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시대에 개혁가들이 선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적인 선교를 거의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 본질과 실체에 대해서 심각한 오해를 받은 나머지 한 때 이단적 취급을 받았고 급진적 종교개혁의 일원으로 간주되었던 재세례파는 오히려 종교개혁 시대에 선교의 선봉장 역할을 감당하였다. 재세례파는 종교 개혁가들이 교회 개혁에 몰두한 나머지 선교 사역의 실천적인 영역이 미진했을 때에, 재세례파는 모든 신자가 다 선교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선교 사역에 매진하였다. 그들은 말로만 복음을 전파할 뿐만 아니라 제자도의 실천을 통한 신실한 섬김의 삶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리하여 당대에 가장 많은 선교사를 배출하였으며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친 것 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개종자를 얻었다. 재세례파는 개신교 선교의 최초의 개척자였다.
재세례파의 이러한 놀랄만한 선교적 사역의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선교의 역사에서는 재세례파의 선교가 정식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금세기에 들어서 재세례파에 대한 연구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재세례파의 본질이 산상수훈을 통한 제자도의 실천과 성경적인 교회의 본질인 공동체성의 회복에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마당에 16세기 종교개혁시대의 선교에 선봉에 섰던 재세례파의 선교적 교회의 실체와 의미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종교개혁 시대의 선교에 대한 균형 잡힌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 하나는 기독교역사에서 아나뱁티스트들의 역사적 위치와 그들 입장의 정당성 확보는 ‘평화와 정의’의 실천력에서 판가름 났다는 전제 아래 그들의 평화 담론을 논구해 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나뱁티스트들의 견해들이 ‘에큐메니칼 의제’로써 얼마나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종교개혁 주류세력의 담론과 비교를 통해 검토해 보려한다. 지금까지 기독교 주류의 아나뱁티스트들에 대한 담론은 대부분 부정적인 견해가 주를 이루었다. 그들은 교회사의 각주로 취급받아 왔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벤더학파(the Bender school)를 비롯하여 아나뱁티스트 그룹이 배출한 신학자들에 의해 아나뱁티스트 초기 운동과 그 지도자들에 관한 역사적 자료들이 발굴되고 그 운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쏟아지면서 지금까지의 부정적인 시각이 교정되었다. 오히려 세속주의화 되어버린 오늘의 교회 현실에서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하나의 대안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을 정도다. 16세기 종교개혁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종교개혁세력의 엄연한 하나의 축으로 역할을 해 오고 있으며 “역사적 평화교회”로 자리매김하였다. 따라서 아나뱁티스트의 평화 담론을 탐구하는 작업은 신학적인 오류나 사회적인 일탈 죄가 있는 것으로 비난 받았던 그들의 견해가 무엇인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요 또 그들의 사상 속에는 새로운 영감과 통찰력을 배울 수 있는 많은 요소와 가치들이 내포되어 있음을 전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