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H. G. 언더우드에 대한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해방 이전과 이후로 나눠 연구 동향을 살펴보았다. 해방 이전에는 총 7 편의 언더우드 연구가 있었는데, 그 중 L. H. 언더우드(1918)와 백낙준 (1934)의 연구가 현재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과 연구자 다수가 언더 우드의 사역 중 교파연합운동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해방 이후에는 22권의 단행본, 86편의 학술논문, 30편의 학위논문이 발표 되었는데, 2004년 언더우드 일가의 귀국, 2010년 언더우드 자료집 완간, 2016년 언더우드 서거 100주년이 계기가 되어 언더우드 연구가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제별로는 언더우드의 생애와 초기 사역, 신학, 교육활동, 문서활동, 근대화, 한국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최근에는 신학계보다 역사학계와 한국학계에서 언더우드의 사역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이 하나의 추세이며, 신학계에서 언더우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최근 15년 간 언더우드를 주제로 삼은 학위 논문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상도 발견된다.
Arthur T. Pierson (1837-1911) and his former student Horace G. Underwood (1859-1916) at New Brunswick Theological Seminary collaborated for the missionary work in Korea. The aim of this paper is to provide a reconstructed perspective on their contacts with acquaintances, their cooperation, and their legacy that they have left. Underwood was introduced as a pioneer missionary in Korea in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MRW) to which Pierson devoted his life as a chief-editor for twenty three years. While Underwood was working as a MRW correspondent in Korea, his articles on Korea drew Pierson’s attention.
Among missionaries, W. W. White’s visit to Korea in September, 1910 triggered movements of establishing a Bible school in Seoul. The Union Bible School managed by Presbyterians and Methodists was an outcome from the movements although it did not come with permanent buildings. A.T. Pierson has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missionary work in Korea. His friends who respected and admired him in the world conveyed out a plan for a memorial of his devoted life and spirit after A.T. Pierson’s sudden death in New York in June 3, 1911. He passed away after a short six-month stay in Korea. There were two prominent leaders involved in the establishment of a memorial, which was called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School in Seoul, Korea: his eldest son D. L. Pierson in New York and Underwood in Seoul. This paper is about the historical background, process and meaning of Underwood’s involvement in it.
임간의 자연 방임 상태 하에서 인삼의 종자 및 묘삼을 직파 또는 1년근 묘삼으로 이식했을 때와 묘령별로 이식했을 때 년차별 생존율 및 생육 변화를 일반재배 인삼의 생육과 비교 관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가. 5년 동안 년차별 인삼의 생존율은 직파재배의 경우 파종 이듬해에는 침엽수림과 일반재매에서는 높았으나, 활엽수림에서는 낮았으며, 년차별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그러나 1년생 묘삼을 이식 재배한 경우는 일반재배보다 오히려 생존율이 좋았고, 이식 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어느 정도 생존율이 감소하고는 있으나, 직파재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되는 폭이 적었다. 나. 인삼 직파 및 1년근 묘삼 이식재배 시 지상부 및 지하부 생육은 임간의 직파재배, 이식재배 모두 일반재배에 비하여 생육이 크게 저조하였고, 침엽수림과 활엽수림 간에는 차이가 없었다. 다. 임간에서 인삼 묘령별 생존율은 1~6년근 모두 일반재배와 비슷하거나 우수하였지 만 4~5년근은 1~3년근에 비해 이식당년부터 생존율이 낮았고, 년차별로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라. 묘령별 지상부 및 지하부 생육은 1, 2년근의 경우 임간에서 일반재배에 비해 발육속도는 느리지만 임간재배와 일반재배 모두 생육이 양호하였으나, 3~6년근까지는 발육이 정지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고, 묘령이 많을수록 생육이 불량하였으며, 특히 일반재배에서는 임간재배보다 생육이 더욱 불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