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서성 동관세촌벽화묘는 남북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당대로 이어질 특징을 예시하는 수대벽화묘이다. 세촌묘는 장사파묘도전실묘로서 묘실과 묘도에 벽화가 그려졌으며 묘실 내에서 화려한 선각이 새겨진 석곽이 발견되었다. 묘도를 제외하고 묘실 내의 벽화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묘도의 의장행렬도 벽화는 북제에서 시작한 묘도의 화려한 의장행렬도의 전통을 이으면서 이후에 당대 묘장 벽화의 중요 주제가 되는 의장행렬도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묘실 내에서 발견된 선각 석관은 형태가 북위의 석관의 형태를 계승한 동시에, 북위 낙양지역 석관의 주제인 승선도상을 석관의 좌우면에 묘사하여 수대 묘장미술의 복고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세촌묘 석관의 덮개의 서수도상은 위진남북조시기에 발달한 도교와 불 교의 상서도상을 중앙아시아계의 사방연속귀갑연주문과 결합하였다. 석관의 앞면과 뒷면에 새겨진 현무와 주작 도상은 북위시기의 석관의 도상을 계승하면서도 북제·북주시기에 새롭게 출현한 불교 또는 중앙아시아계 인물 도상을 추가하였고, 통일을 이룬 자부심을 반영하듯 더욱 더 세련되고 자신감 넘치는 필선으로 제작하였다. 동관세촌수묘는 묘의 구조와 벽화와 선각 장식에 있어서 북위부터 북주·북제까지 북조 묘장의 특징을 모두 흡수하였으면서 수대에 이르러 대통합을 이룬 문화적 자신감을 보여주는 수대 묘장미술을 대표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동북지방의 요양벽화묘에서부터 발굴이 시작된 한대 벽화묘는 섬서, 하남, 하 북 등에서 100여기에 가까운 수가 발굴되었다. 한대 벽화묘의 발달에서 동한 후기에는 동 북, 북방, 하서를 잇는 북부지역이 벽화묘 축조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이들 북부지역 동한 벽화묘들은 한대 고분벽화 문화의 분포에서 동일한 소재를 공유하면서도 지역적 특징의 형성이 관찰된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연원에 중요한 자료로 최근 북방지역에 발견된 벽화묘들의 연구의 필요성에 주목하여 내몽고와 섬서성 북부 지역을 포함하는 중국 한대 북방지역 벽화묘의 지역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한대 고분벽화의 분포와 전파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새로운 벽화묘들로는 섬서 북부의 陝西定邊郝灘東漢壁畫墓, 陝西靖邊楊橋畔東漢壁畫墓, 陜西 靖邊楊橋畔鎮楊橋畔二村南側渠樹壕漢墓, 陝西靖邊楊橋畔渠樹壕漢壁畫墓가 있다. 내 몽고에는 內蒙古鄂托克旗巴彥淖爾鄕鳳凰山1號墓, 內蒙古鄂托克旗烏蘭鎭米拉(蘭)壕漢 墓, 内蒙古卾爾多斯巴日松古敖包漢代壁畫墓 등이 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북방지역 벽화묘의 구조와 벽화의 특징을 정리한 후 관중지역 서한 후기 벽화묘들과 비교하여 지역 간 연관관계를 고찰하였다. 섬북과 내몽고지역 동한벽화묘와 관중지역 서한벽화묘의 공통점은 첫째는 수렵도, 천상도와 같은 특정 주제의 공유, 둘째는 소재의 배치와 표현방법의 계승, 셋째는 벽화의 바탕면을 녹색이나 적색으로 칠한 후에 그 위에 벽화를 그리는 제작 방법의 유사성이다. 주제와 배치 및 표현방법의 연속성은 관중지역의 사민이 북방지역으로 이루어지면서 화본의 유통과 화공집단도 같이 이동한데서 배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섬북과 내몽고지역의 수렵도와 산악도의 구성, 인물도의 구성과 배치 등은 고구려의 초기 고분벽화가 형성되는데 하 나의 연원을 북방지역에서 찾을 수 있도록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이래 발굴하기 시작한 당 벽화묘는 대다수가 陝西關中의 西安市郊와 부근의 禮 泉縣, 乾縣, 長安縣, 三原縣, 富平縣과 咸陽市郊에 집중 분포한다. 山西 太原, 寧夏 高原, 新疆 吐魯番 등지에서도 당묘 벽화가 출토되었다. 당대는 중국 고분벽화의 발달에서 가장 전성기에 해당하나 고분 내의 벽화의 주제나 구성은 인물화 중심으로 주로 현실세계를 반영하여 비교적 단순하며 사신을 제외하고 천상세계의 묘사는 드문 편이다. 당묘는 또한 부장용의 수가 많고 종류가 다양하며 북조 도용보다 진전된 세련된 표현과 기법을 보여준다. 한대 곽거병묘에 시 초가 보이는 陵墓 神道의 조각상들은 남북조를 거쳐 당에 이르면 대형화․정형화한다. 본 논문은 영하 고원수당묘와 염지당묘를 사례로 선택하여 소그드의 昭武九姓 가운데 하나인 史氏姓과 何氏姓의 소그드묘장을 고찰하여 두 지역의 묘장의 구조와 벽화 제재, 부장품에 나타난 특징을 통하여 해당 시기의 묘장에 드러난 문화적 변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중국 위진 시기 고분벽화는 한대 고분벽화와 화상석과 더불어 중국 고대 회화의 발전을 볼 수 있는 중요한 회화자료이다. 동북과 하서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는 중국 위진 벽화고분의 연원을 고찰하기 위하여 본문에서는 두 지역에 벽화고분이 나타나기 시작한 신망에서 동한 전기의 벽화고분부터 시작해서 동한 후기-서진의 벽화고분까지 그 출현과 발달 및 전개과정을 같은 시기 다른 지역의 벽화고분들과의 상호관계를 고려하면서 정리하였다. 먼저 동북과 하서지역에 처음으로 벽화고분이 등장하는 신망-동한 전기의 요녕 대련 영성자 한묘와 감숙 무위 한좌 오패산 한묘를 통하여 서한부터 낙양, 장안 등지의 벽화와 화상석에 보이는 鎭墓辟邪, 引魂昇天을 반영한 제재와 승선관이 이미 신망-동한 전기에 동북이나 하서지역으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동북지역 고분벽화의 출현에는 중원지역에서는 신망-동한 전기부터,관중지역에서는 서한 후기부터 나타나는 생활풍속적 제재의 전파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보인다. 동시에 내몽고나섬 서북부와같은 북방지역의 동한 후기 벽화고분과도 벽화제재와 표현에서 유사한 특징을 공유한다. 동한 후기에 와서 동북, 내몽고, 하서를 잇는 북방지역이 벽화고분 축조의 중심지로 되면서 벽화문화권이 형성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서지역의 동한 후기-서진의 벽화고분은 무위, 주천, 돈황 등에 분포되어, 요양에 집중된 동시기 동북 벽화고분보다 다양한 발전양상을 보여준다. 하서지역 위진벽화고분은 연원을 해당 지역한대고분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하남, 관중, 섬북, 산서지역 한대 벽화고분과 화상전고분과의 다양한 교류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요녕 조양 원대자묘 벽화는 요양지역 벽화고분에서 보이지 않던 여러가지 새로운 제재들이 출현하는데 1세기 앞선 요양지역의 벽화고분과 다른 벽화 제재들이 외부로부터 유입되어 고분의 벽화 구성에 영향을 미쳤음을 말해준다. 四神, 力士, 狩獵과 같이 요양지역에 등장하지 않은 제재들의 전파경로를 살피면 대체로 하남, 섬서 지역(서한 후기)에서 북방과 하서지역(동한)으로 전파된 양상을 관찰할 수 있다. 감숙 주천 정가갑 5호묘의 벽화의 제재와 구성 배치는 신망-동한 전기 하남지역에서 발달한 궁륭형 천장을 가진 전축분의 특징과 유사하며 고구려 벽화고분과도 친연성이 보인다. 고구려와 하서지역 고분벽화의 친연성은 서한 이후 벽화문화의 전파과정과 동한 후기부터 북방지역을 따라 형성된 벽화문화권의 교류가 그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 위진 벽화고분의 연원에 대한 고찰은 3-4세기에 벽화고분이 조성된 동북과 하서지역만이 아니라 그 이전인 한대부터 각 지역별로 발달한 고분벽화 및 화상석의 특징과 지역 간 상호 교류 관계를 보다 깊이 있게 고려하면서 폭넓은 시각으로 조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동북·하서 지역의 시기별 벽화고분의 연원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단순한 전파과정이 아니며 다양한 지역적, 시기적 편차를 가지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달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중국 위진 벽화고분보다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고구려 벽화고분의 연원은 인접한 동북, 하북, 산동만이 아니라 보다 시야를 넓혀 중원, 관중, 북방, 하서가종축과 횡축으로 연결된 교류 상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