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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대학 교양한문 수업에서의 ‘능동적 고전 읽기’ 지도 사례를 검토한 글이다. 검토 대상인 보고서 과제는 한국의 한문 산문을 한 편 선택하여 원문을 해석하고 비평 및 감상을 작성하는 것이다. 먼저 대상 작품 선택 현황을 목록으로 제시하고, 학생들의 작품 선택 기준을 분석하였다. 이어서 비평과 감상의 내용을 네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첫째는 작품 및 관련 주제에 대한 재해석이다. 둘째는 작성자의 삶과 연계 지은 감상이다. 셋째는 현대 사회의 문제와 접목하여 논하는 방식이다. 넷째는 한문 문장의 미감과 번역 문제에 초점을 맞춘 감상이다. 마지막으로 한문 고전 읽기 지도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덧붙였다. 먼저 원문 독해를 포함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원문 독해의 과정에서 고전의 내용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학생들 스스로 작품을 선 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참고문헌이나 작품 목록을 제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비평과 감상은 자유롭게 작성하되, 다양한 의견을 논리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학생들 은 작품 선택, 원문 독해, 비평과 감상의 작성 과정에서 ‘한문 독해’와 ‘고전 읽기’의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의 고전 독서를 추동하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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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기해통신사 사행록인 『扶桑紀行』의 내용상의 특징 및 저자 鄭后僑의 일본 인식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후교는 숙종대 김창흡, 신정하를 비롯한 노론 계열 문인들 사이에서 뛰어난 시인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그는 1719년 부사 황선의 자제 군관으로 사행에 참여하였으며 제술관 및 서기들과 함께 일본인들과의 시문창화를 담당하였다. 그에게 일본 사행은 詩材를 제공해주는 일종의 유람이었으며, 이에 따라 그의 사행록 역시 견문이나 정보 전달보다 는 유람의 체험을 곡진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상의 특징으로는 감각적인 풍광 묘사와 독특한 유람 체험의 전달을 위주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일본 문사들과의 필담 교류를 일기와 시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고래사냥이나 시문창화의 현장 등 다른 사행록에서 발견되지 않는 다채로운 경험을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한편 『부상기행』에 나타나는 저자의 일본 인식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일본의 법도와 국력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감성적인 공감을 통해 일본인의 성품과 습속에 대해 재평가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화이론적 사고의 변용을 통해 일본 문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조선 지식인이 기존 관념의 전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그것의 변용, 혹은 우회적 방식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창출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로운 사례이다. 이상 『부상기행』에 대한 검토를 통해 사행록 연구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분석의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시기 및 다른 시기의 일본 관련 기록과의 비교를 통해 본고의 논의를 더욱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3.
        2014.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19세기 조선의 詩壇 및 淸朝와의 교유사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했던 작가인 홍현주 작품세계의 일단을 살펴보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의 시에 나타나는 불교적 사유의 흐름을 검토하고자 한다. 청년기의 홍현주는 부마라는 개인적 처지로 인한 심리적 갈등을 운명에 대한 관조라는 방식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다. 또한 申緯와의 교유는 그가 불교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다. 홍현주는 30대에 幻에 대한 관심과 깨달음을 통해 불교의 교리에 접근해 갔다. 이것은 인생무상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졌고, 그는 空 사상을 통해 이러한 무상감을 극복하고자 했다. 40대에는 공 사상을 체화하여 그러한 法悅이 형상화된 작품들을 다수 창작했다. 50대 이후, 특히 60대의 시에서는 空과 色의 경계를 넘어 자신이 있는 곳을 바로 서방정토로 여기는 자득의 경지로 나아갔음이 발견된다. 요컨대 홍현주 시 세계의 한 특징으로서 젊은 시절 싹튼 심적 갈등을 불교적 깨달음을 통해 극복하고 자족적인 삶의 태도를 획득해가는 과정이 나타난다는 점을 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찰은 홍현주 작품세계의 주요한 국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19세기 경화세족이 불교를 수용하고 작품 창작에 활용하는 방식의 하나를 보여준다.
        4.
        2013.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792년 정조는『奎章全韻』을 편찬한 후 각신 및 초계문신, 검서관을 포함한 9명의 신하들에게 문자에 관한 策文을 지어 올리게 하였다. 이에 文字策文 9편이 제출되었으며 그 중 현재 남아있는 글은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윤행임, 서영보의 대책이다. 문자책문의 집필배경이 된『규장전운』의 편집 방향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음과 조선음을 구별하여 각각의 규범음을 밝히는 것, 둘째, 俗音을 제거하고 압운 체계를 개정해 전아한 문사 창작의 지침을 마련하는 것, 셋째, 古音의 확정을 통해 古經을 읽는 데 도움이 되게 했다는 점이다. 6편의 문자책문에서 발견되는 공통의 문제의식들은 위 세 가지 목적에서 배태된 것으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도출된 상이한 견해들이 이 시기 문자학의 논점들을 형성하고 있다.첫 번째 논점은 글자와 소리 혹은 말의 관계 문제이다. 박제가는 문자에서 聲의 요소가 중요함을 일관되게 서술하였으나 중국어 사용 문제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행임은 글자와 소리가 일치하는 중국어를 사용하여 중화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유득공은 천하만국에 각자의 글자가 있다는 논의를 통해 기존의 華夷觀을 뛰어넘는 사고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논점은 문자학의 효용에 관한 것이다. 이서구는 이 시기 六經의 이해를 위해 문자학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이와 달리 이덕무는 실제적인 名物에 대한 지식을 쌓는 데에 문자학의 효용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세 번째 논점은 字形의 변천과 異體字 문제이다. 유득공과 이서구, 이덕무는 모두 俗字, 訛字, 조선식 한자 등의 사용을 일절 금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덕무는 시대에 따른 자형의 변천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강하게 피력하였는데, 이와 달리 서영보는 자형의 변천을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았다. 이 때문인지 서영보는 이체자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다만 국가 문서에 글자를 잘못 쓰는 일을 엄히 단속해야 한다고만 하였다.이상에서 분석한 문제의식들은 18세기 후반의 전반적인 문자학 연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볼 때 각각의 의의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또한 이 논점들이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는지, 나아가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문자책문을 작성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당시의 학파나 가문, 당파 등에 따라 언어문자관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연구 역시 추가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