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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충북지역 백제 초기 산성은 충북지역에 존재했던 마한 사회가 백제 중앙의 지배체제 속에 편입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충북지역 백제 초기 산성의 유형은 산성의 입지, 형태, 규모 등에 따라 5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5가지 유형 중 가장 많은 유형은 比高가 100m 이상의 높이에 위치하며, 성의 둘레가 250~500m 내외의 테뫼식 유형에 속하는 山頂式 혹은 馬鞍形의 토축 산성이다충북지역 백제 초기 산성의 특징은 3가지 점이 확인된다. 첫째는 산성을 일부 혹은 전체를 감싸듯이 조성된 外環道 모양의 성외 평탄부가 대부분 확인되고 있다. 두 번째로는 마안형에 속하는 산성은 성안에 望臺와 같은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高臺가 일반적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흙을 다져 올려 축조한 토축산성은 성벽 외측에 土堤를 만들고 토제의 내측에 잇대어 흙을 성토다짐한 축조기법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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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5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신라왕조(BC57∼AD935)는 초기의 느린 발전과정을 극복하고 독특한 성벽을 축조하는 전통을 확립하였다. 5세기 후반에 성립된 새로운 성곽축조의 기법은 이후 6세기 중엽에 낙동강 유역과 한강유역까지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보급되고, 7세기 후반에는 한반도의 서남부와 이어 북부지역의 옛 고구려 영토 남부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신라의 산성들은 대략 5세기 후반 독특한 석축 기술에 의한 가장 견고한 구조의 석축성벽의 축조 이외에도, 독특한 양식의 치성, 성벽의 중간을 통과하도록 만든 배수구조, 뿐만 아니라 성문의 바닥 높이를 높이고 출입 차단시설을 이용해 방어력을 향상시킨 독특한 현문양식을 채택하였다. 이 글에서는 현문구조에 대한 중세의 문헌기록부터 확인하기 위해 조선왕조 초기와 고려왕조의 현문과 현교 등의 자료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소급하여 고고학적 자료에 나타난 현문구조의 성문을 유형별로 구분하고, 그 분포양상을 살폈다. 신라의 석축 성벽과 함께 축조된 현문양식은 동일한 형식의 성문이 신라 영역의 전 지역에 걸쳐 선택적으로 채택되어 확산되었다. 그 시기는 6세기 말부터 7세기 전반에 이미 이웃 백제왕국의 변경에도 적용된 사례가 있다. 대략 7세기 후반 삼국통일 이후에는 더욱 분포범위가 확대되어 병합된 지역의 일부에서는 종래의 성문이 현문양식으로 개축되어 사용된 사례들이 조사되었다. 신라에서 성립된 현문양식의 성문구조는 그 변형된 모습이 공간적으로 더욱 확대된 분포로 나타난다. 시간적으로는 신라왕조에 이어 다시 지속된 중세의 고려왕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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