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선충원은 오랜 기간 누적된 안팎의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생명을 단절시키 려 했으나 미수에 그치며, 광증과 실어의 상태를 거쳐 끝내 문학창작을 중단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분석함에 있어, 여기에 내재한 선충원의 생명의식을 5· 4 계몽사상의 자장 안에 공존한 루쉰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선충원이 좌익문단과 분기하게 된 지점을 추적하고자 했다.
본고는 1930년대에 루쉰과 취추바이가 합작한 잡문의 미학적 의미를 고찰하는 것 이다. 루쉰과 취추바이의 공동 잡문 미학은 ‘집단주의’와 ‘예술의 정치화’로 요약할 수 있다. ‘집단주의’는 ‘지식인의 대중화’로 개괄할 수 있는데, 이는 대중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지식인의 우월감을 버리고 거대한 군중의 세계에서 그들과 함께 문학과 혁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 잡문의 ‘예술의 정치화’는 ‘예술성을 띤 논설(포이통)’이라는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공동 잡문이 사회의 중대한 일상적 사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매우 적합한 문체로 개발된 것이며, 예술성에 기초한 무기로서의 글쓰기였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