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시 「이런 전사(這樣的戰士)」(1925)는 루쉰이 자신의 문제의식과 가치지향을 정 면으로 드러낸 희귀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묘비문(墓碣文)」(1925), 「그림 자의 작별(影的告別)」(1924)과 더불어 들풀(野草)(1924-1926)에 수록된 23편 가운 데 가장 난해한 시의 계열에 속하기 때문에 그 의미 파악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 니다. 물론 시가 난해하기 때문에 연구자로서 도전의 매력 또한 큰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시를 읽은 뒤에 “이런 전사”가 도대체 어떤 전사인지 짐작하 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이유는 “이런 전사”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전사의 개념에 전혀 부합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논문은 「이런 전사」가 이상한 전사, 전사 같지 않은 전사, 전사가 아닌 전사처럼 보이는 이유를 해명하고, 그 예술 적, 사상적 의의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이런 전사」는 루쉰의 사상을 특 징짓는 “시화된 철학”을 전형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대표적 작품에 속한다. “시화된 철학이라는 말은 시와 사상, 형상과 개념의 고도의 융합을 가리키는 것이다. 시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사상, 사상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시, 이런 특이한 시와 사상은 그 예술적, 미학적 특징에 대한 텍스트 분석이 그대로 사상적, 철학적 의미에 대한 해석과 직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제공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런 전사」에 대한 텍스 트 분석과 사상적 해석을 고도로 융합시키는 시도를 함으로써 기존 연구에서 간과되 거나 해석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에 대해 하나의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볼 것이다.
루쉰의 「묘비문(墓碣文)」에 대한 기존 연구가 간과했던 측면의 하나는 산문시가 지닌 문학적, 미학적 특성에 대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루쉰의 사상은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예술적이고 시적인 형상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화된 철학”이라는 용어로 루쉰의 사상을 개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시화된 철학은 동서양의 철학사 상사에서 일반적 경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있어 온 것이 사실이 다. 시화된 철학이라는 말은 시와 사상, 형상과 개념의 고도의 융합을 가리키는 것이 다. 시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사상, 사상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시, 이런 특이한 시와 사상은 그 예술적, 미학적 특징에 대한 텍스트 분석이 그대로 사상적, 철학적 의미에 대한 해석과 직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고에서는 예술과 사상의 긴밀한 결합에 주목함으로써 「묘비문」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 간과되 거나 해석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에 대해 하나의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 볼 것이다. 따라서 「묘비문」에 대한 텍스트 분석과 사상적 해석을 고도로 융합시키는 것이 이 글의 과제이다.
이 논문은 장이머우의 대표작인 영화 《인생》이 도달한 미덕을 ‘중국 현대사에 대한 준엄하고 따뜻한 통찰’이라는 측면과, 이런 통찰이 ‘중국인의 심성에 썩 어울리는 방식’으로 절묘하게 표현되었다는 두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필자는 ‘중국인의 심성에 썩 어울리는 방식’이라는 표현을 “말하고자 하는 바를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속에 담아서 넌지시 암시하기”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루쉰이 일찍이 모든 문예의 보편적 표현법이라고 정의했던 ‘광의의 상징주의’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영화 《인생》은 기구한 운명에 의해서 빚어진 혈육의 비극으로 점철된 푸구이라는 한 가족의 역사를 그려낸 것이면서, 그것이 동시에 파란만장한 정치적 운동에 의해서 빚어진 사회적 비극으로 충만한 중국민족의 현대사에 대한 서술이기도 하다. 장이모우가 그의 영화 ‘인생’에서 이러한 ‘광의의 상징주의’를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왜 사용하였는지에 대해서 이 글에서 분석하고 논의해보았다. 또한 장이머우의 영화 《인생》과 위화의 소설 《인생》을 영화와 소설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형태 사이의 관계, 영화감독 장이머우와 소설가 위화 사이의 관계, 그 공통성과 차별성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한 인간이 격동의 시대를 헤쳐 나오며 겪는 고통스러운 운명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과 영화가 서로 비슷하지만, 소설은 주인공 푸구이가 자신의 극단적으로 불운한 일생을 인생의 황혼에서 깨달음을 얻은 소박하고도 초월적인 시선으로 가뿐하게 돌아보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그 철학․사상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영화는 배경으로 설정된 기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산을 탕진하고 몰락한 푸구이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운명을 비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중국 민족 전체의 운명을 은유하여 나름의 사회역사적 지향을 분명히 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