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정치신학 관점에서 종교는 사유화 될 수 없는 공적의 영역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세계 2차대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 종교가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관련되어 있음이 목격되었다. 또한 르네 지라드의 희생양 이론은 종교의 발생 자체에서부터 폭력성이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종교가 결코 사유화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먼저 지라드의 희생양 메커니즘은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 상호 주관성의 틀 안에서 형성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요한 벱티스트 메츠의 주관성과 종말론의 개념들은 종교의 공적인 영역으로서의 중요한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다. 만약 종교가 공적인 영역이라면, 핵심적인 문제는 종교가 사회와 세상과 과연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이다. 리바이어던 모델과 중앙집권적 권력은 폭력과 관련하여 권력의 역동성과 권위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강력한 지배적 군주를 나타낸다. 그러나 계약적 연합 모델은 비폭력, 용서, 그리고 자유 등의 가치들을 지향한다. 따라서 공적인 영역으로서의 종교는 리바이어던 모델에서 계약적 모델로 변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글의 목적은 인명진 목사의 정치참여 활동을 11번으로 구분해서 분 석했고 끝으로 그 정치참여의 신학적 근거를 검토했다. 인명진은 1970년대 산업선교를 통해 노동자 인권과 권익을 대변했고 네차례 감옥 생활을 했 다. 1980년대 인명진은 강제 추방되고 외국에서 다양한 혁명 사례를 분석 했고, 정치 혁명이 아닌 신앙에 근거한 인간 변화의 공동체 운동을 대안으 로 생각하게 됐다. 1982~84년 한국사회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은 극좌로 이념화되어 인명진의 사상은 개량주의로 비판받는다. 1986 그는 민주화운 동 국민운동 본부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지도자 김영삼과 가까운 관 계를 맺고 그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했다. 이것이 훗날 보수 정당과 친분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됐다. 김영삼 정권하에서 그는 목사의 정체성을 지키면 서 행정개혁과 KBS 이사직에 참여했다. 2006년 보수 정당 한나라당이 부 정부패로 위기에 처했을 때 윤리위원장직을 맡아 부패한 정치인을 징계하 는 개혁에 참여했으나 정치구조를 바꿀 수 없는 한계를 경험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된 이후 새누리당에서 97일 동안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탄핵을 수용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고, 헌정질서를 따라 당에서 대통 령 후보를 배출하고 그 직을 사임했다. 그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큰 비 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활동을 기독교 목회의 사회적 책임으로 여겼고, 죄인의 친구가 되어야 하며, 교회는 보수 진보를 떠나 소금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학적 주장을 했다. 한국교회사와 정치사에서 진보적 사회운 동을 했던 목사가 보수 정당을 대표해서 비상대책활동을 한 것은 아주 특 이한 정치참여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