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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文字學을 둘러싼 논점들 -正祖의 文字策과 이에 대한 對策을 중심으로- KCI 등재

Issues Surrounding Late 18th Century Graphonomy -Focusing on Munjachaek of Jeongjo and its Daechaek-

18세기 후반 문자학을 둘러싼 논점들 - 정조의 문자책과 이에 대한 대책을 중심으로-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279983
  • DOIhttps://doi.org/10.14381/NMH.2013.09.39.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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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1792년 정조는『奎章全韻』을 편찬한 후 각신 및 초계문신, 검서관을 포함한 9명의 신하들에게 문자에 관한 策文을 지어 올리게 하였다. 이에 文字策文 9편이 제출되었으며 그 중 현재 남아있는 글은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윤행임, 서영보의 대책이다. 문자책문의 집필배경이 된『규장전운』의 편집 방향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음과 조선음을 구별하여 각각의 규범음을 밝히는 것, 둘째, 俗音을 제거하고 압운 체계를 개정해 전아한 문사 창작의 지침을 마련하는 것, 셋째, 古音의 확정을 통해 古經을 읽는 데 도움이 되게 했다는 점이다. 6편의 문자책문에서 발견되는 공통의 문제의식들은 위 세 가지 목적에서 배태된 것으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도출된 상이한 견해들이 이 시기 문자학의 논점들을 형성하고 있다.첫 번째 논점은 글자와 소리 혹은 말의 관계 문제이다. 박제가는 문자에서 聲의 요소가 중요함을 일관되게 서술하였으나 중국어 사용 문제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행임은 글자와 소리가 일치하는 중국어를 사용하여 중화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유득공은 천하만국에 각자의 글자가 있다는 논의를 통해 기존의 華夷觀을 뛰어넘는 사고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논점은 문자학의 효용에 관한 것이다. 이서구는 이 시기 六經의 이해를 위해 문자학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이와 달리 이덕무는 실제적인 名物에 대한 지식을 쌓는 데에 문자학의 효용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세 번째 논점은 字形의 변천과 異體字 문제이다. 유득공과 이서구, 이덕무는 모두 俗字, 訛字, 조선식 한자 등의 사용을 일절 금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덕무는 시대에 따른 자형의 변천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강하게 피력하였는데, 이와 달리 서영보는 자형의 변천을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았다. 이 때문인지 서영보는 이체자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다만 국가 문서에 글자를 잘못 쓰는 일을 엄히 단속해야 한다고만 하였다.이상에서 분석한 문제의식들은 18세기 후반의 전반적인 문자학 연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볼 때 각각의 의의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또한 이 논점들이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는지, 나아가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문자책문을 작성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당시의 학파나 가문, 당파 등에 따라 언어문자관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연구 역시 추가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After compiling Kyujangjeonwoon in 1792, Jeongjo ordered his 9 retainers to write and submit Chaekmuns about character. 9 Munjachaeks were submitted and currently existing Chaekmuns are the those of Lee Duk Mu, Park Je Ga, You Deuk Gong, Lee Seo Gu, Yoon Haeng Im, Seo Young Bo. In this study, the aiming objectives of Gyujangjeonwoon which became as writing backgrounds of Chaekmun were analyzed and subsequently, three related critical minds were suggested. It is the opinion of the author that different opinions which were deducted from those critical minds formed the issues in late 18th century graphonomy. First point i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character and sound. Park Je Ga consistently described the importance of the tones in characters, but he didn’t mention the use of Chinese language. However, Yoon Haeng Im insisted that they should be close to Sinocentralization by using Chinese language which coincides with the character and sound. On the other hand, You Deuk Gong showed his thought which surpassed the existing Sinocentrism through his argument that there are individual characters in all countries on earth. Second point is about the effects of graphonomy. Lee Seo Gu emphasized the necessity of the graphonomy to understand the six confucian scriptures at those times. On the other hand, Lee Duk Mu emphasized that there was the effect of graphonomy in acquiring the knowledge about the physical objects. Third point is about the change of character type and problem of different type character. You Deuk Gong, Lee Seo Gu and Lee Duk Mu insisted completely prohibit using simplified Chinese character, misformed characters, Joseon type Chinese characters at all. Additionally, Lee Duk Mu strongly expressed his negative opinion about the change of character type according to the times. On the other hand, Seo Young Bo thought the change of the character types to be natural according to the times. Based on this analysis, it is necessary to study how these points were organized and whether these points were developed as new critical minds as entering the 19th century. Additionally further studies should be conducted to identify the aspects about the sense of language and character by focusing on the characters who wrote the Munjachaekmun and according to schools, families and parties at those times.

저자
  • 장진엽(연세대학교) | Jang Jin Y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