의 벗을 여읜 슬픔과 그리움을 담아 곡진한 修辭로 표현하려는 입장이었고, 내암 정인홍은 무한한 존경심으로 스승을 높이려는 의도였으며, 미수 허목은 퇴계의 남명 비판 이후 견지되어온 남인학파의 견해와 자신의 평소 견해에 입각하여 남명을 高士로 기리는 입장이었고, 우암 송시열은 상대 당파이기에 오히려 자유로운 존숭을 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용주 조경은 미수와 동일한 입장과 견해에서 학자라기보다는 高士로 남명을 기리고 있으며, 사실의 기록과 闡揚의 수사 사이에서 사실의 기록에 치중하는 입장이었다. 龍洲는 南冥을 氣節이 높았던 高士로 평가했고, 그것을 修辭로써 잘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구사하였다. 이러한 修辭는 直敍와 尊崇의 사이에서 긴장하며 행간에 드러나고 있었다. 또 용주는 남명의 출처에 대해서 때를 만나지 못한 不遇와 高潔自守의 경우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修辭의 방식이 남명을 존숭하고 그 행적의 사실을 드러낸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대곡이나 내암 혹은 우암이 찬한 신도비명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直敍와 簡略함에 더 치중했음을 보았다. 따라서 용주의 修辭는 尊崇 내지 闡揚의 修辭와 事實의 直敍 사이를 오가는 긴장 속에 만들어진 것이며, 용주의 修辭는 오히려 史論의 褒貶에 가깝고 묘도문자의 목적인 揚善隱惡에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