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도산의 사사로운 개인 생활사에 관한 試論的 小考라 하겠다. 그동안 도산에 관한 연구는 상당하다. 유명한 연설가로, 독립운동가로, 교육자로, 민족의 스승으로 등 여러 분야와 여러 관점에서 조명되었다. 따라서 도산에 관해서는 더 이상 연구주제를 찾기 어려울 만큼 큰 진척을 보았다. 그러나 개인 도산 안창호의 사사로운 개인적 삶을 구명한 연구는 별반 없었다. 이 연구는 이러한 점에 유념하여 도산 삶 가운데 상해에서 활동하던 기간 (1919-1921)으로 한정하여 그의 개인생활의 일단을 살펴보려 한다. 마침 이 시기 상해에서의 개인 삶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일기>와 <편지>가 있어 이를 중심으로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도산안창호선생의 생애와 사상과 활동을 연구하여 규명하고, 도산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도산학회를 세운지 벌써 22년이 지났습니다. 도산학회 는 지금까지 도산사상세미나, 도산사상연구발표회, 기념학술대회를 개최 함으로써 안창호선생의 생애와 사상과 활동을 규명하고, 안창호선생과 도산사상이 우리 민족운동사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깊이 있게 연구하여 왔습니다. 올해는 안창호선생의 탄신 130주년을 한 해 앞둔 해이자, 안창호선생께서 주도해 조직한 신민회의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에 도산학회는 오늘 ‘신민회 창립 100주년의 역사적 의미’라는 대주제하에 학술회의를 개최하게 되었고, 제가 기조강연을 하게 된 점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학술회의의 대주제인 신민회에 관해서는 박만규선생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발표와 토론에서 자세히 논의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신민 회가 창립된 1907년이 우리 민족운동사상에서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가 하는 문제를 거시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역사를 규명하는 데 있어, 숲에 들어가 꽃과 나무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 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높은 창공에서 조감(bird's eye view)의 방식으로 살펴보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05인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의 하나로 신민회의 활동, 신민회의 지방조직 등의 문제를 실증에 의하여 구체적이고 미시적으로 연구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기조강연에서는 1907년의 역사적 의미를 「한국민족운 동사상의 1907년」이란 제목 하에서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