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f castles and the navy ruins in Samchuck, South Korea
전근대 시대의 군사활동이나 방어에 있어서 성곽이라고 하는 존재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대부분의 전투가 攻城이나 守城戰이라는 것에서도 그러한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전쟁이 상시화된 삼국시대의 경우 수많은 성곽이 건설되고 또 폐기되었다. 삼척지역에 소재하는 성곽유적에 대한 조사나 연구가 있었으나 아직 명확하게 성격이 밝혀지지 않은 유적도 있고 또 문헌기록에는 나타나지만 그 위치조차 전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본 연구에서는 여러 史書에 기록되어 있거나 유적으로 남아있는 삼척지역의 성곽과 수군 유적에 대한 역사고고학적 연구를 통하여 삼국 시대 신라의 여러 군사적 활동과 관련하여 그러한 유적들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연구하였다. 아직 고고학적 조사자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삼척지역에 소재하는 10개의 城址 가운데 오화리산성을 비롯하여 갈야산성, 옥원성, 호산리성지, 광태리고성, 맹방고성 정도는 삼국시대에 이미 성터로 자리잡 았던 곳이라 여겨지며 결과적으로 신라의 북방 진출이나 지방통치체제 정비와 관련된 유적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오화리산성은 신라의 삼척 점거 초기에 조성된 산성이며 신라의 동해안 지역 군사거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고 여겨지며, 古代 삼척군의 領縣과 관련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호산리성지(혹은 옥원성지), 광태리고성(혹은 맹방고성) 은 小據點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갈야산성 성벽하부에서 신라고분이 발견된 점에서 볼 때 갈야산성도 신라가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그 시기는 오화리산성 보다는 후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신라는 일찍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선박 운영 제도를 확립하였고, ‘船府’라는 관 청을 두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상당한 규모의 수군과 병선제조 능력, 운용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마 신라의 북상과 함께 동해안 곳곳의 주요 요충지가 신라 선박의 기항지로 활용되었을 것이며, 그 가운데 삼척의 오십천 하구 와 오분항은 신라의 군사거점과 연계하여 가장 중요한 기항지였다고 여겨진다. 異斯夫가 우산국 정벌을 앞두고 하슬라군주로 임명된 사실을 중시하여 이사부 가 통제하던 신라군이 모두 하슬라(강릉) 지역으로 거점을 옮겨가서 우산국 정벌에 임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나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명확한 史料도 없지만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본래 하슬라(강릉)지역을 포함한 신라의 북부 동해안 지역이 ‘실직주’라는 명칭하에 관리되고 있었던 것을 州의 명칭과 그 중심지를 하슬라 지역으로 바꾸어 정한 것에 불과하다. 이미 여러 해 동안 실직군주를 지내면서 건설해 놓은 군사거점을 옮긴다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하슬라주를 설치하였으면서도 지방 주둔 신라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군단인 停(悉直停)을 곧바로 하슬라로 옮기지 않고 하서정을 무열왕 때에 와서야 비로소 강릉으로 옮겨 설치한 것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삼척에 상당기간 주둔하며 육성한 수군을 우산국에 대한 군사작전을 목전에 두고 군주의 이동과 함께 완전히 이전하여 간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구나 우산국으로 향하기 훨씬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는 삼척지역을 완전히 배제하고 단지 군주 명칭이 바뀌었다고 옮겨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볼 때 합리적인 해석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In military and defense activities, castle was a matter of great importance in pre-modern period. Most of the fighting took place while attacking or defending the castle.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a number of castles were built and demolished because of the frequent wars. Research or studies of the castle ruins had been performed before in Samchuck, South Korea. Even so, information of some castles is still unknown though the castle is listed on documents. In this study, archaeological and historical research was conducted mainly the castles and the navy ruins in Samchuck. The study focused on finding the meaning of those ruins related to several military activities of Shilla, one of the Kingdom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Even though archaeological research materials are not enough, some castles are considered as the site of castle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Among the ten places of fortress in Samchuck area, some castles –including Ohhwa-ri fortress, Galya fortress, Okwon castle, Hosan-ri castle, Gwangtae-ri castle and Maengbang castle- are regarded as remains associated with Shilla’s northern advance or maintenance of the local government system. Especially, Ohhwa-ri fortress was built by Shilla when sill occupied Samchuck for the first time. Ohhwa-ri fortress is considered to be the most important place among Shilla’s military base in east coast. It is determined that Hosan-ri castle(or Okwon castle) and Gwangtae-ri castle(or Maengbang castle) belonged to the prefecture of ancient Samchuck. Galya fortress seemed to be used by Shilla because Shilla tombs had been found at the lower wall of Galya fortress. The timing of Galya fortress is supposed to be later than Ohhwa-ri fortress. Shilla established early ships operating system at the national level and placed the government office called ‘Sunbu’. Based on that, Shilla had the navy of respectable scale, manufacturing capability and management skills for the military vessel. With Shilla’s northern advance, the east coast of the main hub would be utilized for the port of call for Shilla ships. In particular, relating to the military base of Shilla, the mouth of Ohsip-stream and Ohbun port were crucial ports of call. Because Isabu was appointed Haseulra monarch before the expedition to Usan-guk, many scholars understand that Shilla military went on a conquest of Usan-guk by moving the base to Haseulra(now, Gangneung). However, the historical record is not clear about this issue. Therefore, searching for rational decision is needed in many ways with considering the situation at the time of that period. Originally, the north east coast region of Shilla including Haseulra was managed under the name of ‘Siljikju’. The centers were merely set to change Haseulra area. Because Isabu had been building a military base in Siljikju having worked as the monarch of Siljikju for several years, moving base must have been difficult for Isabu. When we consider the case of Haseojeong, the most important local military forces of Shilla, the stay of the Shilla army at the first base can be clear. Even though Haseulra state had been settled, Haseojeong did not be moved to Haseulra immediately. Haseojeong moved to Gangneung(before, Haseulra) in the period of Muyeol King at last. Moreover, Samchuck area had the advantage to head for Usan-guk. Therefore, it is far-fetched if Isabu and his army left the established military base staring the expedition to Usan-g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