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위의 학문은 동한이 정치와 사회생활 그리고 학술사상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가 동한 말년에 쇠미해졌다. 원래 참위 서적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의 의해서 조대가 바뀌는데 이용되었다. 그런데 통치자는 그 중의 위험을 점점 의식하게 되었고 위진 이후에는 수차례 금지되다가, 수양제가 정식으로 금지한 후에는 참위의 서적은 대량으로 손실되었다. 참위라는 것은 신학적이고 미신적인 색체를 띄고 있기에 아예 유가 경전과는 장기적으로 병행 되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비교적 빨리 유가 경전과 분리되어 나갔다. 그러나 참위의 서적은 전부다가 완전히 황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 속에는 또한 허다한 천문, 역수, 지리학 등의 방면의 고대 자연과학 지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처강”과 같은 수천 년 중국 군주 전제 사회의 최고의 윤리 규범이었던 삼강도 《白虎通義》라고 하는 것에 확실히 기재되어 있는데, 그것은 禮緯 《含文嘉》 중에서 인용해 나온 것이다. 도참은 처음에는 인간과 천지 혹은 자연과의 교류의 차원에서 논의 되던 것으로 시작하여 유가 경전을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해석하고 학문의 폭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 역대 제왕들이 그것을 정권 탈취의 목적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왜냐하면 도참을 이용하여 정권을 탈취한 자에게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스스로 에게 다시 돌아오기 일쑤이기 때문에 그것의 위력을 아는 자는 그것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역대 중국의 금서사상 참위는 후대로 갈수록 배척 되어 왔음에도 아직도 우리의 뇌리 속에 신비스러운 잔영으로 남아 있다.
보통 금서가 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정치적인 이유로 그 내용이 통치자의 생각과 배치될 때이고, 두 번째는 책 속에 묘사된 내용이 그 사회의 도덕 관념과 위배되는 경우이고, 세 번째는 책 저자의 문자옥이라든지 개인적인 원인으로 정부로부터 핍박을 받아서이다.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종합해 보면 지금에 보면 경서로 추숭되는 많은 서적들이 어처구니없게도 한 때는 금서로 되었던 적이 있는데, 현재로 볼 때 문화적 가치가 높게 추숭되는 것일수록 해금 된 시간도 빠르고 몇 번의 굴곡을 거친 후에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또 사회의 발전과 함께 비교적 온건하게 그 면모를 유지 발전시켜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후대로 갈수록 다양한 종류의 서적들이 세상에 나타남에 따라, 갈수록 다른 종류의 문체나 서적들이 금서가 되었으니 이러한 다른 종류의 책이 세상에 나타나면 爲政者에 의해서 나름대로 검증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