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22대 총선에 있어 제3지대 정당인 녹색정의당과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조국혁신당의 공천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3 지대 정당인 새로운미래와 개혁신당은 총선 90일전에 창당되었고, 조국 혁신당은 총선을 한 달 정도 남겨놓고 창당해 비례대표국회의원만 추천 하였다. 특히 제3지대 정당은 거대 양당제도의 구축으로 인해 지역구 국 회의원의 당선 가능성이 낮아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확보에 초점을 맞 추고 있다. 그리고 제3지대 정당의 후보공천 규칙은 유사했으며, 조국혁 신당은 3월3일 창당을 하면서 구체적인 후보자격심사에 대한 규정을 내 놓지는 않았다. 이러한 공천룰에 따라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의 국회입성에 따라 제3지대 정당의 역할론이 대두될 것이다.
본 연구는 왜 10·26사건이 일어났을까? 그리고 10·26사건은 18년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겼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한국정치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긍정적으로 평가받 은 박정희 대통령이 왜 10·26사건에 직면했는가를 재조명하고자 했다. 이 연구는 박정희의 심리적 요인과 박정희와 김재규 간의 관계 변화뿐만 아니라 김재규의 성격과 태도 변화를 통해 10·26사건을 재해석했다. 결 론적으로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고 박정희는 심리적 불안감으로 인해 권 력에 대한 강한 애착이 생겨났다. 그리고 박정희와 김재규가 정치적사건 에 대한 접근과 인식에 있어 차이로 인해 10·26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10·26사건이 우발적으로 발생했다고 평가되지만, 박정희의 18년 독재정권을 붕괴시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한국의 민 주화를 앞당기는데 실패하고, 더욱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는 결 과를 만들었다.
본 연구의 목적은 국민들의 지방자치제도와 지방분권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분석하고, 지방분권으로 나아가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연구 결과, 첫째, 국민들의 지방분권을 명문화한 헌법 개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둘째, 국민의 지방자치제도에 대해 만족도는 45% 정도였다. 그 리고 지방자치제도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55%~60%정도를 넘었다. 반 면 서울·수도권이 타 지역보다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관심이나 인지도가 낮았다. 셋째, 지방분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인식이 50%가 넘었다. 하 지만 서울·수도권지역에서 지방분권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 위기인 사회적 양극화와 지방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중앙 정부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지방분권을 명문화한 헌법 을 개정하고, 정치, 행정에서 지방분권이 실현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1987년 6월 항쟁의 발생원인과 역사적 의미 그리고 6월 항 쟁에서 대학생의 역할을 분석하였다. 6월 항쟁은 한국정치에서 장기간 지속된 군부 권위주의 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하게 만든 역사적 사 건이며, 제도적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이러한 6월 항쟁은 국민운동본부 의 주도로 시작된 비폭력 항쟁이었으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혁명 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시민의식과 덕성을 갖춘 근대적 시민이 출현했고, 학생과 시민들뿐만 아니라 ‘넥타이 부대’라는 새로운 집단이 등장하였다. 무엇보다도 아래로부터 형성된 자발적 시민대회가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권위주의체제 내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가져왔다. 특히 6월 항 쟁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 있어 대학생은 핵심적인 주체였다. 또한 지방의 대학생들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가장 주요한 세력이었고 비 폭력을 주장하고 실천하려고 지성인이었다. 따라서 대학생들은 1987년 6 월 항쟁 이야기를 기록하고,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본 연구는 부·울·경의 전국동시지방선거 중 시·도지사 선거결과를 통해 보수정당으로의 회귀 가능성과 향후 선거 결과에 대한 전망을 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다. 실제로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산은 국민의힘이 더불 어민주당을 7:1로 이겼고, 울산에서는 국민의힘이 6:1로 우세했다. 그리 고 경남에서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전적은 6:2의 결과를 보였다. 이것은 지역주의와 지연주의가 부·울·경에서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 을 보여준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전국에서 승리하 였고, 특히 부·울·경 지역에서는 양당 후보 간 20%~35%p의 큰 격차를 보였다. 그리고 부·울·경의 역대선거 결과를 비교분석해 볼 때, “유권자 의 선택이 중요하며, 그 점에서 부·울·경은 보수정당 지지로 선회했고, 이 흐름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탄 핵이라는 큰 변수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전국적 인 승리를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슈에 따라 유권자의 선택이 언 제든 변화할 수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구술 자료와 문헌 조사 등의 방법을 통해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밝히고, 부마 민주항쟁에 대한 과제를 제안하는데 있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에서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에서 지속된 유신체제에 대한 민주화운 동이었다. 특히 부마민주항쟁은 민중이 저항의 주체로 등장해 18년간 존속했던 박정희 독재체제를 붕괴시켰다. 그리고 부마민주항쟁은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었다. 즉, 부마민 주항쟁은 군부독재의 사슬을 끊어내고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이어질 수 있게 한 시발점이자 원동력이었다. 따라서 부마민주항쟁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제대로 기억되고, 기념되어져야 한다. 둘째,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부마민주항쟁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부마민 주항쟁 당시 언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고, 정확한 진실 을 보도해야 한다. 다섯째,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들의 명예회복과 그에 상응한 유공자관련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여섯째,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자료가 지속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일곱째,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인식을 고취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본 연구는 제1차에서 5차까지 남북정상회담의 배경, 성과와 한계점을 비교분석한다. 그리고 남북공동선언문의 내용을 비교분석하고 향후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전망해 본다.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정상들의 통일에 대 한 강한 의지가 표현된 것이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있 다. 이러한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는 북한의 경제적 위기와 남북 당사자 간의 적극적인 화해 노력 등이 작용한 결과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 화해 협력 분위기 형성과 남북공동선언문 합의를 도출했지만, 북 한의 군사적 위협(핵위협)과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따라 합의된 사안들이 지속적으로 실천되지 못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공동선 언한 <6·15공동선언>, <10·4공동선언>,<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 등 은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을 이끌어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6․ 15공동선언은 포괄적이고 선언적이며 규범적 성격이었다면, 10․4 공동선 언을 비롯해 판문점선언 그리고 평양공동선언은 남북문제에 있어 구체적 이고 실천적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문의 이행 은 남북평화 및 남북발전과 지역발전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도출해 낼 것 이다. 따라서 향후 6차 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 추진을 위해 다섯 가지 의 과제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