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이슬람 종교교육기관은 경학원과 청진사 내에 설치된 경당이 있다. 현재 전국에 경학원은 총 10개가 있고, 경당의 경우는 구체적인 수치를 알 수 없으나, 중 국의 각 지역에 약 3만여 개의 청진사가 있으니, 그에 버금가는 숫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경학원과 경당이 모두 이슬람 종교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 관이지만 교육목표가 다르고, 그로 인해 문화적, 종교적 소양이 다른 종교인이 배출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중국 이슬람교의 종교교역자 양성기관인 경당과 경학원 교육의 교과과정과 특징을 살펴보고, 종교중국화정책의 시행에 발맞추어 개 정된 일련의 판법들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종교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 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바티칸과의 단절이 오래되었지만 중국의 천주교는 기본적으로 가톨릭 보세(普世) 교회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때문에 중국 천주교의 사제양성 교육과정 또한 세계 각 국에서 보편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교육과정과 비교했을 때 큰 차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중국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다음과 같은 특징 을 지니고 있다. 첫째, 종교학교의 설립과정과 운영에 있어 정부기관의 개입이 광범 위하고 영향력 또한 크다. 둘째, 교육과정은 보편적 교육과정을 지키고 있으나, 중국 정부의 종교중국화 정책에 따라 중국 철학사상 방면의 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결론 적으로, 중국 천주교 종교교육이 지닌 특징은 교육기관의 설립에서 교육내용에 이르 기까지 사회주의적 종교정책이 관철되도록 다양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장치가 어떠한 실질적 효력을 발생할 지에 대해서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올해 발표된 修訂 宗敎事務條例에서는 종교학원에 관한 조항이 하나의 장으로 따로 취 급될 만큼 중요한 사안으로 다루어 졌다. 그만큼 종교학교의 설립과 운영문제는 중국 정부의 종교 업무와 종교 정책분야에서 중요한 사안이 된다. 중국에서 종교학교는 종교의 보장과 통 제를 아우르는 상징적 장치를 갖고 있다. 현재 중국의 종교학교는 수 적인 면에서도 점차 늘 어나고 있으며, 교육체계와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특히 佛學院은 전 국적으로 많은 숫자가 설립되어 중국 불교문화의 전통과 명성을 잇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 학열의 풍조 속에 道敎學院들이 속속 설립되어 종교학교의 구성이 한층 다양해 졌다. 이런 종교학교의 활성화는 종교의 자율성과 확산되고 있는 종교의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지 만, 현실적으로 5대 종교의 사정에 따라 종교를 구속하는 통제 장치로 종교학교가 활용되기 도 한다. 예를 들면 藏傳佛敎의 佛學院, 일부 이슬람 經學院, 기독교계열의 종교학교가 이에 해당한다.
어느 나라에서든 국민들이 진정 잘 살 수 있으려면 물질적 복지뿐 아니라 ‘영적 복지’가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국민적 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움’의 결여로 인해 사회적 문제들이 제 기되자 한국 사회는 ‘인성교육’을 강조하게 되었는데, 종교교육은 인성교육의 매우 중심적 내용과 연관된다. 한국의 종교 현실은 무엇보다도 다종교 상황으로 특징 지워진다. 따라서 개개인이 자신의 종교에 대해 건전한 이해를 가지는 것 은 물론, 타종교인과의 공존이 종교교육에서 매우 강조된다. 이는 ‘인성교육’이 자신의 인간다운 본성을 찾아가고 또 타인의 본성을 배려하는 데 초점을 맞추 는 것과 맥을 함께 한다. 전통적 성년의례들이 단순히 육체적 성숙뿐 아니라 자 신이 포함된 문화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해내고 공동체의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 는 길을 알려주는 것은 인성교육으로서 종교교육의 역할을 보여준다. 인류는 윤 리적으로 진화해왔다. 즉 점점 더 폭 넓게 주변 존재들에 동류의식을 개발해왔 다. 더 열린 종교관을 가르치는 것은 진정한 ‘인성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 논문은 윤치호가 1885년부터 1888년까지 중국 상해에 머물며 남감리회 미션스쿨인 중서서원에서 수학하던 시기를 그 연구대상으로 삼아, 윤치호가 중서서원에서 받은 근대교육과 종교교육에 대해 살펴보면서, 미션스쿨이 윤치호의 개종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고찰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에 대해 본 논문은 첫째, 윤치호가 상해에서 수강한 과목들을 당시 중서 서원의 8년 학제에 포함된 교과목들과 비교하면서 윤치호가 그 중 3-6학년 도 과정을 수학한 것을 밝혔으며, 둘째, 중서서원의 종교교육을 검토하면서 중서서원은 세속학교가 아닌 전형적인 미션스쿨로서, 윤치호도 그가 받은 모든 수업에서 성경이 교재로 사용되었고 매일 두 차례씩 종교예식을 갖고 토요일에는 성경강독 수업을 받았음을 살펴보았다. 셋째, 선행연구에서와 달리 윤치호가 처음 예배당에 간 것은 1885년 2월 15일이 아닌 2월 8일이었으며 교회에 데려간 사람은 알렌이 아닌 로얄 선교사였음을 밝혔고, 이를 통해 윤치호가 중서서원에 입학한 직후부터 선교사들의 특별한 선교적 관심을 받았을 가능성이 컸음을 추론하였다. 결국, 윤치호는 윤리적 종교에 대한 개인적 관심 및 근대 사상에 대한 관심에서 스스로 기독교 에 접근하기에 앞서, 이미 미션스쿨의 종교적 학풍과 선교사들의 전략적 전도 과정을 통해 이미 기독교적 환경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