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근대 신성로마제국, 특히 그 독일어권 지역 귀족 궁정들의 여성 음악후원, 그 후원을 통한 음악 및 음악문화 전파를 탐구한다. 탐구대상은 엘리자베트 폰 헤센-카셀, 소피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소피 샬로테 폰 하노버의 경우이다. 이들은 당대에 통상적으로 여성에게 허용된 범위를 넘어선 인문주의적, 음악적 교육 및 체험을 누렸으며, 이미 본가의 궁정 에서 자신의 연주력, 연주 기획력을 펼쳤다. 훗날에는 시가 궁정의 음악을 (재)구성하고 재건하며 관리해냈다. 본가의 음악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며 그 과업들을 수행해냈다. 그리하여 근대 이탈리아, 프랑스의 음악 양식과 극적 음악장르들, 실내악이 이동하며 정착했다. 독일 바로크 음악의 전파, 근대 독일 오페라의 발전도 구현되었다. 영국 음악이 독일 지역들로 스며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17, 18세기 독일의 음악 중심지들에 음악적, 음악문화적 정체성의 토대가 놓여졌다. 음악교육, 음악애호의 대물림을 통해 실현된 모녀 2대에 의한 2중 전파 역시 흥미롭다. 당대 궁정 음악후원의 주목적이었던 군주의 권세 과시를 벗어난, 음악에 대한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후원 행위도 특징적이다.
본 논문은 17세기 후반기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강한 음악후원자 중 한 사람이었던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의 음악후원에 내재했던 정치적 수단의 측면을 조명한다. 스웨덴의 왕좌에서 내려와 가톨릭으로 개종한, 하지만 늘 정치적 야심가였던 여왕은 로마에 입성해 아카데미를 서둘러 열고 그 아카데미의 ‘주인장’으로서 정치적 공간의 중심에 섰다. 그렇게 군주로서의 권위 및 지위를 유지하고 정당화했으며,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는데 음악을 동원했다. 따라서 여왕의 후원에 힘입은 작품들 곳곳에서는 콜론나와 카리시미의 《선지자 다니엘》에서처럼 여왕의 영광, 위대함, 고결한 신앙심 등을 드러내려 애쓴 대본가와 작곡가의 ‘필적들’이 역력하다. 《선지자 다니엘》의 대본가로 선택된 콜론나가 여왕의 퇴위와 로마로의 여정을 도운 스페인의 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오라토리오는 여왕이 스페인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정치적 권위를 되찾겠다는 또 다른 메시지였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유럽은 프랑스, 영국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패러 다임이 등장했다. 1701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프로이센 왕국을 건설하고 프리드리히 1세 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프리드리히 2세는 프로이센을 유럽의 강국으로 만들었다. 베를린 궁정의 음악은 각 왕들의 정치관과 국가의 경제, 그리고 성장기에 경험한 심리적 영향으로 다양하게 변화 발전했다. 그중 음악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 한 사람은 프리드리히 2세였다. 그의 통치아래 프로이센은 최강국으로 성장했고 문화가 크 게 발달하였다. 음악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국제정치가 안정되고, 국가 경제가 부흥해야 함을 프로이센의 음악후원의 변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