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500년 왕위에 오른 지증왕은 왕의 칭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바꾸고, 지방 행정구역을 주 · 군 체제로 정비하며, 국호를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의 ‘신라(新羅)’로 정했다. 망라사방이란 신라의 국력을 사방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신라는 망라사방의 국가비전을 가지고 사방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특히 동해안으로 진출하면서 우산국과 충돌하였으나, 512년 우산국을 복속함으로서 동해의 제해 권을 확립하게 된다. 그러한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왜 관계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사부(異斯夫)의 우산국 복속 기사를 가지고, ‘한국의 독도영유 권에 대한 역사적 권원(歷史的 權原)’을 주장한다. 역사적 권원이란 역사적으로 권리의 원천이 된다는 의미이다. 즉 이사부가 우산국을 신라의 영토에 편입했다는 것 (fact)이 한국영토라는 권리주장의 시작이며 증거라는 것이다. 우산국 복속에 성공한 이사부는 그 후 병부령이 되어 한강유역과 대가야 정벌을 주도했고, 국사를 편찬하는 등의 과업을 수행하며, 신라가 사방으로 발전하여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데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결론적으로 이사부는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 인물이며, 남해의 이순신, 서해의 장보고와 함께 동해의 이사부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국의 3대 해양영웅이다.
국가의 영토는 ‘고유영토’(inherent territory)와 ‘취득영토’(acquired territory)로 구분된다. 전자는 국가가 국가로써 성립할 당시에 그 국가의 성립의 기초인 영토를 말하며, 후자는 국가가 국가로써 성립한 이후에 선점 할량-시효 정복 등에 의해 취득한 영토를 말한다. 국제판례는 본원적 권원(original title), 고전적 권원(ancient title), 봉건적 권원 (fend이 title) 등에 기초한 영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고유영토’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 아니한다.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도 각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고유영토’라는 표현은 외교 문서상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독도는 한국의 고유영토인가? 아니면 독도는 한국의 취득영토인가? 한국의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독도는 신라 지증왕 13년(512년)에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하여 취득한 고유영토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자기모순적 표현이다. 이 자기모순적 표현은 한국이사부학회가 정리 해결하여야 할 과제 이다. 한국이사부학회는 이 첫째의 과제 이외에 이사부의 우산국 정복이 합법적이냐의 둘째 과제, 우산국 정복에 의한 역사적 권원은 언제 현대국제법상 권원으로 대체되었느냐의 셋째 과제, 그리고 역사적 권원이 대체된 이후 역사적 권원은 무의미한 것으로 되었느냐의 넷째 과제를 해결하여야 할 역사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 이 과제를 한국이사부학회가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의 적극적 지원이 요청된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역사적 근거로,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512년 사료인 ‘이사부의 우산국 복속’을 가지고, ‘독도영유권에 대한 歷史的 權原’이라고 한다. 權原이란 권리의 원천이 된다는 말이다. 이사부의 우산국 복속은 지증왕 대에 신라가 국호를 제정하고 국왕호를 칭하는 등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동해안으로 진출하여 북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즉 신라는 실직주(삼척)와 하슬라주(강릉)를 장악한 후, 우산국을 복속하고 이어 비열흘주(안변)와 달 흘주(고성) 설치하고 진흥왕순수비를 세우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아 나갔다. 그리고 우신국 복속은 고구려와 대립적인 상황에서 고구려와 왜와의 연대나 우산국과 대마도와의 교류를 차단하는 등 신라의 배후를 안전하게 위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신라의 우산국을 복속은 동해의 제해권 확립이라는 결과를 도출해 내었고, 그러 한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왜 관계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왜의 신라 침입기사는 기원 전후부터 총 34회인데, 그 가운데 33회가 500년까지 나타나고 우산국 복속이후 231년간은 1번밖에 없었다. 그것은 우산국 복속에 의해 동해의 제해권을 신라가 장악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라의 우산국 복속은 신라가 동해의 제해권을 확립한 역사적인 산물이며 독도를 우리의 영토에 편입했다는 확실한 역사적 증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